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는 자신이 크다는 것을 알고 무척
속상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똑같이 작고 싶었지요.
또래에 어울리는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중학생 즈음의 나이가 되지
않더라도,
어린 아이들이 노는 모습만 보아도 친구와 비슷하게 커간다는것은
스스로에대한 안도감이고 친근감을 느끼는 척도가 됩니다.
놀이터에서 괜히 서로 나이를 묻는게 아니에요.
이름보다 몇살인지 묻고, 형인지 동생인지 위계관계를 확실히 한 뒤에
그에 맞게 노는 아이들..
괜히 몸이 크거나 작으면 위축감이 들기도 하고, 거짓말한것도 아닌데
나이를 속인것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테스의 숨길 수 없는 존재감은 스스로에게도 -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 - 또 놀이하는데도 고려대상이 되었을거에요.
여기서 잠깐 테스처럼 주목받는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주위의 '거인'처럼 외관상 '다르다'고 느껴지는
아이들.
이번에 입학한 둘째 교실에 얼굴이 까무잡잡한, 아니 까만 아이가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흑인이시라고 하는 그 아이.
한국말도 잘하고 덩치도 또래아이와 비슷한데도 유독 눈이
갔습니다.
교실에 다문화로 불리는 아이들이 보이는건 이제 익숙한 일이지요.
말하지 않아도 입양된 아이도 있을거구요.
정작 아이들끼리는 그것과 상관없이 놀곤 하던데, 선입관과 편견을
심어주는건 '입학식날 피부색이 다르네!'하며 낯설게 보았던
저같은 학부모의 시선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시선 때문에 그 아이도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위축되게하는건 아닐까요...
테스도 친구들과 다른 자신을보며 숨을 곳을
찾습니다.
그리고, 뜻밖에 자신과 같이 숨어있는 친구를 보게
되지요.
그 친구를 도와주게 되고,
함께 자신이 가진 그 모습을 가지고 다른사람을 도울 수 있음을
깨닫고 행동함으로써
새로운 자신을 보게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