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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했다. 그러니 같이 살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말인지 자문해 보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불거지는 정치·산업 재해 앞에서 우리는 때때로 무기력해진다. 비보를 내 일처럼 안타까워하는 의식은 소모품처럼 닳아, 소식을 듣고도 무감해지기에 이른다. 외면은 쉽고 달다. 나 하나 살기에도 팍팍하다, 그래봤자 남의 일이 아니냐며 불패의 변명을 던진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같은 땅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름조차 모르는 상대에게 선의의 명함을 내민 장처럼, 우리는 이름 모를 동료 시민으로 살아왔다. 내가 손을 내밀지 않아도 누군가는 내게 손을 뻗고 있었다. 연대하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한편 세월호와 이태원, 이름만 다른 사건들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주워 담지 못했다. 설명할 길 없이 망연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제 그만 잊자'는 언론이 나올 때에야 알았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어느 한 축이 흔들린 채 사는데 그게 도통 회복이 안 된다고 말이다. 이는 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방증이었다.
누군가에게 말뚝은 전복된 선박의 선원이었고 부모였다. 바다에 가라앉은 자식이었고, 길에서 죽은 청년이었으며, 정리 해고로 생명줄이 끊긴 노동자였다. 그게 전부 살아남은 사람의 기억으로 쓰여 있었다. 지우는 사람이 기록하는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본문 248쪽)
『말뚝들』에서는 죽었지만 죽지 않은 '말뚝들'이 전국을 들썩이게 한다. 통제하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보도처럼, '말뚝들'은 시시각각 등장해 재난 상황을 알린다. 죽어도 눈 감을 수 없는 숨, 그리하여 말뚝으로 돌아온 사람들. 한때 사회가 외면했던 그들의 말은 '말뚝'이라는 형상을 통해 사방에 퍼진다. 해안에, 도심에, 끝내는 광장 하늘에 도달한다. 잊어야 한다고 해도 기어이 되살아나는 기억이 있듯이, 묻으려 해도 반드시 일어서는 존재도 있는 법이다.
테믈렌, 당신 끝까지 내 돈 갚지 않고 가네요. 조심히 가요. 내 빚 갚지 말고 계속 안고 있어요. 그걸로 당신 계속 기억할 테니 서러워 마요. (본문 279쪽)
언젠가 광장이 빛과 소리로 가득한 날이었다. 아닌 것을 아니다 말하는 데 있어 물러섬이 없는 목소리. 이 목소리를 지지하는 수많은 불빛. 어떠한 폭력도 그걸 방해할 수 없었다. 내가 광장으로 나갔을 때, 특별히 대단한 걸 쟁취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싶었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필연적으로 오는 슬픔을 나눠가지고 싶었다. 광장에 있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목격이 아닌 기록을 해나갈 것이다.
일제히 해금됐다. 모두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본문 282쪽)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