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서툰 사람들 -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고선규 지음 / 아몬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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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은 우리가 당연히 여겼던 세계를 뒤흔들고, 삶의 이야기를 다시 쓰도록 초대한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재정의하도록 만든다.”<p137>



 


어쩌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이어지는 동안 내내 내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이라는 질문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자살, 사고, 존엄사 등 다양한 사별의 사례를 통해 열 편의 영화 속 인물들이 저자의 상담실을 찾아와 상담을 받는 과정을 그린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며 사별 이후 남겨진 이들이 겪는 고통과 상실을 들여다보고,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잘 떠나보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또한 슬픔에 서툰 우리 사회가 사별자의 온전한 애도를 가로막는 현실 속에서, 슬픔의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곁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열 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죽었지만 살아 있는 남편과 계속 이야기해도 될까요?’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한 2013년 영국 TV 드라마 돌아올게였다. 교통사고로 남편 애시를 떠나보낸 마사는 지독한 외로움과 두려움, 불안이 뒤섞인 슬픔 속에서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애시가 남긴 메시지와 SNS 기록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버전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문자로 시작해 곧 전화로 이어지고, 가짜 애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그녀는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애시가 이미 세상을 떠났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디지털 공간에서 되살아난 애시와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나 가상의 애시는 말투를 모방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감정과 온기를 담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녀는 늙어가지만 애시는 영원히 젊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더한다. 그 순간 그녀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남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애도의 방식일까?”




 

저자는 살아 있지 않은 존재와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마사가 느낀 비탄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며, 동시에 디지털로 환생한 애시를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또 다른 상실로 다가올 수 있음을 경고한다. 애도란 단순히 붙잡거나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재를 인정하고 그 공백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2023822일 천국으로 떠난 동네 친구가 떠올랐다. 어릴 적 동생과 나, 그리고 그 친구가 함께 엄지공주 동화를 읽으며 각자 캐릭터를 맡아 놀곤 했는데, 남자아이였던 그 친구는 주로 나쁜 역할을 맡곤 했다. 그걸 녹음해서 듣고 깔깔대고, 부족하다 싶은 부분은 감정을 끌어올려 다시 녹음하고, 듣고 깔깔대고...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미치겠네...)


그 친구의 카톡 프로필에는 한겨울 눈이 하얗게 덮인 고향 마을 입구 사진이 올라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프로필이 사라져 버렸다. 그당시 뭐랄까... 나는 마치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깊은 상실감을 느꼈었다.

 

기술의 진보로 인해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되살려낼 수 있는세상. 디지털 공간에 남아 있는 나의 흔적은 남겨진 이들에게 그리움에 사무치게 할지도, 혹은 또 다른 상처가 될지도 모르겠다. 소위 디지털 유해로 남아 있는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떠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그것을 남겨 두어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

 

#슬픔이서툰사람들 #고선규 #아몬드출판사 #도서제공 20260211_수요일

 

<도서출판 아몬드 @almondbook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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