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의 빛을 따라 암실문고
나탈리 레제 지음, 황은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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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1년 동안 연애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래 만날 수 있냐며 놀란다. 하지만 내가 놀라는 지점은 11년이 속절없이 흘렀다는 것이다. 덧없이 흘러간 시간. 아니, 덧없진 않다. 아직 내 옆엔 그 사람이 있다. 우리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따금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둘 중 한 사람이 죽어도 남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 살아가겠지.” “아니, 그래선 안 돼. 평생 나를 그리워하라고.” “내가 먼저 죽는 게 낫겠어.” “아니야, 같이 죽자.” 언젠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죽음. 그것은 사라지는 것. 없음. 부재. 소멸. .

 

천국과 지옥, 환생, 이승과 저승, 혹은 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다, 필름에 새겨진 영원성, 불멸의 작품.. 나는 그런 걸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단 하나, 지구..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언젠가 사라진다.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 너도 나도, 사라진다.

 

너가 사라진 나를 생각해 봤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 아니 감각. 그건 비유가 아니다. 생각만으로도 내 일부가 뜯겨져 나가는 감각. 고통, 상실, 슬픔, 분노, 그리고 고독. 누구나,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래서 어차피 사라질 것인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 그것은 충만함. 하고자 하는 것, 즐거운 것, 보고, 듣고, 느끼며 사는 것. 하지만 너가 사라지는 것만큼은 느끼고 싶지 않다. 슬픔이 있어야 행복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너를 잃는 것만큼의 행복은 원치 않는다. 너를 잃는 것, 그건 일종의 소멸이다.

 

너의 임종을 생각해 봤다. 죽음 이후는 없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순 없다. 두려움에 떠는 너의 앞에서 내가 믿는 하찮은 진실 따위는 말할 수 없다. 그러면 난 진실을 버릴 수 있을까?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 온전한 진심은 사랑해.” 그 말뿐. 사랑. 사랑.. 나의 임종을 생각해 본다. 너가 해주는 말. “사랑해.” 사랑은 무엇인가? 알 수 없다. 그것은 존재하는가? 천국도 지옥도 저승도 환생도 아무것도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은 느낄 수 있다. 느끼고 있다. 소멸 직전까지 그 사랑을 느낄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떠오른 단상들.

 

 


아주 오래전, 만남의 자명함 속에서 우리는 서로 이렇게 말했었다. “너야.” 바로 너, 있는 그대로의 너, 당신. 가장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너의 이름으로 불리는 너. 그 모든 세세한 것들로 이루어진 너라는 세계. 믿을 수 없을 만큼 너인 너. 바로 너. 충만함 속에서 말하게 되는 너. (p.19)

 

임종을 이틀 남긴 날 아침, 잠에서 깬 그가 말했다. 무서워.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정확한 중심이 소리 없이 무너졌다. 나는 몹시 부드럽게 그의 손을 잡으며 할 말을 가늠해 보았다. 나는 공포가 낸 그 끔찍한 상처를 씻어 주고 또 싸매 주고 싶었다. 그 일은 오로지 말로만 할 수 있었다. 나는 말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내게는 말을 찾아낼 힘이 없었다. 한 사람의 삶의 의미가 거기에, 그때 내놓을 말에 달려 있었는데도. 그게 바로 배신이었다. 그 말이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피난처였음에도, 그걸 찾아낼 힘이 내겐 없었다. (p.27)

 

어쩌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도 스트랜섬이 애도의 밤에 빛을 밝혔던 것과 같은 원초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 헌신이 아니고, 성찰도 아니며, 심지어 위안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건 서사에 대한 취향 때문이 아니라 권태 때문, 일상 사이사이의 무미건조한 시간의 흐름 때문이다. 우리는 예배당을 짓겠다고, 제단을 세우겠다고, 불을 밝히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시간을 소모하기 위해 글을 쓴다. (p.40)

 

그는 죽었다. 나는 버림받지 않았다. 내겐 계속해서 되씹어야 할 분노도, 회한도, 비난도, 씁쓸함도 없다. 내겐 오직 하나뿐, 없음뿐이다.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가 다시 형성되고 또다시 무너져 내리는, 거대하고 끔찍한 없음. 여기에 생각은 부재한다. 내겐 오직 두터운 물질뿐, 휘저어야 할 만큼 두껍게 들어차 있는 온 하루의 일과뿐이다.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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