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언어로 말을 한다고 해도 서로 자신의 말만 크게 외치는 탓에
소통이 되지 않는 시대에, 언어도 세대도 다른 할아버지와 손자가 '그림'을 통해 소통을 나누는 모습은 감격스러웠습니다. 아이는 알록달록한 동화와
마술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수묵화를 그리셨는지 먹과 붓을 통해 그린 그림이었기에 두 그림의 색깔은 분명 달랐지만, 그 다름이 더욱
근사한 이야기를 만들어 갔지요. 그 이야기가 벽에 부딪힌 듯 막혔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붓에
관심을 가졌고, 할아버지는 이전에 손에 잡아보지 않던 색깔도구를 손에 들고 말이지요.
책 첫 면지와 마지막 면지의 그림처럼 확연히 다른 아이와 할아버지의
세계. 하지만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두 세계는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거기에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향한 관심과
이해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손자를 다 이해한 것은 아닌듯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음식을 준비하고 만화영화를 볼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은 할아버지 나름의 최선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아이가 원하는 것인지는
모르지요. '아이들은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것도 그것이다 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무엇보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완전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모습이었지만, 아이들이 쓰는 언어를 어른들이 이해못하는 것은 같은
모국어를 쓴다 해도 마찬가지 상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그 둘을 이어준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할아버지가 아이를
계속 바라보고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가진 결과 였습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그것을 들여다 보던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그림을 가지고
아이곁에 섰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그림을 존중하면서 그 이야기 속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갔습니다. 그리고, 말로는 결코 할 수 없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죠. 마법처럼 말이죠!
책 표지만 보고 그냥 지나쳤으면 놓쳤을 뻔한 매력적인 이야기.
할아버지 할머니는 커녕, 세대차이 난다고, 말이 안통한다고 자신의 엄마 아빠와도 거리를 두며 대화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마냥
'요즘세대는'이라며 쯧쯧 혀를 찰 것이 아니라 그들의 표현방법과 소통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른들의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서 손자와 소통하는 이 할아버지처럼 말이죠. 아이들의 입에서 '우리는 딱이야'하는 말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민 레 글, 댄 샌탯 그림의 그림책 [ 우리는 딱이야 ]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