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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 1949~1992 ㅣ 아티스트웨이 2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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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김응교 평론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40년 넘게 읽고 분석해왔다. 그는 하루키의 초기 소설들을 중심으로 역사적 트라우마와 무의식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조명한다. 책 제목에 담긴 “어디에 있니”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미도리가 던진 질문을 인용한 것으로, 하루키 문학의 핵심인 존재의 상실과 회복을 향한 여정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책을 읽다 보니 얼마 전 읽은 『기억의 유령』 속 W.G. 제발트가 떠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제발트는 모두 아버지 세대의 전쟁 경험을 깊이 성찰하며, 그들이 남긴 침묵과 죄책감, 역사적 상처를 문학적으로 탐색해왔다. 하루키는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아버지가 중국 전선에 복무했지만, 전쟁에 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밝히고(p.45), 제발트 역시 『이민자들』과 『아우스터리츠』에서 독일 전후 세대가 겪은 침묵과 기억의 단절, 그리고 역사적 트라우마를 핵심 주제로 다룬다.
또한 하루키의 작품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세계관이 자주 인용되거나 변주되어 나타난다. 두 작가는 한 가지 주제를 단정짓기보다, 독자에게 애매하고 복합적인 사유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하루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양을 쫓는 모험』 등에서 불확실한 현실, 권력의 부조리, 정체성의 혼란을 끊임없이 탐색하며, 카프카적인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는 프란츠 카프가와 비슷한 면이 많다. 다무라 카프카는 아버지로부터 떠나는 인물인데, 아버지를 떠나고자 하는 욕망은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욕망이었다.<p53>
하루키의 작품세계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쥐 인간’이다. 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 그리고 『양을 쫓는 모험』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쥐 3부작’을 통해 쥐 인간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존재의 불안과 고립감을 탐색한다. 쥐 인간은 주인공의 내면과 마주하며 어둠 속에서 말을 건네는 존재로, 사회적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단독자의 상징이자, 기억 속에 떠다니는 잊혀진 세계의 잔해를 대표한다.
밤에는 자기 일을 하는 ‘쥐’의 생리는 바를 경영할 때 영수증 정리를 마친 심야에 글을 쓰던 하루키를 상상하게 한다. ‘쥐’는 어딘가 균형을 상실한 존재로서 부서진 자아, 금이 간 존재다.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로 탈출하는 마지막 선택도 영락없는 하루키 자신이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쥐’는 하루키의 무의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p133>
#무라카미하루키지금어디에있니
책을 읽으며 하루키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분석해낸 비평가의 시선은 그의 소설들을 전혀 다른 층위에서 조명하게 한다. 사실 이 비평서를 읽지 않았다면 하루키 문학은 나에게 너무 난해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특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은 작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거 같다.
피츠제럴드가 자신을 최고의 작가들의 기법을 훔친 ‘문학적 도둑’이라 칭했듯(피츠제럴드, 글쓰기의분투), 하루키 역시 만만치 않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카프카뿐 아니라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다양한 작가들의 흔적이 엿보인다.
하루키는 이질적인 작가들의 기법을 능숙하게 해체하고 재조합함으로써, 독자들을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로 이끈다. 그의 문학은 상징성이 깊고 다층적인 의미를 품고 있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런 독자라면 이 비평서를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함>
저자:김응교
출판사:책읽는고양이 @reading_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