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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노동 - 꼭꼭 숨겨진 나와 당신의 권리
은수미 지음 / 부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국회 청문회에서 한 의원은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다가 이내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바로 쌍용자동차 청문회 현장에서 초선 은수미 의원이 쌍용자동차의 희생자 명단을 불렀을 때다. 노동자로서, 노동운동가로서, 노동문제 전문가로서 ‘노동’이라는 주제에 맞서 길고도 치열한 시간을 보냈던 은수미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명단에 나오자 고용노동부가 바짝 긴장했다고 한다.
은수미는 국회에 입성한 후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하는 의원 중 하나다. 쌍용자동차, 민간군사 기업 컨택터스, 노조파괴 창조컨설팅 같은 반노동적 현안에 맞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확실히 한국사회는 심각한 노동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는 일상화된 정리해고, 900만 비정규직, 근로 빈곤 등을 양산하고 있다. 노동의 위기는 곧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대다수의 삶의 위기와 연결되게 마련이다.
현재의 불안한 노동 현실은 세계사적으로 드물게 경제성장과 민주화에서 높은 성과를 보였다는 한국사회에 대한 높은 평가마저 위태롭게 한다. 이제 저자는 국회의원으로서 한국사회 노동의 총체적 문제를 검토하고 본질적인 대안을 모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연대와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벌써 20년 전이 되어버렸는데 그때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영화가 순회 상영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 영어 선생(영화배우 정진영 씨가 이 역할을 했고, 조금 더 지나 뜨기 시작했다)은 아이들에게 ‘L’자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단어 세 가지를 묻는다. Liberty, Love까지는 순조롭게 나왔는데, 그다음이 참으로 어렵다. 결국 아이들은 답을 찾지 못하고 교사가 말한다. 바로 Labor 노동이다. 아이들은 처음에 뜨악하며 ‘앵, 노가다가 아름다운 단어라니’ 이런 식이었으나, 영어 선생은 이어 말한다. 노동이 이 세상을 만들었고 노동을 사람들은 더욱 사람다워질 수 있었노라고.
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자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묻는 것은 왜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노동을 경시하고 불온시하냐는 것이다. 이는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수많은 노동자들과 나눈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노동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이런 심각한 노동현실 속에서 저자는 먼저 우리가 쓰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짚자고 한다. 노동, 노동자, 노동권, 사용자, 고용부, ‘고용불안의 또 다른 이름인 유연성’ 이런 말들이 지닌 함의를 제대로 파악하고 정립하는 데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마치 것은 마치 실어증 환자에게 말을 찾아주는 것과 같다. 그 말의 온전한 의미를 찾아갈 때 비로소 그 말이 구체적인 힘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바뀌면서 보다 폭넓고 중요한 노동과 노동권의 의미를 축소하는 의도를 드러낸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여기서 노동권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노동권과 관련해 1944년 국제노동기구(ILO) 필라델피아 총회에서 채택된 ILO의 목적에 관한 선언 즉 필라델피아 선언을 참조해봐야 한다.
“①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② 표현과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③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 ④ 결핍과의 전쟁은 각국에서 불굴의 의지로, 그리고 근로자 대표와 사용자 대표가 정부 대표와 동등한 지위에서 공동선의 증진을 위한 자유로운 토의와 민주적 결정에 함께 참여하는 지속적이고도 협조적인 국제적 노력에 의하여 수행되어야 한다.”
이미 60여 년 전에 전 세계적으로 노동과 관련한 이런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한국사회의 노동 현실은 이와 너무 거리가 멀다. 여전히 사용자 중심의 시선이 모든 것을 좌우해 우리조차 파업 하면 불순하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행위로 여긴다. 이는 노동권이 생존권 그 이상으로 인간다운 품위를 위해 필요한 것임에도 협소하게 해석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흔히 노동을 거론할 때 ‘빵과 장미’를 이야기한다. ‘빵’이 생존의 문제라면 ‘장미’는 인간다운 품위를 뜻할 때, 노동권과 ‘빵과 장미’를 아우르는 인권의 문제와 결부된다. 저자는 노동권과 인권의 깊은 함수관계를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왜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지,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아도 1년이나 2년 후에 그만둬야 한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왜 공기업마저 비정규직을 선호하는지, 왜 일하라는 의무만 강조되는지, 정당한 임금을 받고 있는지, 비정규직 양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비정규직 증가가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근로 빈곤을 뛰어넘을 해법은 없는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답을 찾아 떠난다. 저자에게 노동 현실에서 비롯되는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풍경은 숨바꼭질, 수수께끼다. 이 책은 그런 숨바꼭질과 수수께끼를 풀어가면서 대안들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우리의 헌법, 국제규약 등도 공식적으로는 노동권을 보호하고 있다. 노동자가 파업을 하는 것은 불순한 행동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 행사로 인정한다. 노동을 ‘노가다’라고 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도로서도 만들어져 있다. 단 현실 속의 관행이 너무도 거리가 멀 뿐인데, 이를 좌시하지 말고 개선해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큰 과제일 따름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너무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권리에 눈뜨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순진했다. 노동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알게 모르게 부정하고, 칼만 안 들었지 강도처럼 사람을 착취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너무도 관대하고 심지어 동경했는지 모른다. 이 책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노동을 돌아보게 하고, 어떠한 노동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일깨워준다. 따라서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복음처럼 다가오는 울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