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독립과 여성 교육을 이끈 차미리사 지식 잇는 아이 22
이여니 지음, 이주미 그림, 한상권 감수 / 마음이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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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탄압 속에서 억압받던 여성의 삶을 벗어나 스스로 개척하며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 아세요?
차미리사!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그녀의 일대기를 만났어요.
<나라 독립과 여성 교육을 이끈 차미리사>

















1879년에 태어난 차미리사는 섭섭이라고 불렸어요.
아들과 딸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컸어요.
아들은 귀하게 여겼고 딸은 쓸모없는 존재로 업신여겼죠.

미리사는 조선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신부터 배우고 개우쳐야 했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었어요.
고모의 권유로 상동교회에서 기독교를 접했고
그때 받은 세례명이 ‘리사(Lisa)였어요.

공옥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박에스더에게 감명을 받아 미국 유학을 결심해요. 

계몽운동의 시작이죠!
상해로 간 미리사는 버지니아 여학교를 다녔어요. 

하지만 건강 악화로 청력을 잃고 말았죠.

미국으로 간 미리사.
샌프란시스코에서 호텔 일을 하면서
대동보국회를 결성!
한국 부인회 창립 및 회장으로 활동했어요.

여성의 자각이 곧 나라의 독립이라 믿었어요.
억압받던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평생을 받쳤어요. 

남편의 성인 김씨를 버리고
본래의 성인 차씨를 쓰기로 했어요.

”내게는 한 가지 한이 있다.
조국의 온전한 독립을 못 보고 죽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955년 6월 1일, 미리사는 일흔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하나가 된 조국을 보지 못한 채 말이죠.



















”조선의 딸들아!
나는 그대들이 바늘의 귀가 되어 주길 바란다.
크든 작든 모두 바늘귀 하나가 되어
세계 인류를 입혀 주길 바란다.“

세상을 떠난 후 2002년 광복 57주년을 맞아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았어요.
‘여자가 교육을 받아야 나라가 독립한다‘는
신념으로 여성 교육 운동을 이끌며,
어두웠던 시대 여성들에게
깨달음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어요.
감사합니다!






<마음이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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