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관함은 일관성이 없다. 그때그때 눈에 띄거나 생각난 책들, 혹은 누군가의 서재에서 좋다고 한 것들을 주워담다보니 일관된 주제도 맥락도 없다. 책을 얕게 읽어서 그런 것이리라. 그렇다면 묵직하게 읽는다는 건 또 뭘까. 어렵고 진지한 책을 읽는 걸까? 흔히 말하는 고전이나 인문서 같은 책 말이다.
이젠 그저 내가 좋은 책이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철학자 강유원의 책들이 좋아서 다 이해하진 못해도 줄기차게 읽었던 때가 있다. 어떤 책들은 신기하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들로 쓰였어도 그 깊이와 아름다움은 쉬이 알아채져서 막 빠지게 된다. 강유원의 책들이 그랬다. 정신없이 빠져서 책들을 읽다가 그가 읽고 가르쳐온 책들, 즉 고전을 나도 그대로 독파하리라 다짐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나는 일리아스를 읽었다. 지독하게 재미가 없었지만 꾸역꾸역 읽었다. 읽다가 힘나라고 이걸 바탕으로 한 영화도 봤다. 영화는 재밌었지만 책은 재미 없었다. 고전이 내게 무슨 효용이 있나 싶었다. 이 책을 극찬하는 리뷰들은 차마 보기가 부끄러웠다.
어떤 책에선 나를 위로했고(어려운 책을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책에선 나를 좀 더 다그쳤다(이 정도의 책은 읽어야 지성 있는 독서가로서의 근력이 키워진다).
자기계발서나 얄팍한 소설류만 읽었던 독서 단계에선 조금 벗어났지만 그 위의 단계로 가는 게 너무 어려웠다. 뇌가 살찌는 책들을 읽고 싶지만 내겐 힘들어 보여서 인문서를 읽는다 하고는 인문서를 표방한 에세이만 읽었다. 정말 괜찮은 책도 있었지만 읽고 나면 물배만 채운 것 같은 헛헛한 책도 많았다.
책을 고를 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게 바로 알라딘 서재다. 뭔가 좋은 느낌의 페이퍼를 발견하면 그 서재 주인이 읽고 좋았다고 말하는 책들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관심 가는 책들을 골라 담는다. 그리고 그 책들 중에서 최종 후보들만이 장바구니에 담기고 결재된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내 귀한 시간과 돈이 투자되는 일. 이젠 책을 사는 것도 읽는 것도 신중하게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분야를 알 필요도 없고 모두 깊이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때로는 고전(을 비롯한 있어 보이는 추천 목록들) 목록 따위는 쿨하게 무시할 줄도 알아야 하고 반대로 때로는 누군가의 추천 목록을 귀하게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누군가가 내게 정말 진주를 추천한 것일 수도 있으니.
실패하기 싫다. 작년 100권 정도의 책을 사거나 빌렸으나 그 중 좋았던 책은 14권에 불과하다. 너무 낮은 타율이다. 올해는 이 타율을 좀 올리고 싶다. 허영에 찌들어 책을 읽지 않되 지적인 충족감과 만족감을 주는 독서를 하고 싶다. 욕심인가.
올해 읽고 싶은 분야는 철학, 역사이다. 둘 다 만만치 않다. 일리아스의 실패를 교훈 삼아 친절한 입문서부터 도전할 생각이다. 읽다가 힘들면? 그냥 때려치자. 돈과 시간은 한정돼 있고 책은 차고도 넘친다. 어디선가 나와 정말 궁합이 맞을 좋은 책들이 나와 인연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좀 더 쉽고 친절한 책을 찾아 읽고 어려우면 이 과정을 다시 반복하자. 부끄러워하지도, 패배감을 느끼지도 말자.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읽고 싶은 책들.
철학 듣는 밤은 리뷰가 좋고 입문서로도 좋아보여서 고른 책이다. 팟캐스트도 들어보려 했으나 육아와 살림을 하다 보니 집중해서 듣기가 힘들어서 일단 보류 중이다. 김중혁 작가와 김민식 피디의 책을 고른 이유는 나도 잘 쓰고 싶어서. 나도 매일 아침 쓰다 보면 무엇이든 잘 쓰게 될까? 독학자의 서재는 요즘 공부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고 미국 보통 사람들의 지금 영어는 성문종합영어를 계속 보는 게 나한테 별 의미 없는, 지루한 공부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두 살 아기 키우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의 목표를 이루기는 좀 어렵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진 무리하지 않고 즐기듯 하고 싶다. 독서든 공부든. 돈이나 직업과 연결되지 않는 전업주부의 자기 만족이라고 해도 최소한 육아 우울증은 예방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