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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허즈번즈
박소해 지음 / 텍스티(TXTY) / 2026년 1월
평점 :

뭐야? 막장이네, 막장이야 하면서도 막장(?)까지 내달리는 소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욕망과 해방, 그리고 뒤엉킨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미스터리, 로맨스, 호러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연’이라는 참기름을 듬뿍 뿌려 잘 버무린 비빔밥 같은 소설이다.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되는 남편들의 기묘한 설정은, 얼굴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님이 남이 되는 드라마 ‘인어아가씨’를, 적산가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욕망과 배신의 향연은 박찬욱식 미스터리 로맨스 스릴러 ‘아가씨’를, 그리고 무속과 굿판이 만들어내는 호러적 분위기는 영화 ‘곡성’을 떠올리게 한다.
임성한식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하는 다소 개연성이 부족한 설정은 중간중간 실소를 자아내지만, 읽다 보면 “아이고, 뒤통수야! 이게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고, 마지막까지 고구마 한 개 던져주는 영우 아닌 영우로 인해 “어우야, 이건 예상 못했다!”라는 반전의 정점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 극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전개야말로 이 소설의 묘미라 할 수도 있겠다.
소설은 제주도에서 심방이었던 외할머니에게 굿을 받고 아기 심방이 된 수향과, 한일합병 이후 조선에 건너와 석유와 양초를 팔아 부자가 된 아버지를 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출신 마사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수향의 아버지는 딸만 둘 낳은 아내를 버리고 송난실과 재혼한다. 그는 총독부와 미군정, 이승만 정권에서 토지과 관료로 승승장구하며, 일제 패망 이후에는 적산가옥을 헐값에 매입해 더욱 부를 쌓는다.
제주에서 살던 수향은 어머니와 동생이 죽고 외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뒤 서울로 올라와 아버지 집에 머물게 되지만, 전쟁으로 인한 배고픔 속에서 쌀 여덟 섬을 대가로 쌀가게 노인의 아들 영우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월,수,금 밤이면 찾아오는 남편의 모습이 매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한편 일제가 패망하며 본국 귀환을 앞둔 마사키는 아버지와 함께 귀국길에 오르지만, 패망 당일 사라져버린 동생을 찾기 위해 조선에 남는다. 그는 자신이 거주했었던 적산가옥을 염탐하다 수향과 마주치게 되는데...낯선 일본 청년의 출현은 수향의 삶을 뒤흔들고, 마사키 또한 그녀의 삶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작가는 소설의 모티브를, 해방 후 북에 아내와 두 자녀를 남겨둔 채 남쪽에서 재혼해 새로운 가정을 꾸린 외할아버지와, 해방 무렵 우연한 계기로 불하받은 적산가옥에서 한국전쟁을 꿋꿋하게 견뎌낸 외증조할머니의 삶에서 얻었다고 한다.
막장인 듯 막장 아닌 막장 같은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인상 깊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 분단까지 이어지는 굵직한 사건들을 생생하게 알 수 있었고,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개인의 가족사와 엮어내어, 윗세대가 고단한 삶 속에서 어떻게 견뎌내고 살아남았는지 엿볼 수 있어 나름 의미 있었다.
#허즈번즈 #박소해 #텍스티_출판사 #장편소설 #도서협찬 20260102_금요일
<텍스티 출판사 @txty_is_text 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