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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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부터 궁금해 왔다. 10년도 더 되었나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인의 시를 보고 반해버린후 나는 나타샤가 되기로 한다.

그후로 아뒤를 모조리 나타샤로 바꾼적이 있었다.

 

안도현시인은 30년전부터 백석시인을 짝 사랑 해왔고, 어떻게든 백석을 닮아가려 했었고, 백석을 기리고 싶었다고 한다.또한 해금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진 백석연구서들의 오류 부분도 바로 잡아보고 싶은 바램으로 , 소설도 아닌 평전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해방이후 남한 문단에서는 접할수 없었던 시인이고, 1996년에 북에서 사망한것으로 되어있으니 분단후 46년의 시간에 대해서는 어떠한 확인된 시인의 행적은 알수가 없을것이다.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출신으로 오산고보를 나오고 , 금맥으로 벼락부자가된 후에 조선일보 창업주가 된 방응모의 장학금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후 돌아와서 ,조선일보에서 일을 시작하며, 시집" 사슴"으로 문단데뷔를 하게 되는데 . 100부한정으로 자비로 출간하 사슴은  그당시 큰반향을 일으켰다고한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둘다 껴안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의 신문물과 문학을 접한 그는  외모뿐아니라, 기질에 있어서도 모더보이로 변모해 있었고 그당시의 문단여류 작가들에게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로 시작되는 노천명의 사슴도 그를 연모의 대상으로 시를 썼다고 하니.  신여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음을 부인할수 없으리.

그의 시또한 토속적이며 향토적인 소재로 시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던하면서 감각적이나, 결코 다른 시류에 속하지않는 백석만의 시세계를 개척했다고 한다.

 

역시 예전이나 지금이나 평범한 삶을 걸어서는 결코 예술가가 될수없나보다. 그를 스쳐간 아프고 애틋한 사랑이 그의 시세계의 자양분이 되었다.

백석의 일생에 걸친 사랑은 평범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사랑이 그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수가 없다.

백석은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통영 처녀 박경련을 잊지 못했지만, 결국 친구에게 사랑을 놓치고 또한 우정또한 잃어버리게된다.

 

또다른 여인 본명이 김영한여사와는 백석이 자야라고 부르며 , 평생동안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게된다. 이 자야여사는 집안의 몰락으로 어쩔수없이 기적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는데, 백석을 처음 만날날 부터 사랑에 빠지며 , 그후 한국최고의 요정 대원각까지 운영하는 사업가가되고, 마침내는 1000억원에 이르는 대원각 부지를  아무런댓가없이 법정스님에게 보시하면서  이요정은 길상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죽을때까지 백석을 잊지못한 자야여사는 전재산을 보시하면서 결코 백석의 시한줄에도 비할수가 없다는 말을 남긴다.

 

백석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시기를 온몸으로 살다간다. 1912년에 태어나 1997년에  북한의 오지 농장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도, 친일도 아닌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나마 친일행위로 인한 개인사적인 흠집이 없는게 아주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시기에는 시를 포기했었고, 번역 작업에 물두 했었다.

어찌보면 그의 시구대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살았다고도 볼수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싸움으로 인해 분단의 시기를 맞아서는 월북이 아닌 재북 시인으로 남게 됨으로,  해금전에는 북한작가로서 제대로 된 연구도 없었고, 한국 문단에서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된다.

그나마 해금으로, 그의 작품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어들 구조등이 알려지게 되고, 석박사 논문이 600편이 될정도 로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되었으며,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되고, 안도현시 세계의 사부가 되며,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에도 뽑혔으며,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마음이 정화되고ㅡ, 마음이 움직이고, 처연하면서  서글퍼지고, 눈내리는 마을의 북방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져 옴을 느낀다.

 

그러한 그가, 북한 체제에서 본래의 시작법에 충실하게 마음을 담은 동화를 쓰다가 체체 선전용의 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오지인 산수에가서 농장을 하며 자아 비판을 당하게 되고 몇몇의 체제 순응적인 시를 남긴게 너무 가슴아프다... 서정적인 운율로 우리마음을 움직인 사슴의 시인이 그런 시를 썼다는게 너무 가슴아프고 목이 메인다.

 

과연, 그는 시를 쓰지 않고, 노동자의 삶을 살았던 그시간이 행복하였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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