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되는 순간들 - 이제야 산문집
이제야 지음 / 샘터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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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를 쓰는 일은 숱한 나를 만나는 일이다.

결코 하나일 수 없는 여럿의 나를 만나며 나의 몫을 해내는 것.

우리는 오늘도 시를 빌려 지금이 아닌 어느 시간을 헤맨다.

시를 쓰는 순간은

여럿의 나를 만나 얼굴을 하나하나 찍어 나만의 암실에 걸어두는 밤.<p84>

방송작가로도 활동했던 이제야 시인이 7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이다. 직접 찍은 사진과 서른다섯 편의 ‘시가 되는 순간’이 담겨 있다. ‘아침에 뜬 달에는 어젯밤 흔적이 있다는데 기억보다는 새긴다는 마음이었다.’라는 글귀가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는다. 모두 잠든 고요한 밤에 읽어야만 이 모든 아름다운 문장들을 내안에 가두어 둘 수 있는 산문집이다.

시를 쓰는 순간이란 점토 인형 하나를 손에 쥐고, 접고, 누르고, 매만지며 아무도 모르는 슬픔의 형상을 빚어내는 일이라니… 이 문장을 읽고 무릎을 끌어안고 온몸을 웅크린 채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이 얼마나 깊고도 울림 있는 표현인가. 밤의 고독을 아는 자만이 이 문장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녀가 말하는 시가 되는 순간이란... 나의 언어로 가장 오래 말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나를 가두어 오롯이 무언가를 바라볼 때 시작되는 대화이고, 가장 고요하고 묵묵한 존재의 속사정을 오래 기록하는 것이며, 가장 멀리 보내고 싶은 혼잣말을 쓸 때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꽃 한송이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어느 마당에 앉아 매해 다시 꽃피우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고, 세상의 모든 진실과 허구가 만나 이곳에 없는 세상이 탄생하는 지점이며, 보이지 않는 따뜻한 손들을 잡고 가는 여정이자, 어느 누군가의 장면을 그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 그 모든 시공간이 시를 쓰는 순간이 되며 단지 우리가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어려운 시의 반대말은 쉬운 시가 아니라 “읽게 되는 시”, 독자가 읽고 느낀 후에 채울 빈 공간을 두는 시라 말한다. 잘 쓰는 것보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면 좋겠다는 시인의 말이 깊이 와닿는다. 나 또한 힘들 때 시를 읽기에 내가 생각하는 시란 물음표가 아닌 쉼표이고 느낌표이길 바란다.

모든 시간으로 가려면 건너는 법을 알아야지.

오지 않은 아침의 말들에게 물었다.

놓아준 적 없는 햇빛에도 마음이 그을린다.

위로되지 않는 여름날 우정처럼.<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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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제야

출판사: 샘터사 @isamt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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