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서 활보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상상. 그것은 더이상 상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이 또 다른 그림을 설명해주고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고... 경험하고 공감하는 아이에게 그것은 실제였고 벅찬 감동이었지요.
거리를 걸으면서도,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도 공원에 앉아있어도 늘 함께였습니다. 아이이 뒷주머니에 있는 크레용처럼 분명한 실제
말이죠.
자기가 경험하고 마음에 담아 둔 것은 표현하게 되기 마련이죠.
크레용으로 자신과 함께한 그림속 이들을 다시 그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꿈 속에 들었을 때도 잠들지 않는 감동. 이 책은
온통 그 벅찬 감동과 즐거움이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상상해 봐!
이처럼 쉬우면서 어려운 말이 또 어디 있을까요.
미술관에 가서도, 박물관에 가서도 각자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먹여주는 대로 듣고 보고 '배우고'오는 것이 전부인 걸음들.
사실, 그것으로도 만족했습니다. 뿌듯했지요. 하나라도 더 알게
되었다는 마음에서 말이죠.
하지만, 그 마음이 세상을 다르게 보는 힘까지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교과서를 읽어내는 힘, 시험을 풀어갈 힘을 더해 주었다고 할까요.
그림책 속 아이처럼 그림이 말을 걸어올 때 함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노래하고 걷고 춤추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그래서 마음 속 벅찬 감동이 지면안에 갇혀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위드 코로나 시기. 움츠려있는 몸과 마음에 '상상'한움큼을
처방해주는 책 [상상해 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