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백경 - 100개의 건축 공간으로 복원한 경성의 시간
김은주 지음 / 동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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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작가의 경성백경을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건축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100곳의 건축물을 답사하며 기록한 경성의 입체적인 지도와 같은 책이에요.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서울 도심의 낡은 건물들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싶어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어요.



마흔 줄에 들어서서 도심을 걷다 보면, 화려한 고층 빌딩 사이로 묘하게 이질적이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옛 건물들에 눈길이 머물 때가 많았어요. 단순히 낡았다고 치부하기엔 그 벽돌 한 장, 창틀 하나에 서린 시간이 너무나 깊어 보였거든요. 건축 고현학자인 저자가 오늘의 시선으로 과거를 복원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제가 걷던 서울의 거리가 갑자기 100년 전의 풍경으로 겹쳐 보이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어요.



특히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옆으로 이어지는 옛 조선저축은행 건물을 다룬 대목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1932년 설계 공모 당시 269점이나 되는 안이 출입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단순히 돈이 오가는 금융 기관을 넘어 당대 시민들의 경제 활동과 도시 문화가 맞닿았던 세련된 국제적 공간이었다는 설명에 가슴이 뛰었지요. 변화무쌍한 세월 속에서도 원형의 미학을 간직한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축물들을 보며, 쉽게 부수고 새로 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어요.



책장을 넘길수록 건축은 단순히 움직이지 않는 대상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욕망과 슬픔, 그리고 일상의 온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점이 절절히 느껴졌어요. 사료를 찾고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기록한 저자의 정성 덕분에, 딱딱한 역사 공부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다정한 산책을 다녀온 기분이에요. 저 또한 사회생활을 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가끔은 이렇게 뒤를 돌아보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통찰을 얻었네요.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바쁜 일상 속에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고 싶은 직장인분들께 이 책은 훌륭한 가이드북이 될 것 같아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제 출퇴근길에 마주하는 오래된 건물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제게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아요. 우리 곁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근대의 시간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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