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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는 내내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감정의 기복이 많았다. 저자는 20대의 젊은 시절을 소위 3D직종이라 불리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자리에 몸담으며 하루 12시간이상 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음에도 우리로써는 상상도 못할 변변찮은 보수를 지급받으며 억울하게(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일해온 수기를 이 책에 덤덤하게 그려냈다.
요즘 일자리가 없다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잴거 다 재고 따질거 다 따지는 세상이다. '내가 경력이 얼만데' 혹은, '내가 그래도 어린데 이럴 수 있나?' 이런식으로. 그 외에도 4대보험 적용유무와 같은 기본적인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직장동료와의 갈등, 잦은 야간, 잔업 칼퇴근문제, 식대제공등의 불만 때문에 이직을 하는 경우도 적잖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종류의 투덜거림은 곧 사치이자 호사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채 노동착취란 이름으로 '노동의 배신'을 당하고 있는지 나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꽃게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 외의 생선을 어획하는 선원들의 고충을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때론 한번 출항을 나가면 이틀발이는 물론이고 보름까지도 육지로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다고 하니그 좁디 좁은 선실에서의 흔들리는 숙식생활이란게 보통 사람이 상상하는 노동의 강도와 피로 그 이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 같았다. 갑판 위 선원들의 공통점은 각자의 전성기가 다들 있었으며 배 위에 있는 지금이 가장 밑바닥이고 갈 곳이 없어 받아주는 데가 그곳 뿐이라는 사실이었는데 이것은 일하는 분위기에 희망이란 한줄기조차 보이지 않는 까닭이기도 했다.
편의점과 주유소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많이 드나드는 곳이고 직원들의 동태도 많이 지켜봐온 터라 그리 힘들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물론 이 책을 읽기 전 손님의 입장에서.) 하지만 종업원들은 사소한 것들에(그들에겐 사소하지 않을 것이지만) 많은 스트레스와 감정적인 인격모독을 느끼고 있었고 최저임금 조차 받지 못하고 일하면서도 고용주에게 그리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그렇게 이리뛰고 저리뛰고 일하면서도 한번의 실수가(예를 들어 주유소에서 오바나 혼유를 했을 때나, 편의점에서 계산착오가 생겼을 때) 자신의 일당 혹은 그 이상을 날려 버릴 수 있는 위험 부담을 안고 일을 해야 했다. 이것은 자동차 운전자가 항시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돼지 농장편을 읽을 때는 열악한 근무 환경과 영양 실조가 걸릴 지도 모르는 식단 앞에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돈사작업은 마치 주인공이 돼지똥과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 3D로 펼쳐지는 듯 했다. 삼겹살을 무지 좋아하는 나에게 가끔 이런 장면이 연상되는 책이나 영상을 보면 입맛이 떨어지기 일쑤이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그런 것들은 눈에도 안들어오고 이미 이런 환경에 해탈한 듯한 근무자들과 직원들의 복지에는 극한의 쪼잔함을 보이는 이사라는 인간의 비열함, 그리고 그 밑에 달려있는 나치잔당들. 치를 떨었다.
이 사회에 이미 쫙 깔려 있을, 돈독이 오를 대로 오른 소위 있는 인간들이 높은 자리에 있답시고 노동자들의 육체와 정신을 필요 이상으로 파탄내는 현실이, 이것이 실화라는 게 도무지 믿기 싫었다.
비닐하우스에서의 일은 농사일을 하는 모든 농민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거기에 고용되는 피고용자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쌀 이외에도 과일이나 채소를 꼭 먹고 살아야 하는 한국인의 특성 상 이런 비닐하우스 작업은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 하지만 농업이 살찔 수 없는 현 사회 구조에서 고용인은 선의적인 마음의 소유자라도 어쩔 수 없이 저임금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렇게 저자와 같은 워킹푸어들은 하루의 반 이상을, 일하는 시간에 할애하면서도 그에 합당한 임금은 고사하고 영양가 없는 식사와, 휴식부족, 문화생활 차단, 가족과의 연락 두절, 수면부족등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누리지 못한 채 그저 일만 하고 살아간다. 우리가 하는 말 중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라는 말도 그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은행에 적금을 들거나 좋은 곳에 취직을 하면 몇 년 뒤엔 집이나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들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사회에서 체스의 '퀴닝'이 불가능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복권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얻지 않는 이상 한달에 방세 내고 생활비에 교통카드 충전하고 이리저리 쓰고 나면 남는 돈은, 저축은 커녕 빚 안지고 살아가는 게 다행인 생활. 그런 생활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사람들이 워킹 푸어란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 흩어져 우리 사회가 그나마 올바르게 굴러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한가지 인상깊었던 점은 저자인 한승태씨가 당시를 회고하면서 쓴 문장 하나하나가 굉장히 낙관적인 면도 많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주는 동료와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를 몪어주는 소속감을 느끼고 극한의 현실을 겪었으면서도 그러한 상황 자체를 재미있게 묘사했다는 점도 그의 글솜씨와 사고방식이 한 몫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고학력자이고 당시 젊은 그로써도 거칠 것이 없던 모양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재고 따지는 많은 구직자들과 반대 성향을 지녔다는 부분에서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사회 깊이 물든 자본주의와 해결책이 요원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해 다시 한번 통감하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