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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문비나무
존 베일런트 지음, 박현주 옮김 / 검둥소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퀸살럿 제도는 북아메리카에서 비가 많은 지역에 속한다. 구름양이 연중 250일 이상에 이른곳을 생태학자들은 '초해양성 다습 지역'이라 부르는데, 퀸살럿제도가 그 한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이후에도 퀸살럿 제도는 세상과 동떨어진채 독자적으로 살아왔다. 그곳은 만조와 간조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실존적 지대를 상징한다. 골드브리지에서 700 킬로미터 북서쪽으로 가면 그레이엄 섬의 북쪽 끝 머셋해협에 이른다. 해협의 동부해안을 끼고 올드 머셋의 하이다 마을이 있다. '하이다' 라는 말은 '사람들'을 뜻하는데 그것은 실제로 '우리들'에 대한 다른표현이다.
스킬라이는 독수리부족이었다. 독수리는 하이다의 연합 부족 가운데 두개의 주요한 부족의 하나이며, 씨족관계는 칫스키트나이로 황금가문비 나무 주변의 땅을 에워싸고 있는 야쿤강 북부유역을 포함하는 지역에 역사적으로 살아온 사람들과 같은 씨족이다. 그들은 요리하는것과 먹는것을 즐겼던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부족외부의 사람들에게 조차 관대하였다.
북서부 연안에 발을 들여놓고 현지인들과 만나 살아남은 최초의 유럽인은 제임스 쿡 선장이었다. 쿡이 처음에 상륙했던 목적은 수달가죽이었다. 수달 털가죽은 중국인들이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있던 북태평양의 '황금 양모피'였던 것이다.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수달의 수는 줄어들었고, 그들의 관심은 목재로 옮겨갔다. 목재는 연료와 건축재료의 주된 원천이 되어왔고, 식량과 의복, 무기류뿐만 아니라 열과 빛과 피난처까지도 제공해주었다.
1850년에서 1860년 사이에 북아메리카의 숲 15만 제곱킬로미터가 사라졌다. 1867년 종이가방이 발명되었고, 1900년이 되자 북아메리카 사람들은 매년 5백억보드피트를 초과하는 나무를 베어 넘기면서 숲을 개간하고 있었다. 1915년에 서부연안 수출에서 미국목재산업을 완전히 지배하려는 시도로 동남아시아에서부터 먼길을 돌아 야쿤강으로, 그리고 황금가문비나무에까지 뻗어나갔다.
그랜트일가가 처음으로 골드브리지에 발을 들여놓았던 1950년데 후반에는 사람의 손이 닿지않는 고지대 삼림이 우거져있었다. 그랜트의 아버지는 밴쿠버의 거의 모든지역에 동력을 공급해준 댐시설을 감독하고, 할아버지는 목재붐을 타고 재목공금회사 사업주로 은퇴했다. 그랜트 역시도 신중한 벌목꾼에 도로설계자였다. 하지만 그는 열두살많은 형 도널드의 죽음으로 인해 편집증적 정신분열이 있었다. 그랜트는 일생동안 수없이 많은 나무들을 베어넘겼으며,지름 밑둥이 2미터가 넘는 황금가문비나무역시도 메시지와 주의를 환기시키는 경고의 필요성을 이유로 베어버렸다. 퀸살럿제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하이다부족들은 황금가문비나무는 소년의 환생으로 믿었기에 미국의 9.11 사태만큼 충격을 받았고, 고통스러워했다.
벌목산업에 맞서 황금가문비를 베어버린 그랜트의 극단적인 사명감과, 얼마전 우리나라 국보1호 숭례문을 불태워버리고도 아무런 가책도 없었던 노인의 얼굴이 함께 크로스된다.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전통과, 그안에 함께 숨쉬어왔던 세월들을 어찌 복원할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야콘강 기슰의 그루터기 옆에는 두번째 어린가지가 심겨져 황금색 바늘잎들이 초록색 가운데 흩뿌려져 있다고 한다. 모쪼록 하늘높이 자라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