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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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소설가의 에세이 <5년만에 신혼여행>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자신의 부인과 어머니(즉 고부 간)는 사이가 좋지 않은데 부인에게는 시어머니, 시댁이라는 게 하나의 커다란 상징인 것 같다고. 유교, 가부장 뭐 이런 거 말이다. 책이 없어서 구체적인 워딩은 기억 나지 않지만..이걸 보고 우와, 나도 그런데, 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의 집안은 증조부대까지 제사를 지낸다. 이게 참 조선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뭐라 할 입장도 아니고..(하지만 눈치 보며 설거지를 해야 하는 막내 며느리의 입장에서 뭐라고 한마디 못할 건 또 뭐냐 싶긴 한데 그렇다고 ‘지금이 조선시대인가요?‘식의 농담을 했다간 어디서 저런 싹수없는 며느리가 들어왔냐는 식의 욕을 얻어먹을 게 뻔하므로 그냥 묵묵히 있지요 ㅡㅡ) 하여간 좀 곤란한 입장이다. 명절까지 합하면 한 두 달에 한 번 꼴로 제사인데 우리 엄마는 교회 권사님이고 뭐 이런 미묘한 상황. 난 교회에 다니질 않으니까 딱히 종교적 입장을 내세워 ‘저 실은 제사가 곤란합니다. 제가 기독교인이라서요..‘라고 할 수도 없다.

결혼을 하고 나서 페미니즘 붐이 일었다. 우연의 일치인가. 결혼을 하고 나니 시가가 딱히 가부장적이거나(제사만 빼고) 한 건 아니지만 미묘하게 모순된 현실에 많이 부딪치게 된다. 예를 들면 시할아버지의 제사와 백 세가 다 되어가시는 나의 외할머니의 생신이 같은 날이다. 난 어디에 참석을 해야 할까? 당연히 제사다. 이건 누구도 이렇게 하라고 정하거나 강요한 건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그게 당연하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적어도 내 주변사람들은 말이다.

곰곰 생각을 해 본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사실지 모르는(즉, 앞으로 얼마나 뵐지 모르는) 외할머니의 생신에 가는 게 맞지 않나. 아니면 남편은 시가로, 나는 친정으로, 즉 각자의 본가로 가서 각자의 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국에선 돌 맞을 소리인 이런 내 생각.

내 주변에는 딱히 엄청 꼰대이거나 가부장에 대놓고 쩐 마초 따윈 없지만 모두들 가부장 사회에 내면화된 사람들이라 이게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인터넷 세상, 혹은 책에서 읽은 세상은 아직 나와는 거리가 멀다. 이 곳 알라딘 서재만 해도 뜨인(?!) 분들이 많지만 내 주변엔 하나도 없어..ㅠㅠ 얼마 전에도 남녀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올라 좀 흥분해서 시니컬하게 얘기했더니 친구가 ‘혹시 너 메갈..이런 거 아니지?‘라고 해서 좀 황망했다. 아..내 주변인 중에 제일 진보적이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한 너마저..

그래서 결혼하고 나는 페미니스트가 된 것 같다. 된 것 같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일천해서이다. 책 몇 권 읽어 본 게 다라서 뭐라 말하긴 힘든데 참으로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페미니즘이라는 틀 안에서만 사람들이 받아들이는구나 싶다. 지극히 당연하고 그래야만 하는 일들인데 여성, 장애인, 소수자라는 이유로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하고 투쟁해야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래야 하는지를 (굳이)설명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프리패스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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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 2018-04-19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이, 공감하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