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제작팀.유규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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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31년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는 우리가 정치에서 향유하고 있는 자유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확장된다.”고 말하였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체제를 수립하고 운영하였던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개인의 일상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민주주의는 지금까지의 어떤 정치체제보다도 개인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보장해온 정치체제로 인정받고 있다. 자유롭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효과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표출된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사회가 더 건강하게 존속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므로 소위 더 나은 정치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고대 그리스는 이후 온 인류에게 기억되는 발명품을 남겼다. 2000여년이 흐른 후 동아시아의 한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헌법에서도 민주공화국이라는 구절은 선명한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는 시민의 동의를 받지 않은 비선권력과 손잡고,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다수의 정치행위를 한 한 정치가의 정당성이 도전받는 비극에 처하였다. 많은 국민들이 이런 방식의 국정운영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하고, 거리에 나와 촛불시위를 하며 항의를 표현한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거리에 쏟아져나와 시위로써 정부에 압력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폭도에 가까운 행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촛불시위를 하는 시민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시위를 비판하는 시민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그런 질문에 일부나마 답할 수 있는 한권의 책이 나왔기에 간략히 살펴본다.

 

근대 사회에서 정부가 시민의 동의에 의하여 구성되어야 한다는 조건은, 이제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게 보면, 정치학 또한 시민에게 정치권력이 부여되어 있는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여 시민에 의한 민주적 정치체제 운영에 대한 연구가 중심이 될 것이다. 이를 반영하여 정치학자 David Easton은 정치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행위(authoritative allocation of societal values)'고 정의하였다. 대다수의 정치학 텍스트에서 볼 수 있는 이 유명한 정의는 이 책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다만, 일반적인 정치학 서적에서는 권위적이라는 수식어의 함의와 작동기제에 대하여 정치공학적 분석이 먼저 이뤄지는 반면, 이 책에서는 자원 배분에 집중하여 논의의 전개가 시작된다. 이점이 이 책을 집어드는 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으로 비추었고,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보려는 다수 시민들에게 추천할 이유로도 생각된다. 사실 근 10년 사이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악화와 이로 인한 민주주의의 형해화는 상당히 널리 논의되어 왔던 주제이다.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시민의 고통이 극에 달한 2017년의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는 분배의 적실성을 중요주제로 놓고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논의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일 때 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주의와 관련된 중요한 개념을 정리하여 시민들에게 지식을 제공함과 동시에, 지금 우리가 접한 문제의 해결책을 동시에 고민해보자는 이 책(내지는 방송 프로그램)의 편집 의도는 광대한 깊이를 가진 주제에 대한 입문 역할을 해야한다는 내재적 한계점을 감안하면 더욱 적극 동의할 수 있다. 관련 주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서적 중 한권인 R.DahlOn democracy에서는 민주적 절차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 effctive participation, voting equality, enlightened understanding, control of the agenda, inclusion of adults5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각 기준 사이의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다수 구성원의 효율적 참여라는 첫 번째 기분이 다른 기준의 전제이자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점 정도는 누구라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기회의 보장을 위해서 자원 배분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우리가 함께 고민하는 것은 시민이 민주주의와 정치체제에 왜 관심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이런 문제의식은 불평등 및 신자유주의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다루는 장에서 더욱 심화된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정치공동체 몰락의 원인은 부패이며, 부패의 원인은 불평등이라 설명하였다. 소위 부패는 불평등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개인의 능력과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약속이 깨지고 신뢰가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공공선에 대한 의식에서 생성되는 공적질서가 소멸되며,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의 역량과 자질을 함양시키려는 노력에 앞서 부정한 권력 및 부, 사치 등을 추구하는 것이 일상화된다. 이와 관련하여 서적에서 애덤 쉐보르스키 교수는 시장이 자원과 소득을 분배하는 역할을 하며, 정부도 그러한데 두 시스템이 곧잘 충돌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잘 잘 작동하면 훨씬 많은 소득을 잘 재분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민에 의한 부패의 통제가 요지가 된다는 것인데,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비추어보자. 대한민국의 시장(market)90년대 이후 절대적 분배의 권한을 흡수하였다. 사기업에 의하여 포획국가(captured state)화 된 공동체 내에서 시민들은 장시간 고통받아왔는데, 정부마저 그 본질적 정당성(government by consent)을 완전히 망각하고 심각한 부패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배태되는 무한정한 수준의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지금 이 책의 잠정적 독자들이 가장 해결하고 싶어하는 과제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의 사례는 2차 세계대전 종류 후 전후복구기에서 stagflation으로 인한 신자유주의 대두 이전시기까지의 mixed capitalism에 대한 것이다. 해당 기간은 비교적 자원의 배분 과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이 결과물이 성공적으로 시민의 실질적 자유 보장에 기여할 수 있었다. 이미 수백년전 J.S.Mill정부의 행위결정에 당신이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경우에만 정부와 그리고 정부에 영향을 주거나 통제할 수 있는 자들에 의한 권력남용으로부터 당신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국가의 통치권에 모든 사람들이 가담하도록 하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더 바람직한 것은 없을 것이다.” 라는 단순 명료한 해결책을 제시한 바 있다. Mill의 주장과 우리가 이미 경험하였던 과거의 성공을 결합하여 해답을 도출해보자. 혼합자본주의의 운영이 잘 이루어진 가장 큰 이유는 2차대전 종전 이후 서구 각국에서 기존의 명사 정당(cadre party) 대신 대중정당(mass party)이 정치권력의 중심으로 대두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이어서 보다 다수 시민의 이익 집약과 표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권력구조가 작동하면서, 시장논리 이외에 사회 구성원의 필요에 의한 자원배분 과정의 통제가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일반화된지 이미 30년이 흐른 지금, 정부에 대한 불신 및 정부역할 확대가 시장의 활력을 빼앗을 것이라는 논리는 아직도 다수 시민들에게 있어, 절대적 지위의 지식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이 책이 시민들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사점은 시장에 대한 외부의 (정부나 민주적 권력)의 개입이 시장과 자본주의의 순기능 전반을 망칠 것이라는 주장은 극단적 혹세무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위 완전경쟁시장은 다른 조건을 모두 통제한 시뮬레이션적 상황에서 존재할 수 있을 뿐, 현실에서 시장이 움직이는 방향은 독점을 향한다는 것은 짧지 않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다수 시민이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바이다. 시장은 결코 스스로 완벽한 시스템이 될 수 없으며, 이 과정에서 사회의 불안정과 공동체의 해체를 유발하는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양산되는 문제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인 셈이다. 시민의 공통된 지혜를 모으는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도구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보자는 것이, 바로 이 책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긴장에 던지는 하나의 해답으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여기까지의 논의에 있어 우리 주위의 다수 구성원들에게서 공감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평등(equality)과 같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향은 민주주의 사회 대다수 시민들이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의 적용이다. 자본주의를 운영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사회에서 사적소유(private ownership)는 매우 존중되는 가치이다. 때문에, 자원의 배분 규칙에 대하여 시장 자체의 기능이 아닌 공공선에 근거한 통제를 위한 규율에 대해서 의제로 올리려는 노력조차도 사적소유를 부정하는 것으로 오도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어렵지만 비민주적 절차가 아닌 민주주의에 의하여 자원 배분의 개선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다수가 합의에 이르는 법률규칙을 만들기 위한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지점에 있어 이 책이 보여주는 2가지 분명한 교훈은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집어들어야 할 세 번째 이유를 보여준다. 먼저, 자본에 의하여 구성된 기업이므로 당연히 투자자가 기업의 모든 지배권을 가져야 하며, 여기에 민주적 절차가 끼어들 틈은 없다는 시민들이 흔히 갖는 선입견을 뒤흔든다. 왕조국가식 2,3세 기업승계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무뎌져버린 문제의식을 지적해주는 것이다. 당연히, 기업의 외부적 관리와 내부적 운영 모두에 민주주의의 관점이 필요하며, 그 이유는 기업의 실질적 소유자는 수시로 주식을 사고파는 외부 투자자가 아니라 내부의 노동자이며 노동자는 자신의 수확물을 가질 권리에 대해서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는 지적은 평소에 노동을 폄훼하던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우리 모두의 가치관에 경종을 울린다. 이어서 이 책은 실제로 일정부분 공동소유(common ownership)을 실현한 직원 지주제 기업의 사례를 설명한다. 이러한 모델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비율로 성공한 기업을 만들 수 있느냐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우리나라의 시민들 사이에서는 논의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기업의 공적 소유에 대한 가치의 전환이 현실에 훌륭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좌표를 설정해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공동체의 장기 존속을 위한 가치에 합의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꾸어나가는데, 왜 우리는 민주주의 가치의 실현을 위한 의제 설정조차 어려운 것인가?

 

키케로는 국가론에서 공화국은 인민의 일들이다. 그러나 인민은 아무렇게나 모인 일군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동의 이익을 인정하고 동의한 사람들의 모임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 앞에 놓인 고통스러운 현실을 해결해나갈 주체는 어딘가에서 나타날 백마를 탄 초인이 아닌 시민 스스로이다. 시민이란 개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구성원 전체이고 곧 국가이기 때문이다. 바로 내 일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시민적 덕성을 발휘하려는 모든 동료 시민에게, 대한민국이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가 아니어야 한다고 여기는 모두에게 나는 잠시의 여유를 내어 이 책 민주주의를 함께 읽자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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