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저자 니샤 맥 스위니는 영국 출신의 고고학자이자 역사학자로, 현재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고전고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는 『만들어진 서양』을 통해 서양 문명에 내재한 역사적 오류를 비판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서양의 기원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순수하고 온전한 선형적 계보’라는 환상을 걷어내고자 한다.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반부에서는 ‘서양’이라는 개념의 역사적 기원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1~2장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인이 오늘날의 배타적 서양 정체성과 거리가 있었음을 밝히고, 3~5장에서는 이슬람·중유럽·비잔티움이 고전 유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해석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6~7장에서는 기독교 세계와 유럽 대륙의 분열 속에서 서양 문명의 계보가 일관성 없이 다양하게 그려졌음을 설명한다.
후반부에서는 서양 문명이 이념적 도구로 어떻게 활용되었고, 오늘날의 거대 서사로 발전한 과정을 추적한다. 8~10장에서는 16~17세기의 종교·과학·제국주의·정치 개념이 서양 문명의 형성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11~12장에서는 서양 제국주의의 강화와 인종적 지배 체계 확산 과정을, 마지막 13~14장에서는 현실 세계의 변화 속에서 서양 문명의 정체성과 기원 신화를 재고해야 함을 강조한다.
『만들어진 서양』을 읽으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제9장 「서양과 제국주의: 앙골라의 은징가」 이야기였다. 은징가는 17세기 앙골라의 군주이자 뛰어난 전략가로, 포르투갈 제국의 침략에 맞서 자주성과 문화적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인물이다. 그녀는 외교적 수완과 정치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의 구조적 폭력에 당당히 맞섰고, 유럽 중심의 서양 문명 서사에 균열을 내는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된다.

“자유롭게 태어난 자는 자신의 자유를 지켜야지 다른 사람에게 굴종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포르투갈이 노예를 공물로 바치라는 요구를 은징가가 완강히 거부하며 내세운 신념의 표현이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은징가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겠다는 제안을 통해 포르투갈과 협정을 맺으며 노예를 바치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1617년, 부친이 전사하자 남자 형제인 음반데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잠재적 경쟁자를 무자비하게 제거했고, 은징가의 아들마저 죽였다. 여성 형제들에게는 약초를 달인 뜨거운 기름을 배에 붓게 해, 출산 능력을 박탈하는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다.
그러함에도 은징가는 음반데가 도움을 청했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포르투갈과의 협상 자리에서 그녀의 등장은 당당함과 카리스마가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그녀는, 자신을 위해 깔아놓은 우단 마룻바닥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뒤, 수행 여성에게 무릎 꿇고 엎드리게 해 인간 의자에 앉음으로써, 포르투갈 대표를 올려다보는 대신 동등한 눈높이에서 협상을 시작했다.
#만들어진서양
위에서 살펴보았듯, 은징가는 아프리카 역사 속의 중요한 여성 인물로 언급되며 근대 앙골라의 국모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서양의 시각에서는 그녀를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아프리카인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서울의 봄》 속 대사가 떠올랐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역사의 승패와 그에 따른 평가가 얼마나 권력 중심적인가를 날카롭게 드러낸 이 말처럼, 『만들어진 서양』은 역사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권력과 해석에 의해 구성된 서사임을 강조한다. 서양이라는 개념은 시대적·정치적 필요에 따라 형성된 결과물이며, 저자가 말하듯 선택적으로 취사된 허구의 이야기라는 주장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함>
저자: 니샤 맥 스위니
옮긴이: 이재훈
출판사: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