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늘 투명 거울
김창운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4년 6월
평점 :
#하늘투명거울 #김창운 #클북 #슬로어

한 편의 시를 타인에게 처음 보여주는 일은 알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하지만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나의 대상을 만나면 주의 깊게 관찰하며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p151>
이 책은 고등학교 교사인 김창운 시인의 첫 시집으로 총 4부 108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인의 고백처럼,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면밀히 바라보고 섬세하게 그려낸 표현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빛 내림>
밤새 토해낸 거미의 은빛 열정
기하학으로 엮은 씨줄과 날줄
아침 안개 속 빛 내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연의 빛은 사심이 없으나
세인들은 알지 못하지
이 아침, 그대 눈을 비추는 한 줄기 빛.<p24>
시골 깡촌에서 자란 나는 이 시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밤새 없던 거미줄이 처마 끝이나 나무, 풀 사이에 쳐져 있는 걸 자주 목격하곤 했는데, 그것을 “은빛 열정”이라 표현하다니...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 평소엔 그저 눈에 거슬리는 존재로 여겨졌던 거미줄이, 시인의 언어를 통해 보면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동심에 빠지다’라는 시에서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묘사한 대목 역시 경이롭다.
눈곱만한 비행기 한 대, 꽁무니에다
제 덩치보다 부푼 실타래 소리 없이 풀어헤치며
파란 하늘에 뽀얀 금 길게 그어 놓고 모른 척 달아난다.<p27>
어릴적에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면 하얗게 ‘비행운’이 생기는데, 특히나 빠르게 지나가는 비행기의 비행운은 길고 곧게 뻗어있어서 동생이랑 소리소리 지르며 구경했었다. 비행운이 사라지면 못내 아쉬워했던 아련한 기억들...
이런 비행운의 모습을 시인은 ‘부푼 실타래 소리 없이 풀어헤치며’라 표현하고, ‘뽀얀 금 길게 그어 놓고 모른 척 달아난다’라니...이 얼마나 섬세하고도 재치 있는 비유인가!
마음을 울리는 시가 너무 많아 무엇부터 적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한 줄 한 줄이 오래된 기억 속 무언가를 조용히 깨우는 느낌이다. 아마도 내 안에 꼭꼭 숨겨 두었던 감정을 건드렸기 때문이리라.
‘내려놓기’라는 시를 읽으며, 시골집 마당에서 처마와 처마를 이어 길게 설치한 PVC 코팅 줄, 그리고 무거운 빨래에 줄이 처지지 않도록 중간에 칼집을 낸 긴 대막대기로 받쳐 두었던 풍경이 떠올랐다. 시인은 이처럼 평범한 일상 속 장면에서조차 줄에 매달린 빨래집게를 단순한 도구로 보지 않고, 마치 ‘무언가를 쉽게 놓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집착’처럼 풀어낸다. 그 표현을 통해, 우리 모두 욕심만 움켜쥔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조용히 돌아보게 한다.
<내려놓기>시골마당 까만 빨랫줄에 매달린 빨래집게 자매들
악다문 입, 일할 때나 쉴 때나 매한가지다
무슨 집착 그리 많은지
그대 가득 움켜쥐고 있는 것 없는지
나도 욕심만 붙잡고 매달려 사는 건 아닌지
푸른 강물은 무심히 흐른다.<p57>
#하늘투명거울
이외에도 ‘옹이’, ‘봄날 아침’, ‘인연’, ‘시월 아침 숲에서’, ‘승화’, ‘그런 날’, ‘봄날 1,2’, ‘얼음꽃’ 등등 저마다 다른 결을 지닌 시가 한가득이다. 그림이든 시든 관찰은 표현의 깊이와 생명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다.
익숙한 것들에서 낯선 의미를 길어 올리는 작업이기에 더 많이 보고, 더 자세히, 더 오래 머무는 시선이 필요하다.
김창운 시인의 시들은 어떤 거창한 메시지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머무는 작고 조용한 것들을 응시하게 만들며, 내 삶의 결을 조용히 되짚게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함>
저자: 김창운
출판사: 클북 @slower_as_slow_as_poss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