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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의 그리스로마신화 ㅣ 현대지성 클래식 13
이디스 해밀턴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4월
평점 :

얼마 전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다시 관심이 생겼다. 정확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때문이었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니 오래전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다시 궁금해졌고, 자연스럽게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도 다시 찾아 읽게 됐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곤혹스러워졌다. 기억나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없었다.
예전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일은 꽤나 고역이었다. 사람 이름 하나를 겨우 기억할 만하면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고, 인간의 이름을 쫓다 보면 이번에는 신의 이름이 나타났다. 그 신이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연인이며 누구와 원수였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 읽었던 인물이 누구였는지조차 희미해지곤 했다. 당시에는 나름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그 기억들이 엉켜 있었다.
그래서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정리해보고 싶었다. 누가 누구인지, 어떤 신이 어떤 관계로 얽혀 있는지,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각각의 사건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다시 한번 천천히 따라가보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신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고 덮는 이야기책이라기보다, 잊을 때마다 다시 펼쳐보는 일종의 지도에 가까워 보였다. 책의 뒤에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서로 다르게 불린 신들의 이름을 대조해놓은 표와 주요 가문의 계보가 정리되어 있다. 무엇보다 해밀턴은 하나의 신화를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각색하기보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에우리피데스,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 등 여러 고대 작가가 남긴 이야기를 비교하고 그 안에서 신화의 얼개를 다시 세운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이야기 하나를 완벽하게 기억하는 것보다, 그 조각들이 어디쯤 놓여 있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반가웠다.
그런데 다시 읽어봐도 신화 그 자체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이야기이니 재미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내가 익숙한 현대의 소설을 읽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그렇다. 사건은 너무 빠르게 일어나고, 그 사건의 크기는 또 지나치게 크다. 누군가 사랑에 빠지고, 배신하고, 저주하고, 죽이고, 복수한다. 한 인간의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만한 일이 몇 페이지 사이에서 연달아 일어난다.
아마 내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종종 딱딱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익숙한 소설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 뒤 그 사건이 인물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는지를 꽤 오랫동안 따라간다. 사건이 발생하고, 인물의 감정이 움직이고, 그 감정이 다시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다음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인물을 이해한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생략된다.
사건이 일어나고 곧바로 행동이 이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타난다. 인물이 왜 그렇게까지 분노했는지, 사랑이 어떻게 집착으로 변했는지, 두려움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복수가 되었는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애초에 그런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신화를 읽는 재미는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 이 신은 이 인간을 도왔을까. 왜 누군가는 이토록 가혹한 선택을 했을까. 사건과 행동 사이에서 어떤 감정이 있었을까. 행동과 결과 사이에서 인물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본문에 적혀 있지 않은 것들을 상상하며 읽기 시작하면 신화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찾아보고, 한 이야기의 뒤에 붙어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고, 서로 다른 신화 속에서 같은 인물이 어떻게 다시 등장하는지를 쫓아가는 일이 오히려 더 재미있어진다.
현대지성판에 실린 많은 그림도 그런 독서와 잘 어울린다. 글에서는 한두 문장 사이에 지나가버린 사건이 그림에서는 하나의 순간으로 멈춰 있다. 글로는 빠르게 지나갔던 인물의 표정이나 몸짓,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 같은 것을 그림 앞에서는 잠시 더 바라보게 된다. 그림이 신화에 적혀 있지 않은 감정을 대신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글이 비워둔 자리를 눈앞에 한 번 펼쳐놓음으로써 그 안에 무엇이 있었을지를 다시 상상하게 만든다. 긴 신화를 계속 읽는 동안 잠깐씩 속도를 늦추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이번에는 오디오북 서평단으로 참여했지만 뜻밖에도 종이책도 함께 받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오디오북보다 책을 더 많이 읽었다. 신들의 이름과 인물 관계를 계속 따라가야 하는 책이다 보니 오디오로만 듣고 있으면 생각보다 쉽게 지쳤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순간 한 명을 놓치게 되고, 그 한 명을 놓치면 이후 관계까지 함께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다시 앞으로 돌려 듣는 것도 종이책에서 몇 줄을 되짚어 읽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디오북이 이 책과 맞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두 방식의 역할이 조금 달랐다. 복잡한 관계를 확인하고 앞뒤 이야기를 되짚을 때는 종이책이 편했고, 이미 읽었던 이야기나 큰 흐름을 계속 이어갈 때는 오디오북이 좋았다. 특히 출퇴근 시간이나 이동 중처럼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보기에는 애매한 시간에도 신화 속 이야기를 계속 따라갈 수 있었다. 잠깐씩 끊기는 자투리 시간이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 시간으로 바뀐다는 것은 분명 오디오북이 가진 장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야기를 기억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어떤 신이 누구의 편이었는지, 어떤 영웅이 어떤 모험을 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신화를 읽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꼭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또 잊어버릴 것이다. 수많은 이름도, 복잡한 족보도 다시 뒤섞일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잊어버리더라도 다시 찾아볼 곳이 생겼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과만 기억하기보다 그 사이에 비어 있는 부분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내가 지금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읽는 이유는 신화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그 빈칸들을 다시 읽어보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2026년 10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