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이태석 - 톤즈에서 빛으로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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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위해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용감하게 포기 할 수 있는가. 많은 전기들을 읽다보면 속세에서 비슷한 영광을 찾으려 노력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울지마, 톤즈]로 이미 유명한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는 과거와 미래를 턱 돌아보게 했다. 사랑과 평화, 자기 희생의 고결함 이런 이야기들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변화하는 변실에서 이미 멀고 어려운 이야기가 되는 것들. 그럼에도 커다랗고 소중한 가치이기에 포기하라면 할 수 없는 이러한 이상들을 잃어버리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이상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더 큰 사랑을 가슴에 품은 사람. 그게 어린 내가 만난 영화속의 이태석 신부님이었다.

김영사의 [신부 이태석]은 내게 사람으로서의 이태석을 알게 했다.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신부로서의 길을 완강히 거절한 사람, 전공의 시험을 앞두고 성당으로 뛰쳐가 홀로 조용히 기도한 이태석, 성당 앞 마당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평범한 사람. 그러나 그는 평범하지 않다 못해 어렵고 고귀한 선택들을 이어나갔다.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순간은 선택과 그 선택을 하는 과정이 큰 영향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적인 고민을 한다. 이태석 신부가 전공의 시험을 치러 갔다고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게 현명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그는 자신의 옳음과 하느님의 부름을 따른다. 그리고 모든 삶 속에서 이 자세를 유지하고 무너지지 않는다.

톤즈, 수단. 그가 인생의 큰 시간을 보낸 곳은 아주 오지였다. 제대로 된 의료 기구도 학습 환경도 없다 못해 폭격의 위험이 따르는 곳, 삶의 경계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곳. 그가 선교를 가서 차에서 내렸을 때 역한 악취에 들판으로 뛰어가버렸다는 이야기를 읽고 부드러운 웃음이 지어졌다. 새삼 신부님이 더 숭고해 보였다. 그는 인간이었다. 인간이 하느님의 일을 해내었다. 고양이를 임시보호하다가 낯설고 지독한 배변향에 주방에서 헛구역질을 했던 나는 들판에서 다시 돌아온 그의 모습에 커다란 존경을 느꼈다. 남다른 사람들에게 과연 우리가 같은 인간일까 의문이 드는 순간이 간혹 있는데, 그의 행동이 대신 대답해 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그래도 할 수 있었다고. 어쩌면 나도 일상을 그처럼 좀 더 숭고하게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가 할 수 없는 정도부터 정하는 비겁한 다짐들이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에 경중이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의 이야기들을, 삶을 읽어나갔다. 나는 내일보다 더 어려운 선택들을 수월하게 해낼 것이다. 더 옳고 선한 선택, 그가 말한 하느님이 시키신 일들을 더듬 더듬 꽃 피우는 일상을 살아가고자 한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낮아질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오랜만에 삶에 만연하던 냉소들이 걷힌다. 따뜻한 햇살이 뚫고 나를 비치는 기분을 느끼며 책을 닫았다. 글에 담긴 사랑을 내 삶에 가져올 시간이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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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의 종말 - 삶의 정처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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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의 종말] _ 한병철 _ 김영사


코로나 시대에 강제된 공동체성의 결여는 자유주의 체제를 일시멈춤시켰다.

사람들은 포스트 코로나에 희망을 보며, 지금까지 돌아보지 못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빈틈을 발견하고 이를 포스트 코로나에 적용시킬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멈춤의 시간들이 강제되었기에 코로나 이후에는 더욱 성과주의가 심화될 것이라 본다. 주체적이지 못한 행동을 통하여 무언가 발견하더라도, 그 발견을 이어갈 주체가 어디 있느냐는 말로 들렸다.


독일어 리추얼을 지금까지 번역하여 사용해온 서적들과는 달리 원어의 포괄적인 의미를 중심적으로 사용했다. 공동체적 성격을 띄는 많은 단어들이 포함되었고, 처음에는 굉장히 막연하게 느껴졌다. 한 편 한 편을 읽어 나가면서 리추얼이 담고있는 수 많은 정의들을 하나씩 성립할 수 있었다. 리추얼이라는 단어가 책장이라면, 그 단어로 표현하는 다양한 정의들을 그 책장에 하나씩 꽂아넣는 의미였다. 책장이 가득 채워질수록 종말이 다가온 리추얼에 대한 갈망과 슬픔이 떠올랐다. 사회는 갈수록 메마르고, 그 속의 사람들은 야위어간다. 사회적인 인간은 점점 외로운 사회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


리추얼이 결여된 사회는 본질적으로 공허하다. 하루는 정치외교학 전공 수업에서 아래와 같은 주제의 강의를 듣고 해석했다.

'아름답고 비어있는 것을 찾는 것을 조심해야한다. 사랑, 정의, 행복, 평등. 구성물 없이 -완벽-해보이는 말들은 위험하다. 과정으로 결과를 만들어야 하나, 그에 자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결과를 부르짖는다. 당선 이후에 어떤 방법으로, 혹은 어떤 정의로 사랑과 정의를 성취했다고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도, 사용하는 사람도 조심해야한다.'

저자는 리추얼에 대하여 다양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단어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나, 그 중 이 수업의 내용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유혹에서 포르노로' 챕터가 그러했다. 이 내용은 책 뒷편의 저자 인터뷰에서 또렷하게 요약되어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은 더이상 놀이를 하지 않는다. 과정을 즐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결과를 찾고 성과를 찾는다. 그 자극적임은 포르노와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저자의 주장들은 점점 사회의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질려가던 나의 머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강한 확신에 근거가 없을 때, 저자는 이 모순된 사회를 리추얼의 종말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한다.

당최 리추얼의 뜻에 감을 못잡던 나는, 저자가 챕터마다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의 면모를 관찰하고 비판하며, 그 모든 구심점에 리추얼의 결여가 있다는 주장을 따라 걸었다. 어딘가 공허한 사회, 어휘는 수려해 지지만 의미는 결핍되어 가는 수 많은 말과 행동들. 매일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지표에 비해 하루하루가 부정적인 사람들과 그 집단들. 펜데믹의 시대에 아름다움을 찾았다는 이야기. 어쩌면 익숙해져 버린, 먼지 묻은 안경과 같았다. 색안경도 아니고, 무언가를 잘 못 볼 일도 없으니 그저 안경을 닦지 않았다가 어느날 다른 안경잡이가 지저분한 내 안경을 닦아 준 것이다. 생각보다 선명해진 문제들과 얼룩으로 가려지지 않은 원인들 그것을 또렷하게 마주하는 것은 가슴시린 일이었다.


문제와 원인을 마주하지 않는 것은 도피다. 도피를 한다고 상황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악화 될 뿐이다. 과거는 순수할 수 있으나 무지에 의한 순수일 수 있다. 따라서 저자가 줄곧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도 동의했다. 미래에는 본의 아니게 알게 될 것들이 늘어날 것이다. 현재까지 그렇게 살아 온 것 처럼 말이다.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을 이어오다가 리추얼의 종말이라는 현재를 맞이했다. 늘어난 지성과 늘어난 외면. 우리는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형태의 미래를 맞이하고 싶다면 우리는 새롭게 자신과 타인과 공동체, 나아가 '함께'라는 말이 어울리는 모든 것을 다시금 정의해야한다. 맑은 안경에 익숙해져야 한다. 희뿌연 안경알에 적응하면 앞으로도 찌뿌린 눈과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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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유지혜 지음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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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미워하는미워하는미워하는마음없이 #에세이 #유지혜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_ 유지혜 _ 김영사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는 책 속에서 나를 데리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그의 일상은 빈 틈 없이 찬란했다. 아마 그가 찬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의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주인 부부와 함께 하는 식사, 그 옆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저자는 여신 소금이나 커피를 서툰 일본어로 부탁했다. 부드러운 인상의 노부부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아주 다정한 말들을 주고 받았다. 나는 독자였으나, 그 순간의 관찰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소속되어있었다. 분명 함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글들이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표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가 들려주고자 하는 일상이나 생각들은 표현에 의해 누군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되고, 새로움은 주로 그러한 표현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아주 사소한 표현에 간간히 감탄하면서도 장면을 서술하는 데에 감동받았다. 저자는 포근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글로써 만들어내는 장면은 글자 하나하나로 구성된 그림이 되고, 그 공간에서 받은 느낌들을 위해 비유를 덧붙였다. 낡은 기억을 재생시키는데에 소리는 없고 따뜻한 저자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을 넣은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책의 제목이 어우러진 은은한 컬러의 표지. 참을 인을 세 번 쓸 즈음에는 화를 내어도 되지 않냐는 생각을 했으나, 세번이나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도 없애겠다는 듯이 제목은 ‘미워하는’이라는 구절을 반복한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사랑을 느꼈고,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채 그의 모든 글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하고 무거운 상황은 크게 잦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무거울 수 있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를테면 부끄러운 빈곤과 허영, 표현하지 못한 사랑, 멈추어 있던 엄마의 성취들은 나의 삶에 아주 가까이 있었다. 저자는 미움과 아쉬움들을 꺼내어 아주 작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별 다를 것 없는 매일의 일기처럼 쓰인 상처들은 저자에게 사랑으로 변하는 순간부터 아주 커진다. 글 중 긍정을 언급한 구절이 있다. 긍정적이게 변하라는 수 많은 조언들은 내게 와닿지 않았으나 저자는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들은 후의 변화를 서술하며 긍정의 가치를 주장한다. 그 어느 곳에도 그의 경험이 빈 곳이 없었기에 뜬 구름 잡는 조언이 되지 않고 오롯히 와닿았다.


책 끝을 접게 한 몇 편의 글과 구절들을 지나, 당신이 마침내 그의 마지막 에세이를 읽기 바란다. 그 중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한다.

 

“사랑에는 웃는 얼굴만 있지 않았다. 어떤 경험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홀로 견뎌온 시간과 후회, 머뭇거림, 뒤에 숨은 슬픔과 아픔까지도 그것에 포함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간직하고 나아가는 사람만이 사랑을 지속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실 가장 진지하고 강하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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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변론 - 미래 세대와 자연의 권리를 위하여
강금실 지음 / 김영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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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변론] _ 강금실


 인간은 과연 다른 생물들 보다 우월할까. 더 소중하고, 더 가치있을까. 인간과 동물과 식물에 빠지면 무엇을 먼저 구하겠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우연히 공부를 하게 된 철학에서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아무도 내가 관심을 가지던 철학자의 말에 동의해주지 않았다. 감히 우선순위를 선택 할 수 없다는 이론이였다.


 비교적 다른 책보다 긴 이 책의 프롤로그를 아주 인상깊게 읽었다. 평등은 인간관계를 떠나 비인간 존재, 자연과의 관계에도 드리워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현대의 작가. 나는 큰 감명과 함께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환경과의 평등은 꼭 필요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아주 친절하게 현 상황과 환경 아젠다를 짚어가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모든 파트가 주옥같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것은 윗 문단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프롤로그의 주장을 5부로 나누어 설득을 이어간다. 나는 감수성이 뛰어난 편인 독자였으나, 좀 더 냉철하고 환경문제에 냉소적인 독자에게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예상을 했었다. 그러나 저자는 ‘경각심’, ‘위기’, ‘공포’ 등의 키워드를 간과하지 않았다. 약간 이기적인 태도여도 괜찮다. 그 결과가 이타적일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이 멸종된다는 이야기는 아주 잔혹하게 들린다. 고도로 발전한 기술사회에 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사라진다면 그 과정은 얼마나 길게 느껴지고 잔혹할까. 그러나 동물과 식물의 멸종에는 덤덤하다는 것이 간혹 소름이 돋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동식물이 사라지고 있고, 나는 이에 대해 무지하다. 이기적인 것은 나도 매한가지였을지 모른다. 또 다른 공포심이었다.


 다른 두려움들도 와닿았다. 지구를 인간이 지배한다고 착각하는 구 시대적인 문화를 유지할 때에, 이 관점이 뒤집어 지는 순간은 얼마나 늦은 걸까. 피부로 와닿는 순간은 또 얼마나 늦을까. 그 미래(혹은 현재)의 모습은 어떨까. 곤충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피부병에 더 쉽게 노출되는 환경, 동식물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점점 환경의 피식자가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무력할까.


 이 책을 읽는 일은 나를 조금 안심시켜주기도 했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지 오래인 환경파괴와 문화였으나, 아직 설득하고 변화시키려는 사람이 존재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게되었다. 종이 빨대보다 불편한 것은 가치관이 통째로 변해야 하는 순간이다. 불편해도 종이 빨대를 쓰자는 결심보다, 내가 지구의 포식자이자 권력자,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더 많은 불편함을 만들어 내고 감수하게다는 다짐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당신에게 찾아왔다. 지금에라도 찾아온 이 책의 신념을 지금이라도 붙잡길 바란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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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어버린 여름 - 늙음에 대한 시적이고 우아한,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지음, 양영란 옮김 / 김영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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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어버린 여름] _ 이자벨 드 크루티브롱


시간을 멈출 수 없고 내가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어느 날이 있었다. 나를 비롯하여 내가 사랑하는 것 들이 모두 변한다면, 변하는 모습도 아름답기를 바랐다. 그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부분도 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책임은 오롯히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명을 다하여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그녀가 얼마나 찬란하고 고된 인생을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당신께서 죽음에 가까워 지는 순간까지 또렷하게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의 발자취에는 늘 땀이 흥건했다.

그렇게 치열한 인생을 살아갈 자신도 없는 내가 멋진 노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의 어르신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고 스스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가. 이런 고민에 대학교 교양 수업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라는 강의를 들었다. 노년기의 특징이 이론적으로 드러나고, 도망칠 수 없는 현실들이 펼쳐졌다. 철저한 약자의 삶.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과거 그리스에는 노인들이 지혜의 상징이자 길잡이였다고 한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시기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총명함을 잃을 만큼 장수를 하게 하는 의료기술과 너무도 빨리 변하는 트렌드가 그들의 앞을 막는다. “어른들께 물어봐.”, 라는 말 보다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말이 더 와닿는 것이다. 뭣 모르는 어른이 되는 일은 공포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어른에게서 지혜를 찾기로 했다. 당신이 겪은 일을 듣고 싶었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은 제목 그대로 내가 늙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을 기록한 이자벨의 저서이다. 모두의 존경을 받고 박식한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학자가 통제할 수 없는 노년기를 맞이하며 쓰는 회고록이다. 내가 꿈꿀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의 노인인 저자 이자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지 못한 노년기를 마주한다. 이자벨 같은 여성은 노년기에 대한 두려움이나 노년기의 결핍이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 했으나 오산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불평이 아닌 고찰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노년기가 올 수록 내게 부족해지는 역량들과 가지지 못한 환경, 선택에 대한 댓가 등 언젠가 마주해야할 이야기들을 고민하게 된다.


이자벨은 거침없이 솔직하다. 자신의 실수들과 겪은 고난을 가감없이 이야기하며 독자를 자극한다. 태생적으로 우울증을 가졌던 그녀의 노년기 우울증과,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발언이 동의를 얻지 못한 순간들, 가지지 못한 손주들에 대한 아쉬움과 ‘늙고, 마르고, 옷 맵시도 나지 않는 (p.31)’ 노인이 되어버린 순간들 말이다. 그녀가 한 일이라곤,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노인은 곧 역사의 산물이라고 할까. 이자벨은 시대의 변화 중 수 많은 사회적 아젠다의 당사자였다. 페미니스트이자  이민자, 학자이자 정치 참여자이다. 페미니즘, 이중언어, 다문화, 정체성에 관한 저서들을 써내려왔다. 늙음을 찾기 까지 이자벨은 이 아젠다들 속에서 고뇌하고 문제를 맞닥뜨린다. 페미니즘은 발전하는 트렌드라 선구자에서 구시대적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보일 때도 있었고, 청소년기의 혼란처럼 태어난 국가 프랑스와 이민온 미국 사이에서 붕 뜬 느낌을 받기도 한다. 부모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인상깊었다. ‘그 나이가 되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라는 알쏭달쏭한 말들이 어떤 마음으로 발설되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의 부모가 나를 얼만큼 사랑했을까.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자벨도 나와 같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멋진 어른이 되어 줄 수 있을까. 타인에게 유용한 삶으 살아가고자 하는 이자벨의 고민들은 대학교에서 처음 선배라는 호칭을 들은 나의 스물 한 살과, 학원 아르바이트에서 선생님으로 불리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연장자이거나 내가 가진 지위를 가졌다는 이유로 나는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 부담스럽지는 않았으나 걱정되었다. 나는 충분히 본받고싶은, 아니 적어도 되새기고 싶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젊은 나의 고민에 이자벨은 답장을 보낸다. 


p. 178. ‘나는 과연 쓸모 있는 사람이었던가? 나는 누구에겐가 영감을 주고, 그를 도와주었으며, 그를 변화하게 했는가?’ 이 고통스러운 질문엔 물론, 나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주는 졸업생들의 이메일 몇 통 외엔 똑 부러지게 구체적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윽고 불과 몇 년전에 학생들에게서 선생님으로서 받은 사랑이 떠올랐고, 어제 새벽에 늘 언니에게 기대고 싶다던 동생들과 힘든 일을 기꺼이 털어놓던 친구들의 신뢰가 마음에 자리잡았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면, 이뤄낸 것들을 성장시켜가며 또 다른 내가 되어야할테다. 좋은 것은 안고, 나쁜 것을 버려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멋진 노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상담을 받으러 가서 최근 읽는 책으로 이 책을 언급했다. 선생님은 늙음을 준비하는 젊은이가 얼마나 생소하고 근사해보이는지 한참을 얘기하셨다. 어린 어른으로 근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노년기의 어른이 되었을 때도 “그녀는 참 근사한 사람이야.” 라는 말을 듣고 싶다. 이자벨의 이정표를 흘긋거리며 오늘도 현재를 과거로 밀어보낸다. 내일로 발을 내딛으며 나이가 들어 간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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