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학교에서 살 던 그 시절, 친구랑 매일 교환하는 일기장에서
나는 시인이었고, 감상평론가였고 예술가였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던 친구는 만화 캐릭터 같은 그림을 종이에 끄적여 보냈고, 서로서로 그날 각자
수업에서 생각했던것, 인생에 대해, 진로에대해 그렇게 두서없이 적어갔던것 같습니다.
수녀님의 이 책 '친구에게'는 그 일기장에 연륜이 더한
끄적임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아직 스무살이 되지 않던, 학교와 집의 테두리에서 폴짝폴짝 뛰던 개구리였다면, 수녀님의 이 책은 이제 그
연못에서 나와 세상을 돌아보고 어쩌면 멀리 떨어져서 더이상 가까이서 교환일기를 쓸 수 없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지요. 그래서 '떨어져
있어도 가까운 마음으로 그리움을 담아 전하는 글'이라고 하신것 일지도 모르겠네요.
수녀님이 이제껏 쓰신 글 중, 이곳 저곳 흩어져있던 친구에 관한
글들을 모아 엮은 예쁜 책.
가까운 이들과도 본의아니게 거리를 두어야 하는 지금, 소중한 친구를
떠올리며 바로 지금, 마음을 표현하기를 권해주시는 수녀님의 조언과 함께 책 안의 짤막한 글들속에 이 글을 보내고 싶은 이들이
떠오릅니다.
윤동주 시인이 '별헤는 밤'에서 왜 별 하나 하나에 사랑과 쓸쓸함과
자신 안에 자리잡은 것들을 하나씩 떠올렸는지 문득 이해가 됩니다. 잡을 수 없이 멀리 있지만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그것. 지나간 시절
함께 했고 이제는 기억저편에 있는,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이들을 수녀님의 글을 통해 떠올려 봅니다. 지금은 편지지를 꺼내 펜을 들고 글을 쓰자니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그 때는 왜그렇게 뭐라도 적어서 보내고 싶어서 안달이었는지.
지금의 어색함을 수녀님의 글로 메꿔봅니다.
친구라고 쓰고 남편도 생각하고, 어릴 적 동네친구도 떠올리고, 같이
학교 다닐때 학교에서 집까지 제법되던 거리를 걸어다니던 이도 떠올리고, 그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 때의 나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봅니다.
친구. 친구가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일상을 살아간다고
하면서 왜 나이가 들 수록 그 친구들을 잊고 살았는지.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 그래서 어색함을 무릅쓰고 괜히
친구를 떠올리며 뭐라도 끄적이게 하는 책
[친구에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