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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잊으면 안 돼, 반복되는 늙은이 잔소리로밖에 안 들리겠지만, 언젠가 분명히 그날이 오니까 말해두는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용은 포옹에 익숙지 않은 주인이 무릎에 앉혀주니 일단 그녀의 품을 파고들고 본다.
˝언젠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너는 저리로 나가야 해. 톡 대기만 해도 열리는 거 봤지? 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다서서히 굶어 죽는 건 딱 질색이다. 돌봐줄 사람을 찾든 쓰레기통을 뒤지든, 너는 나가서 어떻게든 살아야 해. 단 개장수들한테는 잡히지 말고.˝
무용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다만 음성의 높낮이로 미루어 짐작할 뿐인지 그녀 품에서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올려다보기만 한다.
˝그리고 어쩌면 돌아오지 않는 것보단 이편이 더 알기 쉬울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날 아침 네가 눈을 떴을 때 내가 누운 채 움직이지 않는다면, 네가 발로 치고 짖어대도 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때도 너는 저리로 나가야 해.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구해오라는 게 아니야. 그때 나는 이미 살아 있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너는 살아야지. 만일 저 문을 열지못하면 너는 배고픔에 지쳐 결국 내 시체를 뜯어먹을 거다. 그래도 나는 별로 상관없다. 그걸로 너한테 잠깐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하지만 언젠가는 시취가 밖으로 새어 나갈 테고, 배수관을 타고 벌레들이 들끓어 사람들이 들이닥치겠지. 그들이 너를 보면 안락사를 시킬 거란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주인의 시체를 먹은 개는 더 이상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판단도 그렇고, 변질된 고기먹었으니 사람들에게 세균이나 질병을 옮긴다는 우려...하지만 무엇보다... 네가 너무 늙어서누구도 너를 맡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평소와 대동소이한 읊조림에 리듬이 실리고 한때의 평온함이 몸속에 번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무용의 등을 쓸어내린다. 무용은 촉촉한 코를 그녀의 턱에 비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꼭 개라서가 아니다. 사람한테라고 다를바 없지. 늙은이는 온건한 정신으로 여생을 살 수 없을 거라는... 늙은이는 질병에 잘 옮고 또 잘 옮기고 다닌다는... 누구도 그의 무게를 대신 감당해주지 않는다는. 다 사람한테 하듯이 그리는 거야. 너를 잘 돌봐주진 못했어도 네가 그런 지경에 놓이는 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죽어서도 마음이 불편하겠지. 그러니 언젠가 필요한 때가 되면 너는 거리로 나가. 그리고 어디로든가. 알겠니. 살아 있는데, 처치 곤란의 폐기물로 분류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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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