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을 한 운명 - 릴케의 고통의 해석과 인문학
김재혁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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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가 한 번이라도 거쳐 간 삶의 주변으로는 이런저런 많은 일화들이 전해진다. 그가 파리에서 로댕 밑에서 비서 일을 하며 살 때 그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그가 손을 씻을 때조차도 시인처럼 씻었다고 회상한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던 바대로 그는 일상생활의 무심한 순간까지도 시인의 삶으로 변환시켰다는 뜻이다. 남을 위해 선물을 마련하는 작은 일에서도 남다른 세심함을 보여준 그였기에 나날의 삶에서 시인다웠던 그의 모습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p.312)

 

릴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에게 이 책 “복면을 한 운명”은 릴케가 얼마나 시인으로서 한 평생을 고군분투하며 살아갔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릴케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평가는 시를 쓸 때, 즉 글을 쓸 때만 시인 이였던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시인으로서의 삶이였다는 것에 놀라움과 함께 존경심이 일어났다. 아마 저자는 이런 릴케의 삶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 릴케의 시에 대해 깊이 있는 고찰과 함께 많은 도움을 받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릴케처럼 시의 길을 하나의 수도의 길로 택한 시인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릴케는 마음의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내적 삶의 모습을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보여주기를 꺼렸는데, 이는 예술적 영감이 손상을 입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p.91)

 

릴케는 마음의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영감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과감히(?) 그 고통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온전히 시인으로서 삶을 이어가기 위한 엄청난 몸부림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이 위대함이고, 이런 것이 존경받아 마땅함을 느끼게 되니, 나의 삶에 하나의 지표가 되는 것 같다. 쉽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시도를 해 나가야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시인이 외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거기서 올 대가에 눈이 멀면 자신만의 문학을 추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위의 서툰 말이나 분위기에 휘둘려 결국엔 글을 망치고 만다. 시인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면 주위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따라야 한다.」(p.218)

 

릴케가 이야기하는 창작에 대한 정의를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먼저는 ‘강인함’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에 태어나면서부터 주위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주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강인함을 가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도전과 실패, 끈기, 인내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강인함이 없고서는 창작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 다른 것은 ‘믿음과 신뢰’이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것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나의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신선함을 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완전 새로운 것은 아니더라도 색다른 표현, 신선한 표현 등을 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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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와 깊이 만나는 즐거움 - 최복현 시인이 <어린왕자>를 사랑한 30년의 완결판
최복현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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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어린왕자 삽화 중 하나인 ‘모자’로 보이는 그림도 기억이 날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어린왕자> 나 또한 어린왕자를 읽어봤지만 사실 제대로 읽지는 않았음을 고백한다.

 

내게 그 책은 단순한 ‘동화’ 같은 느낌으로만 남아있었다. 아마도 이 책을 고르게 된 것은 그런 <어린왕자>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평소에도 왜 <어린왕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일까 궁금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으리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책의 저자이신 최복현 시인은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느지막하게 들어간 대학에서 처음으로 <어린왕자>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게 된 <어린왕자>가 너무 좋아서 틈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프랑스어 원서로 여러 번 읽었는데, 그 때 느꼈던 묘한 슬픔의 울림이, 신선한 충격이, 우리말 번역서로 읽을 때는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서 그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 직접 <어린왕자> 번역서도 출판했다고 했다.

 

이정도만 읽고도 그가 <어린왕자>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끼고 사랑한 <어린왕자>와의 마지막 대화가 바로 이 책이다.

 

진정한 <어린왕자>의 친구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린왕자>와 나누고 싶어서 쓴 책이라고 했다. 책의 문체가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저자의 마음을 알고 읽어서 그랬던 것일까? 내게 이 책은 참 따스하고 포근했다.

 

「어린왕자와 깊이 만나는 즐거움」을 읽으면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어린왕자>를 지은 생텍쥐페리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해봐야 그가 원래는 비행기 조종사였다는 것뿐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왕자가 생텍쥐페리 자신의 분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왕자>를 읽을 때는 보이는 것밖에 보지 못하는 어른의 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아이들처럼 마음의 눈을 열고 봐야한다고 말하는 최복현 시인의 의견에 공감한다.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즈음 내 옆에는 다시금 <어린왕자>가 놓여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어린왕자>를 만날 때에는 아이의 마음을 닮은 어른이 되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내 나이 서른둘에 다시 만나게 될 <어린왕자>와의 만남이 기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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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율도국 - 광해와 허균, 홍길동과 대마도
신용우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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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역사소설을 읽기 전에는 그에 해당하는 역사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책을 보았지만, 이번에는 별 생각 없이 소설책만을 보려고 하였다. 그런데 책의 앞부분에서부터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가 유독 많이 하여 집에 있는 역사관련 책과 인터넷 등을 살펴보았다.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저자가 강조한 『인조반정사』라는 책에 대해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놀라웠다. 그리고 궁금증과 함께 엄청난 호기심이 발동하여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때론 아프기까지 했다. 왜냐면 굉장히 슬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정치적인 상황이 어찌 지금의 시대와 비슷할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멍 때린 적이 많았다.

 

「우리는 역사가 도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되돌아올 때는 교훈을 수반하고 오기 때문에,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해 주는 자산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역사가 지금 내 곁에 돌아와 있다는 것은 알아채지 못한다. 그것이 문제다.」(p.5)

 

저자의 이 말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래서 역사의식이 중요한데, 여지껏 나의 삶 속에서 이런 교훈을 들려준 어른들이 없었다는 것이 한스러웠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야기했겠지만 내가 들을 귀와 깨달을 지식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부터라도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여 나와 같은 전철을 밟는 젊은이들이 늘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많이 감정적으로 동하던 부분은 바로 ‘기우제’였다. 조선 국왕이 백성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아픔을 공감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기우제를 드리려고 하는 과정이 나의 감정선을 폭발적으로 건드려 눈물이 많이 났었다. 책을 보면서 그렇게 울어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정말 오랜만에 책에 푹 빠졌던 것 같다. 또 책을 보면서 이렇게 감정이입이 잘 될 줄 몰랐기에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는 되도록 읽지 않게 되면서 이후로는 혼자 있을 때 많이 읽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많이 느꼈던 건 바로 등장인물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음을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저자가 등장인물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전에는 대충 넘어 갈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왠지 독자들이 빨리 깨달게 하기 위해 특별히 배려해 주는 것 같았다. 아무튼 신기했으며, 참 좋았다. 어쨌든 이 책은 잊혀 가는 역사의 한 부분을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아주 뜻 깊은 책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끔 한 대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언뜻 한두 번 읽고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아 여러 번 읽었던 같다.

 

「기자헌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기에 자신이 자신을 옭아맨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 때문에 당연한 결과를 맞은 것뿐이다. 기자헌은 기방에서 이억정을 천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가진 것이 없기에 조금만 준다고 하면 속도 비운다고, 근본은 속이지 못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고 한 말일 뿐이다. 가진 자들은 더 얹기 위해서 모든 것을 던진다. 그것이 권력이든 재물이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더 얹기 위한 것이라면, 심지어 자신이 인간이라는 최후의 자존심마저도 팔아버린다. 하지만 갖지 못한 이들은 가진 자들이 조금만 나눠주어도 고마워하고 감사할 줄을 안다. 없는 것을 채우려고 노력은 하지만 자신을 팔지는 않는다. 설령 몸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구속되는 신세가 될지라도 그 마음만은 순수하게 지키고 싶어 한다. 그 순수한 자신의 마음을 순간의 욕심에 의해 팔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들은 목숨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부끄러워한다. 없는 이들이 천하고 근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지 못해서 부족해 한다는 것을 이용해서 제 뱃속을 채우려는 인간들이 인간의 근본을 갖추지 못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기자헌 역시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그런 못된 습성을 버리기 전에는 끝까지 자신을 해하는 실수가 따라다닌다는 것을 몰랐다. 없는 이들이 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런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천한 것이다. 없는 이들이 못 배워서 천하고 무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산다는 것을 들여다볼 줄 모르고 산다는 것이 무식한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리 화려한 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을지라도 그 무식함은 자신을 끊임없이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p.333~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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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눈물
박경남 지음 / 북향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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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을 믿을 수 없는 악한 것으로 보았기에 부모 자식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매개로 형성된다고 했다. 권력과 천륜 사이에서 번민하는 부자지간, 오늘의 세태이기도 하다.」(p.7)

 

이 책 처음에 나와 있는 ‘작가의 말’ 끝부분이 책 전체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을 보는 내내 답답함이 엄습해 왔다. 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는 것일까? 구한말에만 그렇게 소통이 안 되었던 것이 아니라 짧게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보더라도 제대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역사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이 대부분이라 왕을 중심으로 기록된 것을 살펴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통해 시대문화를 알 수 있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는 있는 것 같다.

 

“불통의 시대”

 

과거 계급사회로 억눌려 있던 사회제도 및 문화로 인해 불통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을 때는 어느 정도 이해는 갔지만, 지금의 시대에 적용해 보면 과거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아 단순히 사회제도와 문화로 인한 것으로 치부하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민족 자체가 소통이 쉽지 않은 민족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튼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조선의 역사를 마감하게 되는 것을 보았을 때 혼란스러움이 앞선 것 같다.

 

가장 안타까운 건 우리 스스로 고군분투하며 끝까지 싸워 나라를 보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일전쟁(임진왜란)을 필두로 하여 일본 식민지에서의 해방, 그리고 6․25전쟁. 모두 다 강대국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겨우 유지해 왔었다.

 

60여 년 동안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강대국들 속에서 눈치만 보고, 그들의 요구를 우리의 이익을 위해 큰 소리 치지 못하는 현실을 보니 단순히 과거를 과거로서만 인식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교훈으로 삼지 않고서는 현재의 어려움도 결코 제대로 헤쳐 나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유추하여 나타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100%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 좋겠지만 역사는 그럴 수 없는 것이기에 단 1%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과감히 사실을 토대로 유추해 나가는 것이 바로 역사를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야 시간이 갈수록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역사의 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최대한 많은 고증들을 가지고 사실을 바탕으로 글을 써 내려 나갔기에 설득력이 있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렇듯 누군가가 먼저 시작하게 되면 조금씩 숨겨져 있던 사실들을 하나씩 밝혀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더욱 더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살펴보겠다.

 

「'주상,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정말 큰일 납니다. 이 아비가 그리 두려우십니까? 군사들이라도 이끌고 대전으로 쳐들어 갈 것이라고 여기는 겁니까? 삼군부는 내 사병조직이 아니라 주상의 군사들이며 조선을 지킬 군사들입니다. 군을 가볍게 보면 큰일 납니다. 당장 안전하다고 끝까지 안전하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응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에서 천불이 났다. 그토록 믿었던 재황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더 이상 이하응의 아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조선의 국왕으로서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온전한 것이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주상, 정녕 동인괘를 보지 않았단 말이오? 아니면 함께 할 이들이 아비가 아니라 그들인 게요? 아비를 믿지 않는다면 제대로 국사를 운영해야 할 것이 아니요?‘ 머리로는 재황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가슴은 들끓어 올랐다.」(p.127~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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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바 수트라 - 수행경(修行經)
김은재 지음 / 지혜의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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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제목도 한국어가 아닌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어 굉장한 호기심을 일게 되어 냉큼 책장을 넘겨보았다.

 

헉! 표지만 특이할 줄 알았는데, 편집도 굉장히 특이했다. 왠지 과거로의 회귀(?) 같은 느낌의 편집을 보고 약간 실망이 되었지만, 신기하게도 내용을 읽어가다 보니 편집의 특이함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용과 더 잘 어울린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흡입력이 있어 신기했다.

 

요즘 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오랫동안 알고 있던 종교 외에 다른 종교에서는 과연 어떤 것을 가르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 너무 낯설었고, 대단히 어려웠다. 처음엔 산스크리트어가 너무 많아 그것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웠고, 나중에는 내가 알고 있는 종교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가르침이다보니 그것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책 한 번 읽었다고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은 하였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을 읽을 때는 조금 템포를 늦추면서 약간 의미하듯이 읽어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독을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모르는 것이 많더라도 일단은 대충 넘어가기로 하고,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을 중심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랬더니 처음보다는 그 뜻을 약간씩 이해할 수 있어 작게나마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참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깨달음을 많이 받았던 부분은 아무래도 초보적인 수준인 ‘나’ 라는 것과 ‘마음’에 대한 정의들을 풀어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중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나는 <몸>을 알아챌 수 있다. 그러면 <몸을 알아 챌 수 있는 그것>은 몸과는 분리된다. 몸은 이제 인식의 대상이 되고, 나는 주체가 된다. 그리고 또 나는 <나의 마음>도 알아챌 수 있다. 만약 어떤 생각이 움직이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지켜볼 수 있다. 나의 주의를 그 생각에 집중하고 거기서 움직이지 않도록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생각의 흐름>을 허용할 수도 있다. 또 <나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일어나고 있다면, 나는 <그 기복이 심한 화>와 <지체되는 우울>을 알아챌 수 있다. 그러면 그때, <그런 것을 알아채고 있는 그것>은 또 분리된다. 즉 마음은 대상이 되고, “나”는 그런 것을 지켜보고 있다. 나 자신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은 그 <지켜보는 에너지>다. 그 <지켜보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이고 의식이다. 그러므로 <분리가 불가능하게 되는 지점>에 이르지 않았다면, 우리는 <진정한 나 자신>에게, 즉 참나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p.13~p.14)

 

「<마음> 혹은 흔히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내가 지나온 [과거의] 모든 축적>을 말한다. <내가 겪은 모든 경험과 내가 마주친 모든 정보, 내가 어디선가 읽고 듣고 긁어모은 그 모든 지식, 그런 것이 축적된 것>이 나의 마음이다. 마음은 <끊임없이> 축적한다. 심지어 내가 의식적이 아닐 때도, 혼수상태에 있을 때도, 마음은 기억하고 축적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어떤 기억>이다. 그런 기억, 그런 마음이 에고다. 그것이 <나>라는 것이다.」(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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