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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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깨달았어요. 내게 소리 지르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난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로 만든다는 사실을요. 그들이 한 말은 내게 머물면서 날 속상하게 하고 그 고성은 계속될 거예요. 고함이 멈춘 뒤에도요. 그래서 대신 대다수 사람들의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죠. … 이 사람들, 이 조용한 사람들의 말이 훨씬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샐리 페이지 장편소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중, 버스를 몰다 문제가 생긴 적은 없냐고 묻는 재니스. 마음 따뜻한 버스 기사 유언의 대답입니다. 현명하네요.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재니스는 전문성과 실행력, 열정을 갖춘 독보적인 청소 도우미입니다. 그녀를 단순 도우미가 아니라 따뜻하고 친밀한 친구로 여기는 고객들이 보는 그녀의 장점은 특별한 감수성과 친절,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편안하게 해 주는 능력이지요.

생계를 위해 특별한 능력이나 학벌 등이 필요하지 않은 청소 일을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적성에도 잘 맞고 재능도 있는 듯해요. 고객들의 집을 깨끗이 하는 것도, 그들이 가진 이야기를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처지가 조금은 외롭지만, 청소 일에 보람도 있고 고객을 만날 다음 방문이 기대되기도 해요.

수십 년을 함께 하는 동안 직업을 수십 개는 바꿔 가며 재니스를 속 썩여온 남편 마이크는 그녀의 기분이나 컨디션 한 번 다정하게 물어봐 주는 적이 없네요.

부모 뜻대로 사립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런던에서 일하고 있는 외아들 사이먼. 재니스는 아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보고 싶지만 어쩐지 조금은 멀게 느낍니다. 남편 말만 믿고 어린 나이에 기숙학교에 보내 버린 게 미안해서, 그 일로 아들이 자신을 원망할까 봐. 늘 궁금하고 그립지만 바쁘게 일하고 있을 아들에게 전화 한 통 편하게 걸지 못해요.

하나뿐인 여동생 조이. 재니스는 동생을 참 아끼고 늘 마음 쓰지만 요즘은 동생의 안부를 묻기도 겁이 납니다. 아주 오래전 그 일을, 조이는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봐요. 조이가 자신을 미워할 거란 생각에 착잡합니다.

사이먼에 대해서도, 조이에 대해서도, 재니스의 마음에 가득 찬 감정은 언제나 죄책감. 아니 어쩌면 죄책감이 재니스의 인생 자체를 지배해 온 것 같아요.

재니스는 기존 고객의 반 강요로, 고객의 시어머니 B부인의 집 청소도 맡게 됩니다. 처음부터 도우미 일을 거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났던 B부인, 그 첫인상과 재니스를 대하는 태도는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재니스는 이야기 애호가답게, 앞으로 만날 때마다 하나의 멋진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어 들려주겠다는 부인의 말에 도우미로 일하기로 덥석 약속합니다.

그리고 소설은, 재니스가 B부인과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을 억누르던 죄책감과 꼬여 있던 현실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이야기로 흐릅니다. 늘 다른 이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던 재니스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알아가면서 용기와 희망을 찾고, 새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로. 고객들에게 따뜻한 도움을 받기도 하고, 고객들이 상처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돕기도 하면서요.

많이 생각하고 열심히 기억하면서 읽어야 하는 스토리가 아니라 술술 읽힙니다. 가까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성격과 상황의 인물들에 공감도 돼요. 재니스에 감정 이입해 마이크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가 아들 사이먼과 동생 조이의 말들에 안도하기도 했다가. 괴짜 같지만 참 어른이었던 B부인에게 감동하기도 하고.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잘 헤아릴 줄 아는,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집니다.



출판사(다산책방)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dasan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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