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다 -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
정병호 지음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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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군대에 입대하였을 때 이상한 임무를 받았다. 부대 전원이 지방으로 이동하여 산을 파야 한다는 임무. 알고 보니 유해발굴이었다. 군대에서 그런 일을 하는 줄 처음 알았다. 시키니까 했고, 지켜보지 않을 땐 쉬었다. 땡볕에서 뭐 하는 일인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해발굴단은 우리에게 이미 이 산에서 유해발굴을 실시했지만, 건진 건 없다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21조로 이루어진 수십 개의 팀들 중 오로지 우리 팀만이 유해를 발굴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처음은 부분 유해로 정강이뼈와 허벅지 쪽 뼈만 나왔다. 그 사실 자체도 신기했지만, 그때는 포상휴가를 받을 생각에 신이 났었다. 다음 날 우리 팀은 두 번째 유해를 발굴했다. 두개골부터 시작하여 발끝까지 뼈의 대부분이 맞춰졌고, 당시 사용하던 총과 탄피, 만년필과 수첩까지 나왔다. 현장에서 유해발굴 감식단은 뼈들을 사람의 몸으로 맞추고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첫 번째 유해를 발굴했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내가 밟고 있는 땅에서 동포들끼리 죽고 죽였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수십 년 전에 벌어진.. 어쩌면 나와 같이 군에 끌려온 청년들의 기구한 삶이었다. 잔혹한 시대에 태어나 서로를 죽고 죽이는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안쓰러웠고, 그들의 희생으로 인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며칠 뒤 정식적인 영결식이 진행됐고, 유가족들이 영결식에 참여했다. 한 사람을 온전하게 떠나보내는 그 일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유해발굴이 갖는 의의가 애도뿐만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일본 홋카이도에 매장된 유해다. ,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 사망하신 분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발굴한 뒤 그분들의 모습이나 상황 등을 유추하는 것보다는 강제징용 당한 분들을 찾아내고, 그분들을 다시 한국으로 귀향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놀라운 것은 그 과정을 정부 당국이 한 것이 아니라 민간이 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의로운 일의 시작은 정부 당국보다는 사람이 먼저였기 때문에 놀랍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90년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책에도 잠시 소개되었지만, 당시 도쿄도 아닌 홋카이도에 가서 유해를 발굴한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놀라운 것은 이 과정을 한국의 학생들과 일본의 학생들, 그리고 재일교포들과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의 후손들과 가해자의 후손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의 후손들.

 

인간이 언제 어떻게 해서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은 때로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내 조상의 일은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일본에 대해 가끔 분노한다. , 동시에 베트남에 가서 무슨 짓을 했던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더라도 우리는 가끔 죄책감을 느낀다. 그 모든 것이 나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자주 어떤 감정을 느낀다. 아니,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를 통해 무언가를 느낀다.

 

2024123일 이후 우리에게 각인된 한강 작가의 말.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이 책을 읽은 뒤에도 맴돈다. 과거에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현재는 지금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극은 발생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과거에 얽매인다. 얽매인 과거를 풀기 위해선 올바른 매장을 해야 한다. 만약 박근혜 정부에서 70년 만에 귀향한 희생자들과 희생자들의 유가족분들에게 사과를 했다면 어떠했을까.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국가가 챙기지 못해 죄송하다고. 그리고 일본 정부에게 전쟁 범죄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으면 어떠했을까. 그들이 사과를 했으면 어떠했을까. 하지만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 얽힌 매듭은 풀리다가 다시 꼬여버렸고, 우리의 현재가 되었다. 이제 박근혜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과거가 되었다. 현재가 미래를 도울 수 있을까? 2016년부터 일본은 자위대의 무력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안보 법안을 시행했다. 공격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소환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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