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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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보았던 이휘재의 그래 결심했어라는 TV 프로그램이 생각났는데, 출연자가 인생의 중요한 선택 앞에서 A 또는 B를 선택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소설에는 바로 그와 같은 갈림길의 순간들이 등장한다. 후지산, 이부키, 거울과 자화상, 손재주가 좋아, 스트레스 릴레이 등 총 5편이 실려있다.



<후지산>

가나는 만남 앱을 통해 쓰야마라는 남자를 알게 되었고 곧 교제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후지산을 보러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건너편 열차에서 한 소녀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듯한 손짓을 했다. 가나는 주저 없이 기차에서 내려 소녀를 구하러 갔지만, 쓰야마는 끝내 내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 가나는 그의 무관심과 윤리적 결여를 경멸하며,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라 단정하고 관계를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에서 쓰야마가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순간 가나는 깊은 혼란에 빠진다.

 

쓰야마는 원래부터 그렇게 착하고 정의감 강한 사람이었던 것일까. 그걸 경박한 자신이 알아보지 못하고 그런 식으로 차갑게 이별해버렸던 것일까, 어쩌면 이별의 계기가 된 그날의 사건이 그를 그런 위험한 행동으로 몰아붙인 것일까.”<p052>



이 단편을 읽고 쓸쓸함과 함께 깊은 허무가 밀려왔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행동을 한 단면만 보고 성급히 결론을 내리지만, 겉모습이나 한순간의 선택만으로 상대를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한 판단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불완전한 판단에서 비롯된 오해가 인간 관계와 운명을 얼마나 쉽게 뒤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군다나 40대에 들어선 남녀의 이야기라면, 그것이 어쩌면 마지막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후회가 남아 더욱 깊은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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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키>

사이토 이부키는 아들의 학원 모의고사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지만, 한 시간을 일찍 도착하고 말았다. 그는 빙수 가게에 들렀으나 이미 만석이라 발길을 돌려 맥도날드에 들어가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그곳에서 옆자리 중년 여성들이 대장내시경 검사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대화는 이부키의 마음속에 두 가지 다른 세계를 그려낸다. 하나는 검사를 받아 암을 발견하고 치료하는 자신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그날 빙수를 먹느라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해 결국 암을 발견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자신의 모습이다.

 

빙수가게가 만석이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죽느냐 사느냐가 정해지는 인생이라니, 대체 뭐지? 원래 그런 건가? 인간의 일생이란 게 그런 우연의 축적이야?”<p093>


만약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짝꿍이 떠나고 없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는 단순히 한 사람의 부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온 시간과 기억이 사라지는 듯한 공허함으로 다가온다. 그런 순간이 실제로 다가온다면 너무 두렵고 막막해서, 숨이 막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게 되는 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반전에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이별을 맞이하겠지만, 그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외에도 <스트레스 릴레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불편과 짜증이 연쇄적으로 퍼져 모두를 지치게 하는 모습은 일상적이면서도, 스트레스가 전염되는 과정이 웃프고 씁쓸하게 다가왔다. 작가는 스트레스를 자기 선에서 끝내는 루시를 전파 차단자로 영웅시하는 반면, 고가라는 인물을 무시무시한 슈퍼 전파자로 그려낸다. 이렇게 독특한 소재를 풍자적으로 다룬 단편 하나만으로도 히라노 게이치로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후지산 #히라노게이치로 #하빌리스 #니들북 #도서제공 20260202_월요일

 

<니들북 @i_am_needlebook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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