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어떤 구분선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는 그 구분선의 한편에서 이야기를 하는 반면, 그녀 자신은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그녀가 아닌 어떤 모습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에 대해 한 모든 이야기가 그녀에게는 하나도 해당되지 않았다. 반대돠는 것들만 늘어놓은 일종의 반대 서술 - 적당한 용어가 없으니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면 -덕분에, 뭔가가 뚜렷하게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옆자리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라는 하나의 형태, 윤곽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 윤곽을 둘러싼 바깥의 세부적인 면들은 모두 채워졌는데, 정작 윤곽 자체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형태 덕분에, 비록 그 내용물은 알지 못했지만, 사고 이후 처음으로 그녀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지할 수 있었다. - P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