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 우리가 서로를 적이라 믿게 만드는 마음의 함정
커트 그레이 지음, 제효영 옮김 / 김영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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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편을 가르고 싸워댄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항상 그래왔다. 

다들 속에 분노가 가득하다.

들여다보면, 모든 갈등의 원인은 하나다.

사람마다 위험과 피해를 다르게 인식한다는 거다.

나는 옳고 상대방은 잘못했다고 여긴다.

우리가 위험성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들여다보면, 

오늘 사회가 왜 이렇게 분노로 가득한지 알 수 있다. 

대다수는 비슷한 도덕적 관념, 법 개념,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도덕 기준에서 비추어 부당한 건 모두 분노의 감정을 가진다.

도덕성은 한가지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그건 위험성이다. 

성장 과장과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무엇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제각기 다르게 인식한다.

이 인식의 차이가 도덕적 판단의 차이로 이어진다.

이게 모든 도덕적 갈등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지금 무엇을 위험하고 해롭다고 여기는가 

이 책은 여기서 출발한다.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위험성에 관한 인식에서 비롯되고, 

인류는 위해를 당할 가능성을 염려하도록 진화했다.

오늘날에는 가장 중요한 위험 혹은 가장 실질적인 위험이 무엇인지

제각기 다르게 판단한다. 

그 차이가 도덕적 갈등과 정치적 불화를 유발한다 p.20

정치적인 대립이 눈에 보이게 심해진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던 건 아니다. 

과거에는 전쟁으로 이어질 만큼 그런 경우도 많았다.

민주주의는 서로 협력하고, 타협해야 하는데, 

전쟁처럼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증오하고, 공격해도 용인된다면

그건 사회에 해가 되는 일이다. 

결국, 중요한 부분은 자신과 대립하는 사람들을 멀쩡한 인간으로 대하게끔 

해주는 이해가 필요한거다. 이게 집단적 증오심을 가라앉히는 데 유용하다.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사람들끼리 아무리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대부분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데 더 집중한다.

문제는 반대편의 행동 역시 파괴하려는 의도보다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임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거다. 

우리 편은 영웅적인 희생자고, 상대편은 악의적인 집단이라고 단정하기 쉽다.

특히 인터넷 방송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매체들이 이 편가름을 부추기는 

현대 사회에서는 갈등이 (실제보다) 더 부각된다.

부각된 갈등은 확대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겪는 걸로 보인다. 

책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인간이 왜 이렇게 진화했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수백만 년에 걸쳐 위험을 감지하고 달아나도록 진화하면서 위험을 예민하게 경계하는 본성을 지니게 됐고, 포식자로서의 '파괴'보다는 피식자로서의 '보호' 동기가 더 강하게 자리잡았다.

우리를 위협하는 물리적인 포식자가 사라진 지금도 예민한 위험 인식은 여전히 남았다. 위험으로부터 자기 자신과 가족,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도덕성이 형성됐다. 우리의 도덕 감각을 자극하는 일을 누군가가 저지르면 분노하고 응징에 나서기도 한다.

무엇이 가장 위험한지, 위험으로부터 시급히 보호해야 할 '약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인간에게는 위험하고 해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본능이 있다.

위험에 관한 우려는 도덕적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저자는 위험성이 도덕적 사고의 바탕을 이룬다고 얘기한다.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라는 얘기다.

또, 위험성이 크다고 느낄수록 더 부도덕하다고 평가한다.

직관적으로 느끼는 위험성이 우리의 도덕적 판단을 좌우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경험의 가장 중심에 자기자신이 있다는 의미이다.

도덕성에서 유독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다. 

자기가 하는 도덕적 판단이 도덕성의 객관적 진실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도덕성이 훌륭한 사람이라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관점이 나랑 같을거라는 생각)

도덕적 자기중심성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수백만 명쯤 동의하리라는 확신으로 

이어지고, 그 확신은 때때로 파국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p.375

책은 인간이 생각하는 바와 달리 포식자가 아닌 먹잇감으로 살며 진화했다고 말하며, 

인간의 동기는 대체로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보호하는 데 있는 경우가 많다.

해를 입지 않으려고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는 거다. 

그리고, 인류가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등장하자,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덕성이 진화했다고 말한다. 

누구나 도덕적 판단의 바탕에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생각의 차이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즉, 각자의 방식으로 위험성을 인식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의미에서, 

일상생활의 도덕적 분열을 봉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얼까

어쩌면 서로 달라서 생긴 거리를 좁히는 최상의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정신에는 여러가지 유용한 어림짐작이

발달했으므로, 반목하는 사이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지내는 훌륭한

경험 법칙을 이미  터득했을 가능성이 있다. (진짜 !!)

대부분 분열을 봉합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사실'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팩트 체크만 봐도 그렇다)

사람들은 믿고자 하는 걸 믿는다. 

피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분열 해소에 도움이 된다.

이유는 자신이 약한 존재임을 드러냄으로써 똑같이 인간임을 

보여주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위험성을 낮추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열린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혐오의 시대에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생각을 전개할 수 있는 단초로서

이 책은 그 역할을 잘 할 거라고 믿는다. 


#나와당신은왜분노하는가

#커트그레이 

#outra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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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m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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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탓하기 전에 심리학을 공부했다 - 심리학자의 마음 재건 수업
이현주 지음 / 어떤책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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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탓하기전에심리학을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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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책

#서평단

@acertainbook

살다보면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경험합니다.

삶의 불확실함은 누구에게나 비슷합니다.

저자 역시 갑자기 찾아온 암 진단과 항암 과정에서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해쳐나가는 냉정함을 보여줍니다.

랜덤으로 받는 선물이 좋은 것일 수만은 없습니다.

큰 시련을 겪을 때, 실패나 상실의 고통은 잊고,

배운 교훈을 남기는 것은 회복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적응 전략이 된다.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감사함을 찾아내는 일.

삶이 버거울 때 감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어떤 날을 기대가 나를 끌어당기고,

어떤 날을 불안이 나를 붙들었지만,

그 사이에서 서서히 중심을 잡아 갔다.

나쁜 일에도 좋은 일이 섞여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100 퍼센트 나쁜 일은 없다.

그래서 견딜 수 있다. 암도, 인생도,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비일상적인 사건에도 적응한다.

비일상은 새로운 일상을 만든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면서 삶의 욕구를 더 다져 나가는 게 필요하다.

암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건 재발과 전이지만,

항암치료의 공포 또한 압도적이다.

불안하지 않는 인생은 없다.

우리의 목표는 불안과 함께 살아내는 사람이 되는거다.

누구나 고통을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한다.

가능하다면 지나가기를 바라며, 빨리 없어지길 바란다.

아픔을 느낀다는 건 역설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다.

우린 고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몸과 마음은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아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살아가기 위해 고통에도 어느 정도 적응한다.

고통을 다루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잘 견디는 것이다.

불행한 사건을 겪으면 원인 찾기에 매몰되기 쉽다.

내 몫의 책임만 감당하고, 과도한 자책은 내려놓는다.

바꿀 수 있는 곳에 힘을 쏟는다.

그때 비로소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은 대개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애쓴다.

그러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결과가 나아지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 생각을 하게 된다.

삶에 대한 통제감을 잃고, 기회가 와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

학습된 무기력 learned helplessness 상태가 된다.

무기력에 잠긴 사람에게 작은 움직임조차 버겁다.

성공 사례를 보여 주어도, 여전히 '나만 빼고' 이야기로 남기 쉽다.

열 번 찍어도 나무가 쓰러지지 않을 때,

나무의 파인 자국을 함께 확인해 주고, 다른 나무를 찾도록

곁에서 이끌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도전을 향한 용기가 다시 자란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돼 줄 수도 있다.

살다보면 '후회해봐야 소용 없다' '뒤돌아보지 마라' 말을 듣는다.

이미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고, 떠올릴수록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후회는 '그때 다르게 행동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 라는 믿음이다.

후회는 고통스럽지만, 충분히 겪어야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고,

나아갈 힘이 생긴다.

'미리 후회해보기'를 권장한다.

'이 선택을 10면 뒤에도 후회할까'

'10년 뒤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의 최대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다.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더 발리 인식하고 더 오래 기억한다.

그러나, 너무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면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세상은 흐려진다.

시선을 밖으로 돌려야 한다 (탈 자기초점화)

시야를 넓혀 자기초월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 준다는 것은

내 생명의 한 조각을 건네는 일이다.

함께 밥을 먹고, 안부를 묻고,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보상도 없이 시간을 내어 준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내 하루의 작은 틈을 남겨 누군가를 위해 쓰는 일,

내가 힘들 때 남이 내어준 시간의 조각이 나를 다시 일으키듯,

내가 건넨 시간이 타인의 삶을 거쳐 나의 생명으로 되돌아온다.

사람은 복잡한 추론보다 빠른 판단을 선호하는

인지적 구두쇠 cognitive miser 이기 때문에,

행동의 원인을 상황에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가진 성향에 귀인하는 경향인

기본 귀인 오류의 편향을 가진다

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가능한 한 적은 정신적 에너지로 빠르게 판단하려는 경향.

정체성은 평생 이어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써 내려간다.

나의 인생은 상실을 넘어,

일상을 채우며 기록하는 하나의 긴 이야기다.

한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그가 살아온 삶과 경험을 풀어낸 솔직한 이야기일거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언제나 해결책을 알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하다.

문제란 이상과 현실의 괴리이고,

해결은 그 간극을 줄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끝없는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길을 찾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하루를 건너는

우리 모두 이미 삶의 생존자이다.

불행한 사건은 우리를 고립시킨다.

때로는 세상과 단절된 듯.

심지어 삶 자체에서 떨어져 나온듯 느껴진다.

혼자이기 보다는 연결을 택하는 것이 좋다고 얘기한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비바람이 그치면

하늘에는 강철처럼 단단한 무지개가 뜬다.

기억을 붙들기만 하면 불안이 된다.

그래서 기억과 계획을 함께 둬야 한다.

지속가능한 습관을 만드는 게 목표다.

암은 삶이 끝날 때까지 완결된 사건이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고 묶여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미완에 집중하지도, 방치하지도 않으며,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낸다.

기억은 유지하되 삶은 현재에 두면서, 서두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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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탓하기 전에 심리학을 공부했다 - 심리학자의 마음 재건 수업
이현주 지음 / 어떤책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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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기전에,

제목을 보고, 그리고 심리학이라는 단어를 보고

통상적인 심리학 입문서라고 선입견을 가졌다.

막상 책을 시작하면서

'살다보면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경험합니다.

삶의 불확실함은 누구에게나 비슷합니다.'

로 시작되는 글과 저자가 직접 경험하는 암 진단과 이를 겪어가는 과정을

심리학과 함께 싸워 나가는 과정을 같이 동감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같은 고난 앞에서 왜 누군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일어날까

왜 어떤 고통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어떤 고통은 그 자리에 붙잡아 둘까,

고통과 상실을 지나 다시 살아갈 힘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삶에 어떤 일이 찾아올지 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어떤 사건을 만나더라도 우리는 극복할 방법을 찾고,

최선을 다해 살아낼 거라는 사실입니다'

저자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책이다

더불어서, 자기가 천착해왔던 학문과 학문적 시야가 인생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느끼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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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책
안나 마촐라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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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luential_book

17세기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간 로마
죽어서도 혈색을 유지하며 썩지 않는
기이한 시체들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새로운 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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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삶 -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에릭 사댕 지음, 박지민 옮김 / 김영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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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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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유령이 우리 손에 쥐어졌다.

계속해서 소리를 울리고 진동하며 스크린을 번쩍이며 우리를 방해한다.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알고리즘이 우리를 도와준다.

코로나 전파로 인한 팬데믹은 우리를 온라인 세계에 머물게 했다.

많은 일상이 모니터에서 이뤄졌다.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일상과 사회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90년대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시작된다.

2007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개인 인터넷의 시대가 시작된거다.

누구나 손에 인터넷을 쥐고 연결되어 있는 상태로 이동한다.

점점 더 우리는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게되는거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이니 만사 제쳐두고 대세에 따라야 한다.

몸과 마음 모두 알고리즘이 유도에 따라 유비쿼터스의 일상이 함께하는

시대를 누리고 있는거다.

이 세계에서는 유령이 우리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반대로 유령이 텍스트와 이미지를 생성하도록 원하는 바를 지시할 수 있다.

유령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우리의) 가장 사소한 욕구와 욕망까지 충족시키도록

지시하며, 이 세계에서 계속 살아갈거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드는 에토스의 마지막 단계,

뇌에 칩을 이식하여 다시 '신체'를 해방시키려는 계획의 바로 전 단계에 와 있다.

우린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다.

이동은 좋든 나쁘든 인간과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본성을 끊임없이 이용해,

인간과 물자를 끊임없이 이동시켜 경제 발전의 토대를 다지고

결과적으로 사회와 영토의 변화마저 이뤘다.

지난 20년간 이 과정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바로 세계가 인간에게 다가오는 현상이었다 - 인터넷

텔레비전에 반복적으로 얽매이면서

우리의 시선은 스크린으로 이동한다.

스크린은 왕의 자리를 차지한다.

마주보고 관계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스크린을 보는 공동 시청자가 되었다.

유령이 현실이되면

현실은 유령처럼 된다.

밤이든 낮이든 삶의 주요 지평이 픽셀로 형성되어갔다.

텔레비전에 이어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인간과 기계가 상호작용하며, 누구나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면서

스크린의 힘은 배가된다.

스크린속에 있는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

우린 점점 더 의자에 앉아서 스크린을 대하는 신체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있든 끊임없이 픽셀과 마주할 것을 요구받는

신체들로 전환한다.

인간과 기기가 상호 침투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주인처럼 대하며 맘껏 조작하고

스마트폰은 밤낮없이 우리에게 봉사하고 헌신한다.

동시에 세계를 우리앞에 불러들이는 것이 스마트폰이고,

우린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알고리즘에 휘둘린다.

단순히 중독으로 치부하는 것을 떠나

역사적 인류학적 상호 침투 현상으로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일상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이 유령들은

아이폰을 넘어서서 전면적 차원에서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의 대략적인 그림을 그리고,

우릴 대신해 말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인도한다.

(유령의 기술주의)

삶이 디지털화된 결과로

우린 멀리 떨어진 곳 조차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보다

정서적이고 상징적인 가치가 더 크다고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접속의 시대는

가까운 곳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로,

훨씬 더 깊이,

우리 스스로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로 변하고 말았다.

우린 모든걸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외부의 힘에 의해 휘둘릴 따름이다.

고유한 목소리를 없애고

각자 자유롭게 길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각성할 것인가

귀찮음과 편리성을 매개로 자리잡은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알게 모르게 유도하고 지배하는

이 현상을 우린 어떻게 대비하고, 어떤 태도를 가질건가

프랑스 철학서가 으례 그렇듯이

어렵게 쓰여진 문장을 쉽게 이해하려 애를 쓰고,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영화와 책 그리고 다른 철학자들의 벽을 넘어서서

본질적인 내용에 접근해 보면,

주체적인 인간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이미 기술의 유령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다.

앞으로도 그럴거다.

하지만, 우리의 위치와 생각이 어떻게 조정 당하는지는

자각하여 살아가야 한다.

오늘도 알고리즘의 조정을 받으며

스크린에서 글을 쓰지만,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꼭 견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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