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왜 공부하나요?
남보다 우월한 마음을 느끼기 위해서? 완벽한 어구를 말하기
위해서?
보다 직접적인것은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였을거 같아요. 적어도
한국에서는 수능이라는 입시, 내신성적, 졸업후에는
각종 스펙의 기본이 영어점수이기에 앉아서 단어를 외우고 지문을 읽고
답을 찾는 것이 익숙한 공부모습이지요.
원서를 읽으면서도 대화가 어려운 우리를 보고 외국인들이 의아하게
느낄만하지요.
영어는 언어, 내용을 담는 그릇일 뿐인데 우리는 사람의 실력을
'영어'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잠시만 생각해도 아닌건 아닌것인데 말이죠.
언어에는 문화가 담겨있다는 것, 그래서 영어권 나라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언어와 우리의 언어가 가깝지 않은 것을 설명할 때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어느 강의를 들으면서 미국인과 우리가 어항속의 풍경을
설명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에 놀랐는데,
배경을 중시하는 우리와, '나'를 중심으로 하는 주체를 중시하는
영어의 차이 뿐 아니라
수다스런 영어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이면적 속뜻이 있는 우리 말,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영어와 자신을 낮추는것이 겸양인 듯 말하는 우리의 표현의 차이가 오해를 낳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영어를 배울 때, 이런 문화적 차이를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화를 담고 있는 언어이기에 그 나라와 문화, 역사를 말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음을 다시한번 보게했지요.
폴란드의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입시험인 마투라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입시도 실제 쓸 수 있는 영어를 시험으로 도입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3시간의 영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폴란드 학생의 말.
읽고 듣는 것으로 영어를 평가하는 우리 시험과 달리, 마투라는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모든 영역을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영어로 공부하고 시험을 치고
있었습니다.
실제 사용하게 될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니 직접 작문을 해서 가고
단어를 찾아 공부하고, 정확한 문장을 쓰고 말하기 위해서는
문법을 공부해야겠다는 동기가 생겨 공부하는
구조였습니다.
학교 수업의 교재와 방식이 교사에게 전적으로 위임된 상황에서 교사의
책임감이 증가하는 동시에 자부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칠 것 같았구요.
그것이 교육부의 책임자 한 사람의 정책의 변화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그 나라에서도 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분명 있지만
전반적인 영어수준이 올라간것은 객관적인 지표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당당히 말하는 학생. 그리고, 말하는
영어와 시험 영어가 별개가 아닌 학교교육.
우리 아이들은 이런 영어 교육을 받았으면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