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 열린책들 세계문학 251
서머싯 몸 지음, 이민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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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셴든에게는 한 가지 병 같지 않은 병이 있었는데, 열차 도착 예정 시각 한 시간 전쯤 되면 차를 놓칠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이른바 열차 병이다. 호텔에서 짐을 가져오기로 한 짐꾼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아 조바심 태우고, 호텔 셔틀버스는 어째서 그렇게 시간을 빠듯하게 다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 도로가 한번 막혔다 하면 돌아 버릴 것 같고, 역 짐꾼들이 굼뜨게 움직이는 꼴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고, 온 세계가 자기를 지각하게 만들 작정으로 무시무시한 음모를 꾸미는 것만 같다. 승강장 입구를 통과할 때는 사람들이 자기를 막는 것 같고, 매표소에서 다른 열차표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행렬 속 사람들은 잔돈을 꼼꼼하게 센다고 일부러 꾸물거리는 것 같고, 수하물 등록은 끝도 없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동행이라도 있을라치면 신문을 사러 가지 않으면 운동 좀 하겠다고 승강장으로 내려가거나, 또 난데없이 처음 보는 사람하고 대화를 하거나, 갑자기 전화할 데가 있다면서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거나, 열차 놓칠 행동만 골라서들 한다. 이래도 그가 타려는 열차마다 다 놓치게 하려고 온 우주가 공모하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넉넉히 출발 30분 전에 짐을 머리 위 선반에 얹고 예약한 좌석에 앉기 전까지는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심지어 역에 너무 일찍 나가는 바람에 자기가 타야 할 열차가 아닌 앞 열차를 타고 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게 다 열차를 놓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그놈의 열차병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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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 열린책들 세계문학 251
서머싯 몸 지음, 이민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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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이한 면을 탐구하는 비전문가의 눈에 이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감상해야 할 진품이었다. 그는 걸어다니는 미사여구랄까, 가발 쓴 머리에 수염 한 가닥 없는큰 얼굴에도 불구하고 어떤 품격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자기도취가 대단해 허황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함부로 다뤄도 될 만한 인상은 아니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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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 열린책들 세계문학 251
서머싯 몸 지음, 이민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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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소만, 정규 교육의 효과를 보지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되겠군요. 그자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당신이나 나하고는 달라요. 그자가 근처에 있을 때 황금 담배 케이스를 맘놓고 내놔도 될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만약 포커를 쳐서 당신한테 돈을 잃었다면 그 담배케이스를 들고 냉큼 전당포에 잡혀 본전을 찾으려 들 사람,
틈만 보였다 하면 당신 아내를 꼬드기려 들다가도 당신이 곤경에 처하면 마지막 남은 빵 부스러기까지 내어 줄 사람,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들으면 눈물을 흘리지만 자기 인격을 모독한 자는 개처럼 쏴죽일 사람이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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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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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역사와 관련해서, 어떤 일은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에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망각이며, 자신들의 역사가 지워질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가장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역사는, 비록 기념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기념물을 세워 표지를 남기는 것은 역사의 절반일 뿐, 나머지 절반은 해석이다. 그리고 망각보다 더 나쁜 것은 사건을 잘못 전하는 것, 편파적으로 전하는 것, 혹은 일부만 전하는 것이다. 진실은 전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재현 자체에만 맡겨둘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사고 후 그녀는 모든 일을 경찰에게 맡겼지만, 그 결과 자신은 옆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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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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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어떤 구분선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는 그 구분선의 한편에서 이야기를 하는 반면, 그녀 자신은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그녀가 아닌 어떤 모습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에 대해 한 모든 이야기가 그녀에게는 하나도 해당되지 않았다. 반대돠는 것들만 늘어놓은 일종의 반대 서술  - 적당한 용어가 없으니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면 -덕분에, 뭔가가 뚜렷하게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옆자리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라는 하나의 형태, 윤곽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 윤곽을 둘러싼 바깥의 세부적인 면들은 모두 채워졌는데, 정작 윤곽 자체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형태 덕분에, 비록 그 내용물은 알지 못했지만, 사고 이후 처음으로 그녀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지할 수 있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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