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로 가야겠다
도종환 지음 / 열림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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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도종환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

열림원



'흔들리며 피는 꽃'을 보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멋있는 시라 생각했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만 보던 그 때, 꽃이 피어나는 상황과 시간 전체를 보게 한 시였다.

그 시인의 새 시집이 나왔다고 했다.

시인의 향기를 정치에도 남기고 다시 돌아온 그가 풀어놓는 시어가 범상치 않다. 

'고요로 가야겠다'

제목만큼 절제된 표지, 흰 바탕에 흑백사진.

첫 시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월>.

한 편의 시를 한 문장씩 펼쳐놓으니 

이월이 이런 의미였나 다시 보게된다.

살얼음이 다시 끼는 상황속에서라도 '이월'이라면, 입춘이 지난, 마침내 맞이할 봄을 앞둔 2월이라면, 들판의 푸릇푸릇한 흔적을 보여주는 이월이라면

지금을 견디고 봄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곡우 무렵>

...

이런 평범한 하루를 연두와 연분홍으로 채우는

사월의 오후는 얼마나 고마운 시간인지요

평범한 날이 모여 인생이 되는 거지요

평범한 것들이 훨씬 소중한 거예요

평범한 그대도 그래서 내게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이에요

...


시인이 읊는 평범함이

시대와 겹쳐 보인다.

일상의 평온함,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 소중함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도토리>


이 시를 보며, 가을, 상수리 나무들 아래 모자를 쓰고 후두둑 떨어진 도토리들을 떠올린다.


씨앗이 결심하면 새싹도 결심하고

뿌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나무도 포기하지 않는다...


한 몸, 한 공동체,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

후에, 그 도토리가 다시 수백개의 도토리가 되었을 때, 처음 그 도토리의 고독과 결정적인 순간을 모른다 할지라도, 그 하나의 도토리가 내린 결심은 작지만 위대한 것이었음이 분명할거다. 

운명공동체. 지금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고요>


바람이 멈추었다

고요로 가야겠다

 


바람이 멈추면, 이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낼법도 한데, 시인은 고요로 향한다.

진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내 안의 타오른 불길과 오래 흘러온 강물을 보게하는, 여전히 내가 가야한 길을 보게하는

고요.

나 자신도, 용서하지 못한 것들도 내가 판단하지 않고 신에게 맡기며

고요로 가는 걸음.


이 고요를 향해 가는 시인의 걸음이 이 시들을 낳았나보다.

격변하는 바람 속에 있었지만, 이제 봄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제 한 걸음 뒤에 서서 나를 들여다보고 지난 날을 돌아보며, 이젠 전체를 보는 따스한 시선.


시 한 편 한 편이 그저 스쳐지나가지 않는 시집.


가을 이라서,

도종환 시인의 시집이어서,

책이 이뻐서,

제목이 마음에 와닿아서

어떠한 이유에서든,

손에 들었다면

읽어 본 이들간에 따스한 눈맞춤을 나눌법한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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