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 정조의 꿈이 담긴 도시 찾아가는 역사 2
이미지 지음, 김주리 그림, 날개달린연필 기획 / 국민서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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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역사 >> 수원화성

정조의 꿈이 담긴 도시

이미지 글, 김주리 그림, 날개달린연필 기획

국민서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12개의유산 중 '찾아가는 역사'시리즈

창덕궁에 이어 두번째로 [수원화성]이 나왔습니다.

수원을 방문하게 되면 한번 씩 가보기도 하고 성곽을 따라 오르기도 해 보았지만 조각조각난 정보로 있던 지식을 정리할 수 있는,

아빠가 아이와 함께 역사여행을 떠나는 편안한 문체로 되어있는 책으로 글과 그림도 알차면서도 편안하게 다가오는 책이었어요.

 
 

왕위에 오르자 자신을 '사도세자의 아들이다'고 밝힌 정조.

그렇게 왕위에 오르자 죽은 자신의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고자 말뿐 아니라

방치되어있던 아버지의 무덤을 지금의 화성시 자리에 옮겨 '현륭원'(지금의 융릉)을 만들었지요.

당시 왕실 무덤 주위 10리 안에는 사람들이 살 수 없었기에 이주를 해야했던이들에게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자 팔달산 아래 새롭게 만든 것이 지금의 수원에 있는 수원화성이지요.

그 뿐 아니라 왕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개혁하기위해 한양에 버금가는 새 도시가 필요했지요.

상업이 발달한 경제도시이면서 '장용영'이라는 최고의 부대가 도시를 지키는 강력한 왕권을 받쳐줄 기반.

그렇게 수원 화성은 만들어졌습니다.

왕권을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서는 화성에 살면서 왕을 뒤에서 받쳐줄 생각까지 했던 정조.

정조가 오래 살지못하면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요.

 
 

첫째마당은 문화 유산에 대한 기초 정보부터 건립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똑똑한 역사읽기'에서는 그 시대 전반에 관한 이야기나 이야기 속에서 더 자세히 보여주고 싶은 내용과 자료를 설명하고 있었는데요,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이 바로 화성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 였습니다.

화성 공사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한 책으로 일정과 감독관, 각 시설물에 대한 그림과 설명, 공사중에 오간 문서와 왕의 명령,

공사에 참여한 장인의 이름, 지급된 임금, 일한 날수, 심지어 각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간 못의 규격과 수량, 가격까지 적혀있는 세밀한 기록이에요.

이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수원화성이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파괴된 부분을 옛모습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복원되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구요.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실제 그곳을 방문한 듯 느껴지게 하는 자세한 사진들과 설명들이었어요.

둘째마당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게 나아요에서 그 내용들을 풀어내고 있었는데요,

성곽 주변의 도로를 지날 때나, 성곽을 따라 걸을 때마다 보긴 했어도 무엇인지 자세한 명칭과 용도를 몰라 그냥지나치기 일쑤였는데

이런 이름과 이런 용도로 만들어졌구나 하고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지요.

 
 

셋째마당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에서는 문화유산과 관련된 역사적 지식을 다질 수 있도록 되어 있었어요.

평상시에 왕은 경복궁이나 창덕궁같은 정궁에 머물지만, 궁 밖을 나와 지방에 가게 될 때 머무는 궁을 행궁이라고 해요.

수원화성에도 화성행궁이 있어 정조가 아버지의 무덤인 현륭원을 참배할 때 머물기위해 지어진 곳이랍니다.

나중에 정조자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내려와 살기위한 계획도 있었기에 다른 행궁들보다 크게 지어지기도 했구요.

정조는 1789년 아버지의 무덤을 옮긴 후 해마다 신하들을 거느리고 현륭원을 방문했데요

1795년(을묘년)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이라 특별히 어머니를 모시고 현륭원을 참배하는 길에 올랐습니다.

어머니의 회갑을 기념하는 큰 잔치를 여는 것과 함께 장엄하고 웅장한 왕의 행차를 보여주어 반대편 세력들과 백성들에게 왕의 위엄을 보여주고자 한 목적, 가까이에서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목적을 담고 을묘년 8일간의 화성행차는 정조에게 의미있고 중요한 행사였지요.

그 8일간의 모습도 책에 담아놓았는데요, 화성행차 5일차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가 열렸답니다.

그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있네요. 70종의 음식과 42개의 꽃이 쓰인 잔치.

10년 후 칠순때도 이번처럼 현륭원에 참배하고 잔치를 열 것 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안타깝게도 정조는 어머님의 칠순을 보지 못하고 5년 뒤에 돌아가셨지요.

1796년 10월, 10년이 걸린다던 수원화성이 정약용의 실용적 설계와 첨단기구, 전국에서 온 전문일꾼들 등으로 2년 9개월만에 완성되고

어느정도 자급자족 도시로 성장하는 듯 했지만

1800년 6월, 정조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그의 나이 49세. 아들인 순조는 열두 살밖에 안 된 나이. 정조의 할머니였던 정순왕후가 순조의 뒤에서 정치를 하면서 귀족 양반들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지요.

다시 들여다보아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정조가 조금 더 살아서 자신의 뜻을 펼쳤더라면...

이 후 수원화성이 실제 전투에 맞닥들인적은 없지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의 모습이 파손되었지요.

앞에서도 이야기기했지만, 상세한 기록을 담은 기록물이 남았기에 다시 복원하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도 되었지요.

훌륭한 건물로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좋지만

책을 통해

왜, 어떻게 만들어 졌고, 그 과정에 담긴 이야기, 역사적 의미까지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수원화성은 개방형 문화재라 관람시간 이외에도 볼 수 있답니다.

상설공연에 대한 소개도 책 뒤에 나와있으니 가족과 함께 그 시간에 맞춰 가보는 것도 좋구요, 화성행궁을 재연하는 축제도 매년 열리고 있으니

그 때에 가보면 더 인상적이겠지요.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성군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면 그런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원화성을 방문하고 접하는 우리 아이들이 유형 문화재를 아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성군의 자질을 가진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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