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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ㅣ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고정순 그림, 배수아 옮김, 김지은 해설 / 길벗어린이 / 2021년 5월
평점 :
그림자_안데르센 원작,고정순 그림
작품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배수아 옮김, 김지은 해설
길벗어린이

안데르센의 글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가.
늘 접하던 이야기는 디즈니식으로 변주된 이야기였습니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미운 오리 새끼》... 그것도 이쁘고 밝은 색감으로 채색된 어린이용 그림책이었지요. 원래 그런 이야기만 있었던 건 아니란 걸 알았지만,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으로 접한 안데르센은 몇해 전 색종이를 든 안데르센을 보고 놀란 것과 또 다른 안데르센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진짜 안데르센을 말이죠.
거기에다 책을 보기 전 고정순 그림 작가와 김지은 평론가의 대담 -길벗어린이 인☆- 을 접했던 터라 글에서도, 그림에서도 숨은그림 찾듯 더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얼핏 고정순 작가를 연상시키는 표지의 학자와 그림자의 실루엣.(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작가님 헤어스타일 때문일까요.) 자코메티와 에곤 실레의 길쭉한 드로잉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기존 포트폴리오를 보며 인간의 양면성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그리고 목탄을 쓰는것이 그림자와 어울리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림에 문외한인 저에게도 그림이 또 다르게 다가왔죠.
그림속에 장애인이 함께 그려진 밤의 풍경이나, 그림자의 변하는 모습, 학자의 발 끝, 그림자와 춤추는 공주의 모습, 마지막에 학자가 그림자에 의해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상태가 될 때의 모습까지...그림 만으로도 안데르센의 《그림자》이야기가 머릿속에 영상이 되어 흐르는 듯 그려졌습니다.
그림자. 한 몸이어서 별개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만약 그림자가 분리되었다면 피터팬에 나온 것 처럼 다시 붙이면 그만일거라 여겼던 생각이 이 글에서는 자신의 또다른 자아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안데르센 자신의 경험과 삶, 생각이 투영된 작품이라는 것이 책에 곁들어진 작품해설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죠.
인간의 선하고 밝은 면을 기록하지만 점점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없음을 느끼는 학자와 학자에게서 분리되어 인간의 이면을 보며 오히려 그것을 통해 세상의 부와 지위를 얻는 그림자.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장 가깝다면 가까웠을 학자와 그림자일텐데 어느 순간 그림자는 학자를 향해 하대하는 말투를 쓰지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면을 쓴 모습이 우위를 차지한 듯 진짜는 사라지고 가짜가 진짜행세를 하는 모습. 그러다 진짜로 진짜는 사라집니다. 아무소리 내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마주하기 두려운 책이라는 것, 이야기 속에 학자와 그림자가 안데르센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보인다는 것.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 묵직한 그런 그림책인데 자꾸 보게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림입니다.
안데르센의 어떤 이야기 못지않게 울림이 큰 이야기. 고정순 작가의 그림으로 재조명되어 찾아와준 이야기 《그림자》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