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의 종말 - 삶의 정처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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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의 종말] _ 한병철 _ 김영사


코로나 시대에 강제된 공동체성의 결여는 자유주의 체제를 일시멈춤시켰다.

사람들은 포스트 코로나에 희망을 보며, 지금까지 돌아보지 못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빈틈을 발견하고 이를 포스트 코로나에 적용시킬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멈춤의 시간들이 강제되었기에 코로나 이후에는 더욱 성과주의가 심화될 것이라 본다. 주체적이지 못한 행동을 통하여 무언가 발견하더라도, 그 발견을 이어갈 주체가 어디 있느냐는 말로 들렸다.


독일어 리추얼을 지금까지 번역하여 사용해온 서적들과는 달리 원어의 포괄적인 의미를 중심적으로 사용했다. 공동체적 성격을 띄는 많은 단어들이 포함되었고, 처음에는 굉장히 막연하게 느껴졌다. 한 편 한 편을 읽어 나가면서 리추얼이 담고있는 수 많은 정의들을 하나씩 성립할 수 있었다. 리추얼이라는 단어가 책장이라면, 그 단어로 표현하는 다양한 정의들을 그 책장에 하나씩 꽂아넣는 의미였다. 책장이 가득 채워질수록 종말이 다가온 리추얼에 대한 갈망과 슬픔이 떠올랐다. 사회는 갈수록 메마르고, 그 속의 사람들은 야위어간다. 사회적인 인간은 점점 외로운 사회에서 고립되어 살아간다.


리추얼이 결여된 사회는 본질적으로 공허하다. 하루는 정치외교학 전공 수업에서 아래와 같은 주제의 강의를 듣고 해석했다.

'아름답고 비어있는 것을 찾는 것을 조심해야한다. 사랑, 정의, 행복, 평등. 구성물 없이 -완벽-해보이는 말들은 위험하다. 과정으로 결과를 만들어야 하나, 그에 자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결과를 부르짖는다. 당선 이후에 어떤 방법으로, 혹은 어떤 정의로 사랑과 정의를 성취했다고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도, 사용하는 사람도 조심해야한다.'

저자는 리추얼에 대하여 다양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단어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나, 그 중 이 수업의 내용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유혹에서 포르노로' 챕터가 그러했다. 이 내용은 책 뒷편의 저자 인터뷰에서 또렷하게 요약되어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은 더이상 놀이를 하지 않는다. 과정을 즐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결과를 찾고 성과를 찾는다. 그 자극적임은 포르노와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저자의 주장들은 점점 사회의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질려가던 나의 머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강한 확신에 근거가 없을 때, 저자는 이 모순된 사회를 리추얼의 종말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한다.

당최 리추얼의 뜻에 감을 못잡던 나는, 저자가 챕터마다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의 면모를 관찰하고 비판하며, 그 모든 구심점에 리추얼의 결여가 있다는 주장을 따라 걸었다. 어딘가 공허한 사회, 어휘는 수려해 지지만 의미는 결핍되어 가는 수 많은 말과 행동들. 매일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지표에 비해 하루하루가 부정적인 사람들과 그 집단들. 펜데믹의 시대에 아름다움을 찾았다는 이야기. 어쩌면 익숙해져 버린, 먼지 묻은 안경과 같았다. 색안경도 아니고, 무언가를 잘 못 볼 일도 없으니 그저 안경을 닦지 않았다가 어느날 다른 안경잡이가 지저분한 내 안경을 닦아 준 것이다. 생각보다 선명해진 문제들과 얼룩으로 가려지지 않은 원인들 그것을 또렷하게 마주하는 것은 가슴시린 일이었다.


문제와 원인을 마주하지 않는 것은 도피다. 도피를 한다고 상황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악화 될 뿐이다. 과거는 순수할 수 있으나 무지에 의한 순수일 수 있다. 따라서 저자가 줄곧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도 동의했다. 미래에는 본의 아니게 알게 될 것들이 늘어날 것이다. 현재까지 그렇게 살아 온 것 처럼 말이다.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을 이어오다가 리추얼의 종말이라는 현재를 맞이했다. 늘어난 지성과 늘어난 외면. 우리는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형태의 미래를 맞이하고 싶다면 우리는 새롭게 자신과 타인과 공동체, 나아가 '함께'라는 말이 어울리는 모든 것을 다시금 정의해야한다. 맑은 안경에 익숙해져야 한다. 희뿌연 안경알에 적응하면 앞으로도 찌뿌린 눈과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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