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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네이버 고전작품 zip 의 김정아 교수님의 해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도스토옙스키의 전 창작 활동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두 시기로 구분하는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으로서, 과거 작품에 대해서는 거부의 정신으로 충만해 있으며, 이후 대작 소설들에 대해서는 철학적 서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비록 양적으로는 그리 많지 않지만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작가의 5대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 속에서 나타나게 될 주요한 주제들, 정치적ㆍ철학적ㆍ윤리적ㆍ종교적인 제반 문제들과 그 해결 방안으로서의 구원의 문제들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1860년대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체르니솁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반박이었다. 작품의 이런 동기와 특성 때문에 저명한 도스토옙스키 연구가 조세프 프랭크(Joseph Frank)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패러디로 생각지 않는다면 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니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전경화(前景化)된 텍스트 뒤에 존재하는 체르니솁스키의 후경화된 텍스트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우리는 답변은 있되, 질문은 없는 채로 남겨지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체르니솁스키가 과연 누구이며, 그의 사상이 어떠했고, 그가 쓴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에 대해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체르니솁스키는 1860년대 당시 젊은 지성인들 사이에 열렬한 우상적 숭배를 받을 정도로 감격을 불러일으켰던 허무주의적 유물론의 기수였다. 그는 인간 본성이 원래 선하며, 인간이 사악한 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가 그에게 자신의 욕구와 능력을 만족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 안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체계와 환경의 탓이라고 여겼으며, 따라서 환경이 좋아지고 개선되면, 인간의 모든 악행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 본성은 선하며, 인간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이론이 형상화 되어 있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주인공들을 통해 자신의 이론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베라 파블로브나와 로푸호프의 이익 계산 이론이 그 좋은 예다. 실제로 이 작품에는 많은 산술적 계산들이 등장한다.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 그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인간은 완전한 이기주의로부터 나오는 악한 행동을 그만둘 것이라고 체르니솁스키는 믿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체르니솁스키의 이성적 이기주의 이론이다. 인간을 교육하고 개화시켜 이성적 이기주의에 눈뜨게 된다면, 악해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고 여겼다. 또 그는 외부 자연의 분석에 결정적 요소로 제공되는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영역이 인간의 내적 본성의 분석을 위해서도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인간 심리, 도덕, 사회적 행동의 제반 문제에 수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문제는 1860년대 러시아에 있어 주요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2×2=4, 2×3=6, 2×4=8…인 것처럼, 인간의 제반 행동에 대한 해답도 이성적 이기주의가 제시하는 이익 공식에 따라 나올 것이고, 따라서 백과사전처럼, 어떤 문제가 있으면 어떤 해답이 있다는 식의 인간의 제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실은 사전류의 책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여겼다.
체르니솁스키의 모든 이론과 모든 사상은 베라 파블로브나의 네 번째 꿈에 등장하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인 수정궁으로 집약된다. 체르니솁스키는 사회주의란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의 행복한 삶의 승리라 여겼으며 미래에 확실하게 존재하게 될 세계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연과 이성, 수학, 과학의 법칙이 완전히 지배하는 곳, 사회주의적인 지상낙원으로 체르니솁스키가 제시하고 있는 수정궁은 한마디로 완벽한 사회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선하고, 따라서 모두가 모두에게 감출 것이 없는 하나인 우리(소비에트 작가 자먀틴의 유토피아 소설 ≪우리들≫을 연상시킨다)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수정궁은 전체가 투명한 수정으로 되어 있는 완벽한 미래 사회의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라고 여겼다.
체르니솁스키는 자신의 전 인생을 통해 인간 존재의 기본적 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해답을 제공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으며, 그 안에서 체르니솁스키는 사람들에게 진리가 어디에 있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체르니솁스키는 문학은 교훈적일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교훈적인 소설을 고안해 내었으며, 삶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해결방안을 독자들에게 제시코자 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소설 이상의 것이 되기를 주장했으며, 그의 젊은 동시대인들 역시 이것을 예술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교본으로 열렬한 찬사와 함께 경이의 감정으로 받아들였다.
체르니솁스키로 대표되는 1860년대의 혁명적이고 진보적인 젊은 층들이 마치 하나의 신앙처럼 열렬하게 받아들였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는 젊은 날의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신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바로 그 푸리에주의에 기초하고 있었다. 만약 도스토옙스키가 이 사상을 직접 체험하고 이해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것에 대한 깊은 회의의 날들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이 사상의 순진한 허구성과 치명적인 위험성을 그토록 잘 파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1840년대에 20세의 도스토옙스키는 페트라솁스키 서클에 참석하게 되면서 바로 이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에 대한 이론을 접하게 된다. 페트라솁스키는 1840년대의 혁명적인 자유주의 운동에서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푸리에주의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푸리에의 인간 본성 이론과 사회주의적 공동 생활체인 ‘팔랑스테르(Phalanstère)’라는 조직의 실현을 확실히 믿었다. 페트라솁스키 자신이 만든 비밀스런 모임에서 대화의 주된 주제 중 하나는 푸리에의 가르침에 따른 공산적 경제 원리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적 이상 국가 건설이었다.
러시아인의 극빈과 극부의 모순적인 공존을 목격하고,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고 짓눌린 자들에 대한 동정과 관심을 가지고, 물질적 가난이 인간성을 얼마나 왜곡시키는가에 대해 골몰했던 도스토옙스키, 자기 자신 역시 계속되는 물질적 궁핍함에 고통 받아야 했던 젊은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 물질적 풍요와 인생의 행복과 안정을 약속해 주는 이상 사회 건설에 대한 이 이론은 젊은 이십 대의 그의 심장을 사로잡았고 그는 이에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1849년 페트라솁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감옥에서 보낸 4년의 세월은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신념에 근본적인 수정을 가하게끔 했다. 그곳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본성의 어둡고 적나라한 야만적인 면을 보게 되었다. 인간 본성의 심연에 있는 이런 선과 악의 카오스와 악마적 요소의 우세를 보고 난 후 이전의 푸리에주의의 인간 본성 이론으로부터 그가 자신의 신념으로 받아들였던 ‘본성적인 선’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또 죄수들 간의 힘의 역학 관계에 대한 관찰에서, 그들의 격렬한 우위 다툼을 목격하고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모순에 대해 깨달았으며, 이런 체험들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개인들이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해 도스토옙스키가 갖고 있던 믿음을 산산조각 나게 했다.
이러한 급격한 이데올로기적 변화를 경험한 도스토옙스키에게 “사회주의”가 이상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과 동등한 형제애가 가능한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회의에 쐐기를 박은 사건은 1862년에 이루어진 그의 첫 번째 유럽 여행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했던 나라, 위대한 부르주아 시민혁명이 성공한 나라인 프랑스의 중심 도시 파리에서 그가 본 것은 혁명의 성공이 가져오리라고 예상했던 만인의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가 존재하는 지상낙원이 아니었다. 그는 여기서 형제애의 불가능성과 물질 만능주의의 노예가 된 착취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보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한 영국의 수도에서는 극빈과 극부의 모순된 공존과 자본주의 남용의 명백한 증거들을 보았다. 특히 1862년 영국 켄싱턴의 로열 파크에 세워진 세계 박람회의 수정궁은 도스토옙스키를 경악케 했다. 그것은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의 가축 떼로 만드는 우상과 악마의 왕국처럼 보였다. 자본주의의 이상의 왕국으로 건설된 이 수정궁은 도스토옙스키에게 우상의 왕국이며 반(反)그리스도이며 그 속에서 인간의 정신은 정복당하고 종속당하고 정신적 자유가 말살되는 그런 곳으로 여겨졌다. 유럽 여행의 결과, 도스토옙스키는 사회주의나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달한 결과는 똑같은 개미탑이며, 그 결과가 인간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지상낙원이 아니라, 인간성의 박탈을 전제로 하는 가축과 같은 노예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1863년 체르니솁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잡지 ≪동시대인(Отечественные записки)≫에 나타났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그 안에서 젊은 날의 자신이 지녔던 바로 그 이데올로기의 신념을 보았다. 그는 인간의 실제적 본성과는 전혀 맞지 않는 그 이론의 순진한 허구성과 인간을 개미 떼나 가축 떼로 몰아가려고 하는, 즉 인간성 박탈을 전제로 하는 (그 책이 제시하는) 사회주의적 이상 국가의 두려움을 분명히 자각했다.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마치 하나의 삶의 지침이요, 교과서요, 성서처럼 받들고 있던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우려를 강력히 나타내며, 그들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알려야 할 의무를 느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예술적 답변으로 의도되었기 때문에 작품에서 반복되는 주요 단어들, 텍스트, 내용, 표현, 주요 사건, 이 모든 것들이 반대편의 주된 사상들에서 차용되어, 지하생활자의 말 속에서 왜곡되고, 패러디되고 희화된다. 1, 2부의 주된 에피소드인 장교와의 결투와 리자 이야기도, ≪무엇을 할 것인가?≫의 긍정적 주인공 중의 하나인 로푸호프의 사건과 창녀 구원 문제를 다룬 키르사노프와 크류코바의 사랑 이야기를 각각 패러디한 것이다. 또 체르니솁스키와 그 추종자들의 중심사상인 공리주의, 합리주의, 실용주의, 이성적 이기주의,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등은 ‘2×2=4’로 대변되며, ‘2×2=4’는 체르니솁스키가 바로 자신의 사상을 옹호하고 주장하기 위해 최고의 긍정적 성질을 부여했던 것으로, 이를 인간 행위에 적용하면 인류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던 보편적 공식의 상징, 인간 행위를 규정하는 보편적 원리로, 또 세계 조화의 위대한 원리로 제시했었다. 또 ‘2×2=4’가 다스리게 될 완벽한 유토피아 왕국으로서의 수정궁은 도스토옙스키의 텍스트 속에서 지하생활자의 입을 빌려, 수정궁 자체와 그 믿음의 철없을 정도의 허황됨과 그것이 갖는 맹점들이 공격당한다. 그것의 완벽함은 역설적으로 그것의 최대의 약점이 된다. 완벽은 진보를 허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것은 죽은 끝이며 ‘2×2=4’와 같은 죽은 공식이다. 자연법칙, 이익, 피아노 건반, 지하실과 수정궁, 이 모든 것들이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차용되고 지하생활자의 말 속에서 뒤틀리고 과장되어 결국에는 원 텍스트에서 가지고 있던 긍정적 자질들을 스스로 파괴하게 만든다.
≪지하생활자의 수기≫ 속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비난과 풍자, 적개심의 대상 범주는 체르니솁스키의 이론과 그의 작품 ≪무엇을 할 것인가?≫뿐만이 아니라, 체르니솁스키가 활동한 잡지 ≪동시대인≫의 주요 멤버들이자 체르니솁스키의 열렬한 추종자들, 살티코프-셰드린과 네크라소프와 그들이 칭찬한 작품들−니콜라이 게의 ≪최후의 만찬>−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인 반박이라는 작품의 직접적인 동기에도 불구하고, 지하생활자가 구체화하고 있는 고독, 자유, 선택, 고통, 노예화, 정체성, 구원으로서의 사랑의 문제 등의 모든 테마는 한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늘 현대적이고, 늘 보편적으로 남아 있는 인간의 주제다. 이렇듯 작품이 구현하고 있는 시공을 초월한 우주적이고 무시간적인 주제성은 작품 자체의 예술성을 영원히 가능케 해 줄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몇 세기가 지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릴 수 있는 영원한 명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 주리라 믿는다.
또한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가장 도스토옙스키적인 예술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이 작품 속에서 “지하실”의 추악성과 비극성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었던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성의 승리다. 수기의 저자 “역설가”는 단순히 관념적, 철학적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그 시대와 사회의 모든 정황을 몸으로 앓아 내고 난 후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통해 이루어진 문학적ㆍ철학적ㆍ윤리적ㆍ세계관적 발견들은 이후 도스토옙스키가 창작하게 될 모든 대작들의 뼈대를 이루는 내적 근거가 되었다. 또 이 작품이 새로운 세계로의 물꼬를 터 준 셈이 되어, ≪지하생활자의 수기≫라는 작지만 무거운 문을 지나야 비로소 예언적인 위대한 “도스토옙스키적 세계”가 활짝 펼쳐지게 된다. 도스토옙스키 하면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대작만이 문제시되고 있지만, ≪지하생활자의 수기≫도 ≪백야≫나 ≪분신≫, ≪우스운 인간의 꿈≫, ≪상냥한 여인≫, ≪가난한 사람들≫ 등의 주옥같은 소품들과 함께 인문학도라면, 아니 지성을 지닌 교양인이라면 절대로 지나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하생활자의 수기 [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 (고전해설ZIP, 2009. 5. 10., 지만지)
현재까지는 도선생의 작품 중 가난한사람들, 죄와벌, 상처 받은 사람들, 이번에 읽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었는데, 여전히 5대 대표작중 4권은 아직 읽지 못했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인간의 심리 묘사 에 탁월해서 두권,세권 씩이나 되는 작품들을 읽어내기가 쉽지않다, 다행히도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얇은 책두께로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한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온갖심리 묘사를 해놓은 1부는 읽어내기가 수월치 않고, 2부에 가서 스토리 가 있어서 그나마 빠른 속도로 읽을수 있었다.
이책을 읽는 내내, 이주인공은 과잉 자의식을 가진 사회 부적응자. 아니면 복잡 미묘한 정신세계를 가진 히토코모리의 정신 병자 이야기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에게 전달 하고 싶은게 뭔가 의문이 들었다.
물론 1부에서 내내 풀어내는 주인공의 생각을 통해서는 인간이란 완벽하게 이성적일수 없다.
오히려, 감성적인 모습이 더 인간적이다. 라는 메시지를 보았는데. 좀더 정보를 찾고서야 겨우 맥락을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은 도선생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작품 세계를 푸는 중요한 열쇠라고 앙드레 지드 가 말한것처럼 후기 도선생의 사상을 포괄하고 있다고 한다.
1860년대 러시아에서는 공상적 사회주의 이론이 득세를 하게되는데, 그때 체르니세프스키 라는 사람이 이성적 이기주의를 강조하면서 "무엇을 할것인가" 라는 책을 통하여, 그시대의 젊은이에게 공감을 얻고, 돌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성적 이기주의란 ,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걸 알기만 한다면, 그것에 부합하게 이성적으로 행동 할수 있다고 보는이론인데, 이성, 수학, 과학등 의 법칙이 완전히 지배하는 사회주의가 모든 인간의 행복한 삶을 보장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맥락에서 , 공산주의 즉 모든 사람이 동일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 이익을 분배하고 , 갑을도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 할수있다고 역설하고, 그당시 가난과 불평등에 시달리던 일반 프롤레타리아 계급들이 "수정국" 이라는 지상낙원을 꿈꾸며 열광할수 밖에 없었다.
도선생도 초창기에 이러한 사회인식에 수긍하고, 이러한 독서모임에 나가고, 말하자면 그시대에 불온한 서적을 읽다가, 결국 체포되어, 사형당하는 바로 그순간 풀려나서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 부터 그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공상적 사회주의 에 회의를 품고, 다소 우익적방향으로 인식을 다시 하게된다. 그 비참 한 유형 생활에서 인간 밑바닥의 내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인간의 내면에는 굉장히 바람직한 이성이외에도 충동적인부분 ,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사악하며, 욱하는 내면의 추악한 모습까지도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성에 의해 자로재듯 재단할수있고, 제어할수 있다고 보는 공상적 사회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이냐는 것이다. 아마도 지상의 낙원인 수정궁도 완성되기 직전에 , 자의 식을 가진 인간이 지루함을 못참고ㅡ,부서버리고야 만다는 것이다,.
결국 합리적 통제는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을 노예화 하며, 개성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말살하기에. 실현불가능 하다고 반박 하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인것이다.
주인공인 나는 전직이 말단공무원으로 친척이 물려준 유산을 바탕으로 혼자 지하에 들어가기를 자쳐하며, 하루종일 몽상과 사색으로 시간을 보낸다.. 1부는 온통 자기의 자의식을 분석하는 글로 가득차다. 그런데, 1부만 읽어도 어렵긴 하지만, 도선생이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