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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종이 울릴 때
임홍순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5년 5월
평점 :
#저녁종이울릴때 #임홍순 #클북 #슬로어

한도 많고 처절했던 지나간 세월을 이제 되돌아보면, 슬픔과 아픔보다는 오히려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지나간 날의 역사는 사건들을 잃어버리거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p480>
82세의 작가님께서 한국전쟁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산골 마을 교사 김기수의 삶을 통해, 격변의 시대를 지나온 부모 세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지금은 사라진 풍경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잊히고 잊혀졌던 삶의 조각들을 다시 펼쳐 보인다.
덕분에 소설속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까맣게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추억과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잔상을 다시 되살려본다. 한겨울 땔감이 없어서 식구들 모두 비료푸대를 들고 솔방울을 주으러 다녔고, 대막대기에 낫을 끈으로 칭칭 감아서 솔나무 죽은 가지들을 잘라내서 한아름 머리에 이고오면 모가지가 아파서 제대로 목을 가눌수가 없어서 그대로 말캉에 머리를 대고 한참을 멈춰있었다.
거친 눈바람을 헤치고 학교에 가면 난로위에 도시락을 올려두고 둥글게 모여앉아 수업 받았던 날들, 장학사가 오는 날이 정해지면 여자 아이들은 바닥에 양초를 바르고 걸레로 윤을 내고, 남자 아이들은 창틀에 올라앉아 창문을 닦았다. 그시절엔 펜티를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귀해서 가끔은 못볼걸(?) 보기도 했었다.
옥수수를 쪄온 동수어머니, 팔지 못한 닭을 선생님께 선물한 길남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우리 엄마는 가을이면 큰대봉감을 열대여섯개씩 싸서 선생님께 드리라고 했었다. 도시락에 맨날 굴비 2마리씩 구워서 교실에서 냄새만 염병허게 풍기고 혼자 드셨던 C.J.Y 선생님께 드릴 때는 솔직히 아까웠었다. 우리 자식들은 한 개 먹기도 힘든 귀한 감이었고, 엄마가 큰 대야에 50개 이상 머리에 이고 기차타고 큰도시 장에 내다 팔았기 때문에 한 개라도 모르게 먹는 날엔 대가리 빵구나는 날이었다.
소설속에는 박정희 시대 때 누구나 겪었던 사상의 불안함과 일상에 드리운 긴장감이 짙게 배어 있고, 말 한마디, 수업자료 한 장에까지 신중을 기해야 했던 교사로서의 고달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나또한 어렸을적에 교문에 들어서면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었고, 월요일마다 조회시간에는 국민교육헌장을 줄줄이 외워 합창해야했었다.
#저녁종이울릴때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들과 그 시절 유행하던 노래들이 가득 담겨 있어,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농번기에 동원되어 땀을 뻘뻘 흘리며 벼를 베고 나면, 주인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나눠주었고, 그 달콤한 맛에 하루의 고단함이 스르르 녹아내리곤 했었다.
이 소설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시대의 흔적이자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부모 세대의 삶과 역사이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는 등이 휠것같은 삶의 무게를 감당해온 앞선 세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노인 혐오가 만연한 오늘날, 그분들이 견뎌낸 고난과 헌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함>
저자: 임홍순
출판사: 클북 @slower_as_slow_as_poss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