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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강경수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평점 :
눈보라
강경수
창비

하얀 눈이 내린 날, 강경수 작가님의 새 책 가제본을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을 배경으로 '눈보라'를 찍어보았지요. 책 제목이 '눈보라'이기도 하지만, 그림에 나온 저 하얀 북극곰의 이름이 바로 '눈보라'랍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얼핏보면 곰인지도 알아채지 못할 저 하얀 생명체가 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것일까요.

하얗고 빛나는 털을 가진 북극곰.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태어나서 '눈보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어요.
북극곰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빙하가 필요합니다. 얼음위가 바로 북극곰의 집이 되기 때문이지요. 또한 얼음이 바다로 나아가는 길이 되기도 하지요. 사냥을 하기 위한 길. 하지만 얼음이 녹아버린다면, 북극곰은 작은 얼음위에 고립되고 맙니다. 굶주린채 말이죠.
지구가 따뜻해지고 빙하가 녹아가자 충분한 먹이를 구할 수 없었던 '눈보라'는 먹이를 찾아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내려옵니다.

사람들이 북극곰을 반겨줄까요? 북극곰을 모티브로 한 장난감이나 상징물을 좋아한다고 진짜 북극곰과 함께 같은 공간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을겁니다. '눈보라'도 그걸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친근히 여기는 곰이 있다? '눈보라'의 눈에 들어온 신문 기사 사진 속 판다 옆에는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함께 한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들에게 들켜 도망치다 진흙탕에 구른 북극곰.
자신의 몸에 묻은 진흙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북극곰의 시선을 따라가봅니다. 그리고 판다곰을 떠올려봅니다. 판다로 변장한 북극곰, 그 앞에 환호하는 사람들. 정말로 그럴까, 겉 모습이 바뀌었다고 북극곰이 북극곰이 아닌것은 아닌데 싶으면서도 드러나는 모습으로 판단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은 진실이 드러나고 '눈보라'는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고 말지요.
여러 생각이 들게하는 그림책이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극곰의 생존을 다룬 환경문제 이면서, 겉모습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에 대한 꾸짖음, 그리고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 총으로 쏠 수 없었던 북극곰을 보며 그림책 《북극곰 코다 호》도 떠올리게했지요.
그 중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북극곰의 판다분장 이었습니다. 사랑받기위해, 공존하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런 생각이 틀리지않았다는 것.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그런것 같아서 더욱 마음이 무거웠지요.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자고 하면서도 일정 스펙과 외모, 재력의 '판다분장'을 해야 '난 위험하지 않은, 어울리기 괜찮은 사람이야'하는 암묵적인 시선이 있지않은지.
사람들이 가져오는 음식을 먹고 사진을 같이 찍고 보내는 시간들 속에서 북극곰은 행복했을까요? 스스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며 '나는 판다야' 하고 자기도 속으며 만족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드러날 거짓이라는 것에 당황한 모습을 보니 더 그렇게 느껴졌지요. 그래서 더 안타까웠구요. 눈보라 속에 사라진 '눈보라'는 어디로 갔을까요. 책에서만은 그 눈보라가 사라진 빙하를 다시 만들어 북극곰의 자기다움을 지킬수 있는 환경이 재생되었기를 바라봅니다.
환경문제가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지금,
아이들과 북극곰의 생존문제를 생각해보며 우리네 사회 문화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림책
강경수 그림책 《눈보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