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마당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에서는 문화유산과 관련된
역사적 지식을 다질 수 있도록 되어 있었어요.
평상시에 왕은 경복궁이나 창덕궁같은 정궁에 머물지만, 궁 밖을 나와
지방에 가게 될 때 머무는 궁을 행궁이라고 해요.
수원화성에도 화성행궁이 있어 정조가 아버지의 무덤인 현륭원을 참배할
때 머물기위해 지어진 곳이랍니다.
나중에 정조자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내려와 살기위한 계획도
있었기에 다른 행궁들보다 크게 지어지기도 했구요.
정조는 1789년 아버지의 무덤을 옮긴 후 해마다 신하들을 거느리고
현륭원을 방문했데요
1795년(을묘년)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이라 특별히 어머니를
모시고 현륭원을 참배하는 길에 올랐습니다.
어머니의 회갑을 기념하는 큰 잔치를 여는 것과 함께 장엄하고 웅장한
왕의 행차를 보여주어 반대편 세력들과 백성들에게 왕의 위엄을 보여주고자 한 목적, 가까이에서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목적을 담고 을묘년
8일간의 화성행차는 정조에게 의미있고 중요한 행사였지요.
그 8일간의 모습도 책에 담아놓았는데요, 화성행차 5일차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가 열렸답니다.
그 기록이 그림으로 남아있네요. 70종의 음식과 42개의 꽃이 쓰인
잔치.
10년 후 칠순때도 이번처럼 현륭원에 참배하고 잔치를 열 것 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안타깝게도 정조는 어머님의 칠순을 보지 못하고 5년 뒤에
돌아가셨지요.
1796년 10월, 10년이 걸린다던 수원화성이 정약용의 실용적
설계와 첨단기구, 전국에서 온 전문일꾼들 등으로 2년 9개월만에 완성되고
어느정도 자급자족 도시로 성장하는 듯 했지만
1800년 6월, 정조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그의 나이
49세. 아들인 순조는 열두 살밖에 안 된 나이. 정조의 할머니였던 정순왕후가 순조의 뒤에서 정치를 하면서 귀족 양반들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지요.
다시 들여다보아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정조가 조금 더 살아서 자신의
뜻을 펼쳤더라면...
이 후 수원화성이 실제 전투에 맞닥들인적은 없지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의 모습이 파손되었지요.
앞에서도 이야기기했지만, 상세한 기록을 담은 기록물이 남았기에 다시
복원하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도 되었지요.
훌륭한 건물로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다는 사실도
좋지만
책을 통해
왜, 어떻게 만들어 졌고, 그 과정에 담긴 이야기, 역사적 의미까지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수원화성은 개방형 문화재라 관람시간 이외에도 볼 수
있답니다.
상설공연에 대한 소개도 책 뒤에 나와있으니 가족과 함께 그 시간에
맞춰 가보는 것도 좋구요, 화성행궁을 재연하는 축제도 매년 열리고 있으니
그 때에 가보면 더 인상적이겠지요.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성군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면
그런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원화성을 방문하고 접하는 우리 아이들이 유형 문화재를 아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성군의 자질을 가진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