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클럽
김쿠만 외 지음 / 냉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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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고 걷고 밥을 해 먹은 것밖에 없는데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생활비가 급한 건 아니지만 열심히 모아놓은 돈이 빠져나가는 게 아깝긴 했다. 그렇다고 일을 구하는 건 싫고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음 아직 일러. 하지만 아르바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낼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방학도 없이 한 직장에 꾸준히 다니고 아침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는 걸까. 몇 달 전까지 나도 그렇게 살았으면서, 왜인지 그때의 내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소설집 《러닝클럽》, 최미래 <호흡 메이트> 中

러닝클럽 앱과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섯 편의 소설을 묶은《러닝클럽》.

현실에서 잠시라도 도망가고 싶어서, 갑자기 이상한 병증이 생겨버린 몸을 되돌려 보기 위해서, 돌아가신 아빠와 함께 뛰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다쳐서 갇히고 막힌 내 마음을 다시 꺼냈으면 하는 친구의 바람 때문에...

달리기 시작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모두에게 '달리기'가 결국은 치유와 회복의 방법이 되어준 듯해요.

나는 '지쳐서', '사람들의 솔직함이 징그러워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달리고 요리해 먹고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퇴사 후에 온몸에 비정상적인 땀을 낼 수 있게(?) 된 나를 걱정한 친구 민영이 건강한 땀을 흘리라며 러닝클럽 앱과 함께 달리기를 제안했어요.

러닝클럽 브리드라인으로 연결된 인연으로 만난 로즈 언니가 알려 주는 요리 꿀팁, 인생 꿀팁(귀엽게 살기)은 소소한 듯하지만 큰 도움이 됩니다.

나보다 몇 달 먼저 회사를 나갔던 채리 씨, 안부를 묻는 척하며 채리 씨가 스티커 사진 가게를 차렸단 소식을 전하는 오지랖 넓은 전 직장동료 덕에 채리 씨의 근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한 동료 하나 없이 지냈어도, 혼자 먹는 도시락에도 정성 들여 스스로를 위할 줄 알던 채리 씨는 지금, 그때보다 훨씬 잘 살고 있는 것 같네요. 나는 어떨까요.

책을 읽는 내내, 탁 트인 곳으로 나가 짧게라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귀엽고도 메시지는 묵직한, 힐링 소설이었답니다.




출판사(냉수)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lh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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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자서전 - 100가지 질문에 답하며 완성하는 엄마의 이야기
부키 편집부 지음 / 부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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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을 쓴다는 건, 좀 쑥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언젠가 엄마 아빠와 TV를 보는데, 돌아가신 아빠가 생전 손글씨로 빼곡하게 남긴 자서전을 책으로 엮은 딸의 사연이 나오더라구요. 아빠가 그리울 때마다 책을 쓰다듬고, 읽어 내려간다고.

그때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자서전을 쓰는 거야 쑥스러워도, 엄마 아빠의 이야기가 남는다면, 그건 내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돼 줄 것 같다는 마음.

그래서 이번에 만난 이 책, 《엄마 자서전》이 더 반갑게 다가왔어요. 백 개의 질문으로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과 그 기록을 선물받았습니다.

엄마가 요즘 자주 하는, '나는 지금이 제일 좋다, 젊을 때로 돌아가라고 해도 싫다. 아등바등 안 하고 너네도 걱정할 것 없이 살고 여유로운 지금이 제일 좋다' 하는 말이, 그저 기쁘게만 들렸었는데 오늘은,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날의 엄마 아빠를 내가 안아 토닥여 주고 싶어요.



출판사(부키)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bookie_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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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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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친구의 무덤가에 서서 한 줌 흙을 관 위에 뿌린다. 얼굴에 떨어지는 4월의 빗줄기가 차갑다. 그러나 그는 울지 않는다. 그는 장차 친구의 허파가 건강해질 날을, 병상에서 일어나 웃을 때를, 둘이 함께 맥주를 마시고 요트를 타고 이야기를 나눌 시절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는 울지 않는다. 그는 친구와 함께 나지막하고 밋밋한 식탁에서 샌드위치를 먹을 미래의 특별한 날을, 그가 사랑받지 못할까 두렵다는 말을 하면 친구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일 날을, 창유리로 빗방울이 흘러내릴 그날을 아련하게 기다린다."

앨런 라이트먼 소설, 《아인슈타인의 꿈》中

1905년 스위스 베른. 봄에서 초여름까지의 서른 날, 청년 아인슈타인의 시간에 관한 서른 가지 꿈의 기록. 앨런 라이트먼 소설, 《아인슈타인의 꿈》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꿈속에서 시간은 매번 전혀 다른 모습으로 흐릅니다. 어떤 꿈에서는 일정한 시간의 반복으로 일어났던 일들이 순서 그대로 무한히 되풀이되기도 하고, 어떤 꿈에서는 매일 오늘이 생애 첫날인 것처럼 집의 위치나 가족, 그 모든 것을 새로 알아가야 하지요. 사는 곳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사람이 늙어가는 속도가 다른 세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꿈에서는 병으로 죽은 친구를 묻으며, 시간이 흘러 친구가 병 들기 전으로 돌아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함께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이 각각 다른 모양으로 흐르는 꿈속 세상은 상상할 수는 있지만 다분히 비현실적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환상적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네요.

시간이 미래로만 흐르지 않아도 된다면, 내가 원하는 속도와 방향대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 수 있다면 과거의 어느 때로 돌아가, 그때부터는 시간 본래의 흐름대로 내일, 내년을 향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 보고 싶어요.

아인슈타인의 꿈속에서는 미래를 이미 겪은 사람이 과거에 돌아와선 앞으로 일어날 일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방해하지 않기 위해 도시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미래를 알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어떤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길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갈지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자극을 주는 “예쁜” 소설입니다.



출판사(다산북스)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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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
김미리.귀찮 지음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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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프리랜서로 살기로 결정한 후에는 불안들이 더 쑥쑥 자라는 것 같습니다. 수풀집에 싹을 틔운 한 포기 광대나물처럼 어디선가 날아와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으로 매력을 뽐내다가 어느덧 마음 밭을 점령해버리는 걸 느껴요. 불안에 너무나도 취약한 저는 그걸 무력하게 지켜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7월의 텃밭에서 여전히 기세등등한 광대나물을 뽑으며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런 불안이 찾아오면 뿌리내리기 전에 얼른 뽑아내야겠다고요.”


텃밭 나무에서 뜯은 개두릅을 데쳐 직접 담근 고추장, 짜낸 들기름으로 무쳐 점심을 먹고, 늦가을 곱게 빻아 둔 도토리 가루에 물을 섞어 뭉근한 불 위에서 천천히 저어 묵을 쑵니다. 커피를 내려 봄볕이 따뜻한 마당으로 나가요. 꽃나무 이름을 맞히며, 사는 이야기를 하며 하하 호호. 볕을 등지고 앉으니 등이 따뜻해 잠이 솔솔 옵니다. 모처럼의 5월 휴가에 찾은 시골 본가에서의 한때.


엄마 아빠가 직접 기른 작물들로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밥을 먹으면 뱃속이 뜨끈해지고 힘이 납니다. 세사에 시달리는, 키만 자란 여려빠진 어른을 위로하고 토닥이는 힘이 여기, 내가 나고 자란 이곳에 이 사람들에 있는 듯해요. 치열한 도시 생활에, 회사 생활에 지친 작가들에게도 오늘의 나처럼 흙과 나무와 볕의 위안이 필요했던가 봅니다.

문경과 금산, 전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지역에 각자의 ‘집’을 마련해 각자의 취향대로 알차게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두 작가.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 묶음.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 김미리x귀찮,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입니다.


수십 통의 편지를 나눠 책으로 엮을 사이니 당연히 시작부터 이미 아주 가까울 거라 생각했는데, 두 작가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점점 마음을 나누고 친밀해지는 게 눈에 띄게 느껴져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어요.


마냥 익숙하지만은 않았을 시골살이를 선택하고, 척척 해내는 작가들의 하루가 멋지고, 어떤 날을 귀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합니다.
프리랜서의 삶을 살려 한다고, 도시를 떠나 살려 한다고 그렇게 제대로 정착해 철별로 작물을 심고 잡초를 뽑고 동네 원주민들과 교류하며 지내는 생활을 이렇게나 잘 해낼 줄이야.


‘농부’답게 날씨와 계절, 그리고 특히 ‘절기’를 화두로 삼는 두 친구-가 된 작가들-의 소박하지만 꽉 찬 생각과 환경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어떤 단단한 다짐들이 담긴 편지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내려갔답니다.


이들처럼, 내가 마음 쓰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자고, 새 다짐을 적어 봅니다.



출판사(밝은세상)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계절책갈피와, 시골집 마당 화분에 심은 씨앗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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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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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깨달았어요. 내게 소리 지르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난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로 만든다는 사실을요. 그들이 한 말은 내게 머물면서 날 속상하게 하고 그 고성은 계속될 거예요. 고함이 멈춘 뒤에도요. 그래서 대신 대다수 사람들의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죠. … 이 사람들, 이 조용한 사람들의 말이 훨씬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샐리 페이지 장편소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중, 버스를 몰다 문제가 생긴 적은 없냐고 묻는 재니스. 마음 따뜻한 버스 기사 유언의 대답입니다. 현명하네요.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재니스는 전문성과 실행력, 열정을 갖춘 독보적인 청소 도우미입니다. 그녀를 단순 도우미가 아니라 따뜻하고 친밀한 친구로 여기는 고객들이 보는 그녀의 장점은 특별한 감수성과 친절,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편안하게 해 주는 능력이지요.

생계를 위해 특별한 능력이나 학벌 등이 필요하지 않은 청소 일을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적성에도 잘 맞고 재능도 있는 듯해요. 고객들의 집을 깨끗이 하는 것도,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처지가 조금은 외롭지만, 청소 일에 보람도 있고 고객을 만날 다음 방문이 기대되기도 해요.

수십 년을 함께 하는 동안 직업을 수십 개는 바꿔 가며 재니스를 속 썩여온 남편 마이크는 그녀의 기분이나 컨디션 한 번 다정하게 물어봐 주는 적이 없네요.

부모 뜻대로 사립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런던에서 일하고 있는 외아들 사이먼. 재니스는 아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보고 싶지만 어쩐지 조금은 멀게 느낍니다. 남편 말만 믿고 어린 나이에 기숙학교에 보내 버린 게 미안해서, 그 일로 아들이 자신을 원망할까 봐. 늘 궁금하고 그립지만 바쁘게 일하고 있을 아들에게 전화 한 통 편하게 걸지 못해요.

하나뿐인 여동생 조이. 재니스는 동생을 참 아끼고 늘 마음 쓰지만 요즘은 동생의 안부를 묻기도 겁이 납니다. 아주 오래전 그 일을, 조이는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봐요. 조이가 자신을 미워할 거란 생각에 착잡합니다.

사이먼에 대해서도, 조이에 대해서도, 재니스의 마음에 가득 찬 감정은 언제나 죄책감. 아니 어쩌면 죄책감이 재니스의 인생 자체를 지배해 온 것 같아요.

재니스는 기존 고객의 반 강요로, 고객의 시어머니 B부인의 집 청소도 맡게 됩니다. 처음부터 도우미 일을 거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났던 B부인, 그 첫인상과 재니스를 대하는 태도는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재니스는 이야기 애호가답게, 앞으로 만날 때마다 하나의 멋진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어 들려주겠다는 부인의 말에 도우미로 일하기로 덥석 약속합니다.

그리고 소설은, 재니스가 B부인과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을 억누르던 죄책감과 꼬여 있던 현실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이야기로 흐릅니다. 늘 다른 이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던 재니스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알아가면서 용기와 희망을 찾고, 새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로. 고객들에게 따뜻한 도움을 받기도 하고, 고객들이 상처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돕기도 하면서요.

많이 생각하고 열심히 기억하면서 읽어야 하는 스토리가 아니라 술술 읽힙니다. 가까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성격과 상황의 인물들에 공감도 돼요. 재니스에 감정 이입해 마이크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가 아들 사이먼과 동생 조이의 말들에 안도하기도 했다가. 괴짜 같지만 참 어른이었던 B부인에게 감동하기도 하고.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잘 헤아릴 줄 아는,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집니다.



출판사(다산책방)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dasan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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