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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달 전, 나는 회사에 휴직을 하겠다고 말했다. 밤을 샌 것처럼 매일 몸이 무거웠는데, 그 증상이 몇 주가 지나도록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큰 문제가 생기리라는 신호는 분명하고 지속적이었다. 나는 아내와의 긴 대화 끝에 휴직을 결심했다.
병원에서 종합건진을 받은 결과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골격, 체중, 근육량, 체지방률, 콜레스테롤의 농도, 간 수치, 시력, 청력 등의 모든 항목에서 나는 일반보다 다소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건진을 받게 된 증상을 설명했더니 의사는 문제가 계속되면 신경정신과를 가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내 증상은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 나의 휴직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는 다시 열심히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나 그로 인해 많은 것이 크게 달라졌다.
휴직을 결심하기 전에 회사는 일종의 신성불가침과 같은 장소였다. 그곳이 있음으로 인해서 나와 내 가정의 현재와 미래가 유지되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잘 해야만 되었다. 업무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실수는 해서는 안되었다.
실수 없이,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이 되었던 모양이다. 마치, 곰스크가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조차 알지 못한 채 반드시 곰스크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작품 속의 남편처럼, 나는 회사에서의 성공가도만을 생각했었다.
이 책에 실린 두 번째 단편인 ‘북서쪽으로’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지를 알지 못하는 채 배를 타고 어디론가를 향해간다. 그처럼 나는 어디론가로 향해 바삐 움직이는 다른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속도를 더 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형국이었다.
내가 그 형국을 버티지 못했던 건 애를 쓸수록 몸은 무거워지고 어디인지도 모를 목적지는 점점 더 까마득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낙오자가 될 각오를 하고 멈춰서기로 결심하자 갑자기 편안해졌다. 방향을 잃은 채 달리던 순간에는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하는 것 같았던 목적지가 걸음을 멈추자 이내 일정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실린 단편들은 이처럼, 어디인지 모를 곳을 향해서 삶을 떠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이면서, 그들에게 잠시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말한다. 지금 당신의 삶의 모습이 당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으로 가는 길의 일부인지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그 요구는 늘 일상 속에서 쉽게 잊혀지고 마는 것이기에 이렇게 불현듯 가슴속에 떠오를 때마다 적지 않은 충격을 동반한다.
[우리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라는 카프카의말을 인용하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