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희戶영화평론가 겸 글 짓는 이.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서 도발적이고 엉뚱한 언행을 일삼아 "미치광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23년부터 중학교에서 도덕, 사회, 영화 인문학 등을 가르치는 강사로도 일하고 있다.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다가구 주택 반지하에서 두 살많은 작은형과 함께 산다. ‘평화로운 가난 속에서 단정하게‘를 모토로 필요한 만큼만 벌고 쓰며 불합리한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통념이나 고정관념에 반하는 언행을 곧잘 해왔다. 많은 사람이 말하는 세상의 논리에 대해 "왜 꼭 그래야만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그 논리에 역행하는 짓을 해놓고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욕을먹는다 하더라도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할까?" 하며 한번쯤 생각해 보는 이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제가 삐딱한 게 아닙니다. 세상이 삐딱하고 저는 똑바로서 있습니다. 그러면 삐딱한 세상에 맞춰 서 있는 분들의시선엔 제가 삐딱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어요?"
지역의 변화상은 한국 사회의 방향성을 상징한다. 원룸주택이 불쑥불쑥 솟은 것은 임대 사업이 남는 장사임을 소유주들이 알아차리고 잽싸게 실현했기 때문이다. 이곳의연령대 구성은 극단적으로 나뉘는데, 태반이 늙은 소유주들과 젊은 세입자들이다.
그렇다. 기분 문제다. 사실 삶의 거의 모든 국면은 기분 문제 아니던가.
거대한 비리가 정치 논리에 의해 희석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나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졌다.
•쓸데없이 바쁘게 살지 말 것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려고 하지 말 것필요와 욕망을 구분할 것발언할 때 비겁하지 말 것
1980년대까지만 해도 차가 있는 집이 드물었다.
걸어 다니는 건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다. 사람은 직립보행 동물이라 걸을 때 몸이 최적의 상태가 된다. 게다가 시야에 박히는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다. 철학자 칸트는 하이델베르크의산책로를 매일 똑같은 시간에 걸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매
약속 시간에 늦는 이들 중 태반은 차를 이용한다.
"여기까지 오신 당신, 눈물겹고 눈부십니다."
참! 자식이 없다는 건 과히 나쁜 게 아니다. 나는 유전자를 남기지 않았지만, 대신 이 세상의 모든 아이를 내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책임감이 크다. 그래서 늘 탐욕으로 세상을 망치는 이들과 싸우려는 것이다. 내가 믿는 한, 좋은 아버지는 그래야 한다. 이것이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내가 얻은 것이다.
‘행복을 이루기 위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자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즉 가족, 친구, 건강, 돈 따위가자산이지. 둘째는 재능이야.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잘 추는 게 재능이야. 다른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재능이 있는사람들이 행복하지. 첫째, 둘째 다 자신이 없을 때는 뭐가필요할까? 의지다. 행복하겠다는 의지. 그걸 발휘하는 사람은 자산과 재능을 가진 사람도 도저히 이길 수 없어. 선생님은 네가 의지를 발휘했으면 좋겠어. 네가 짝을 소개하면 짝은 기쁠 거야. 그러면 너도 행복해질걸? 어때? 의지를 한번 발휘해 볼까?"
관용이 없다면 사회는 생지옥이 된다. 집단을 이루고 사는 인간 사회는 어느 정도는 무질서가 불가피하기 때문에이를 참아주지 않으면 매일 서로 악쓰고 드잡이를 하게 된다. 분노와 혐오의 기운이 넘실댄다.
인간은 직립보행 덕분에 문명을 일구게 됐다. 예술 또한거기서 비롯되었다. 손이 자유로워지며 회화와 건축, 음악과 문학을 탄생시켰기에 나는 직립보행 그 자체가 예술의원천이라고 생각한다.
대관절 사람 노릇이란 무엇이며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노동이 사람 노릇의 전제라면 좁은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19세기의 아동들은 이미 열 살 때부터 사람 노릇을 했단 말인가. 진정한 사람 노릇이란 인간이 서로의 삶을 향상하기 위해 연대하고 돕는다는 것, 그러니까 타인의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돕고, 할수 없는 것은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게 사람노릇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사람 노릇을 통해 사람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몸이란 게 참 신기하다. 마사지 크림으로 통증을다스리며 열흘간 휴식과 걷기를 반복했더니, 어느새 2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도 다리가 크게 아프지 않았다. 반복되는 장거리 보행으로 나의 뇌가 변화된 신체 활동을 인지하여 다리에 더 많은 단백질을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느껴졌다.
‘잘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르다. 말장난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잘‘과 ‘사는‘ 사이에 띄어쓰기가 있고없고의 차이로 의미가 다르다. 잘사는 건 돈이 많아 풍족하게 사는 것rich이고, 잘 사는 것은 말 그대로 잘well, 제대로 사는 것이다.
즐거운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갖는다. 이것이 노동과돈에 대한 내 철학이다.
자본주의에는 선물, 그러니까 나누는 개념이 없다. 오로지 이윤 추구를 위한 판매와 착취의 개념만 있을 뿐.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동인은 탐욕이다. 선물과 증여의 동인은 선의다. 그러므로 선의에 입각한 후원은, 대단히 반자본주의적인 행위다. 화폐가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선물하고 행복을 공유하는 방식, 그것이 반자본주의의 요체다.
서핑을 할 때 조심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큰 파도나 너울이 다가올 때, 겁이 나 그 앞에서 등이나 옆모습을 보이다가는 곧장 물속으로 내리박게 되는 것. 서퍼들은 이것을 ‘통돌이‘라고 하는데 몸이 드럼세탁기 속의 빨래처럼 데굴데굴 구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물속에 처박혀 이런 상태가되면 충격으로 패닉에 빠지고 자칫하면 익사할 수도 있다.
이것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발밑을 신경 쓰면 고꾸라지고, 멀리 봐야 안정적일 수있다니!
"한국에는 순종하지 않는 시민들의 에너지가 있어."
"내겐 고향이 없어요. 사람들이 내 고향이죠."
악의는, 악의를 품은 자가 있고, 미필적 고의의 침묵을행하는 방조자가 있으면 관철된다. 악의를 품은 자는 사람을 서열화하는 사회구조가 내뿜는 더 큰 악의에 의해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인 경우가많다. 그래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이들을 대상으로 악의를 창조하고 실천하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악의가 정당화되는 연쇄 고리를 방조하고 도망친다면, 나 또한 공범이된다.
최욱의 특징은, 방송 중에 출연자들과의 공적 관계를사적 관계로 치환해 버린다는 점이다. 방금 만난 사람과도 알고 지낸 지 10년은 넘은 동네 형이나 동생처럼 대한다. 영화감독에게도 "어이, 감독 양반!" 하고 부른다. 출연자의 나이가 조금 어리다면 "새끼"라고 부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누가 봐도 무례하다. 하지만 그는 방송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중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돌아간다.
허영과 허세는 다르다. 허영은 스스로 허파에 바람이 든것이고, 허세는 허파의 바람(허영)을 타인에게 자랑하고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허세는 자신을 우러러 봐줄 사람이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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