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이 결여된 사회는 본질적으로 공허하다. 하루는 정치외교학 전공 수업에서 아래와 같은 주제의 강의를 듣고 해석했다.
'아름답고 비어있는 것을 찾는 것을 조심해야한다. 사랑, 정의, 행복, 평등. 구성물 없이 -완벽-해보이는 말들은 위험하다. 과정으로 결과를 만들어야 하나, 그에 자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결과를 부르짖는다. 당선 이후에 어떤 방법으로, 혹은 어떤 정의로 사랑과 정의를 성취했다고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도, 사용하는 사람도 조심해야한다.'
저자는 리추얼에 대하여 다양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단어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나, 그 중 이 수업의 내용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유혹에서 포르노로' 챕터가 그러했다. 이 내용은 책 뒷편의 저자 인터뷰에서 또렷하게 요약되어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은 더이상 놀이를 하지 않는다. 과정을 즐기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결과를 찾고 성과를 찾는다. 그 자극적임은 포르노와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저자의 주장들은 점점 사회의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질려가던 나의 머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강한 확신에 근거가 없을 때, 저자는 이 모순된 사회를 리추얼의 종말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한다.
당최 리추얼의 뜻에 감을 못잡던 나는, 저자가 챕터마다 이어지는 다양한 사회의 면모를 관찰하고 비판하며, 그 모든 구심점에 리추얼의 결여가 있다는 주장을 따라 걸었다. 어딘가 공허한 사회, 어휘는 수려해 지지만 의미는 결핍되어 가는 수 많은 말과 행동들. 매일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지표에 비해 하루하루가 부정적인 사람들과 그 집단들. 펜데믹의 시대에 아름다움을 찾았다는 이야기. 어쩌면 익숙해져 버린, 먼지 묻은 안경과 같았다. 색안경도 아니고, 무언가를 잘 못 볼 일도 없으니 그저 안경을 닦지 않았다가 어느날 다른 안경잡이가 지저분한 내 안경을 닦아 준 것이다. 생각보다 선명해진 문제들과 얼룩으로 가려지지 않은 원인들 그것을 또렷하게 마주하는 것은 가슴시린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