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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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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작은 일처럼 느껴지나 누구나 이렇게 마음 쓸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더 기막히다고 느껴지는 사람. 멋지다.. :)

 

멕시코의 곤잘레스 할아버지는 기막힌 이발사였어. 60대의 할아버지였는데 그 손길, 있잖아, 일개 머리통에 불과한 것을 대하는 자세가 예술적이었어. 뭐랄까, 배려가 넘치면서, 정확하고, 심지어 부드럽기까지 했는데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전혀 생생내지도 부러 드러내려 하지도 않았다는 거야.
압권은 역시 면도였어. 그는 세 개의 컵을 가져다 나에게 향을 맡게 했는데 비누 거품을 만드는 그 통엔 각각 향이 다른 비누가 담겨 있었거든. 그 중에서 맘에 드는 걸 고르게 하는 거야. 이 정도면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프로인지를 알 수 있겠지. 물론 머리 감길 때 역시 손님이 선택한 향비누로 머릴 감겨주더라고. 난 적어도 남을 위한 배려가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해. 한 가지 비누만으로 모든 손님의 머릴 감기고 면도를 해주는 것도 뭐 나쁜 일이긴 할까마는 왠지 존중받는 느낌이잖아.
내 머리카락과 수염이 존중받는 거잖아. 그 기분이 나쁠 리 없잖아.

다음 날 아침,
나를 깨운 건 이발소에서 내 머릴 감겨준 그 비누 향이었어.
달콤했어. 나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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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서커스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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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은 때 : 20171014 ~ 20171015 (2일)

책 중에 재미없는데 읽다 보면 재미있는 책이 있고 처음부터 재밌는 책이 있는데 나에게 이 책은 처음부터 재밌었던 책이고 코드와 잘 맞는듯한 느낌이었다.

[인비저블 서커스]
샌프란시스코의 히피 그룹 '디거'와 예술가 행방 전선, 글라이드 교회의 주최로 1967년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축제. 음주, 포르노에 관한 토론, 나체 시위 등 급진적이고 반사회적인 해프닝을 벌이고 이를 몇 분 간격으로 단신과 속보로 뽑아 신문을 배포함으로써 샌프란시스코 문화사의 전설이 되었다.

[책의 내용]
1978년 샌프란시스코. 열여덟 살의 피비는 버클리 대학 입학을 앞두고 무작정 유럽 여행길에 오른다. 생전 처음인 유럽에서 피비가 의지하는 건 여행책자나 지도가 아니다. 팔 년 전, 언니 페이스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집에 보냈던 엽서들이다. 페이스는 열일곱의 나이로 유럽에서 죽었다. 자살 외의 알려진 사인은 없다. 페이스의 죽음으로 몇 년 앞서 사별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여전한 가족들은 더욱 피폐해졌다. 피비 생각은 그랬다. 그러나 엄마도 오빠도 아버지와 페이스를 점차 잊어가는 것 같다. 재혼을 결정한 엄마와 그런 엄마를 적극 지지하는 오빠 베리에게서 피비는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지만, 변화를 모색하는 그들과 달리 과거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하기도 하다. 도피하듯 유럽으로 떠난 그녀는 언니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언니의 흔적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다 언니가 마지막에 이른 이탈리아의 코르닐리아에 당도하면 마침내 언니가 삶을 버린 이유도 알게 될 거라 믿으면서. 그러나 애써 여흥만 기록한 엽서가 유서가 될 수 없듯, 피비의 기대와 믿음도 페이스의 진실에 쉬이 가닿진 못한다. 언니의 진실을 찾아 나선 피비의 여행은 번번이 착각과 실망과 사고와 공포의 일지가 되어간다...

피비를 봉인해버리고 그녀의 현재 삶이 비현실적이고 의미 없음을 상기시키는 하얀 문.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져 있었다. (p26)

"겁먹는게 당연하지." 아빠가 말했다. "두려움에 맞서지 마, 그게 비결이야. 두려움 속으로 걸어들어가. 모든 걸 놔버리면 다시 다 찾을 수 있어. 내가 장담해." (p56)

신기하게도 둘 사이의 긴장이 풀렸다. 피비는 오빠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악스럽게 프라이버시를 지키려 한 배리의 태도와는 반대로 방은 관객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정돈되어 있었다. (p81)

유럽 사람들이 반바지를 입나? 엄마 말로는 피비의 속눈썹이 워낙 짙어서 필요 없다던 마스카라도 책상에 앉아 버클리 대학 앞으로 입학을 일 년 미루겠다는 결심을 밝히는 편지를 썼다. 편지를 봉하고 우표를 붙였다. 그러나 이 모든게 예방책처럼 느껴졌다. 병에 걸리고 나서 언제라도 입원할 수 있게 가방을 싸놓고는 그렇게 미리 준비해두면 병원 갈 일이 없을 거라고 희망을 걸었던 아빠처럼. "우산을 챙기면 오히려 비가 더 안 내리지 않던?" 아빠는 짐짓 쾌활하게 웃었다. (p134)

그래서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는지도 몰랐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왜냐는 것이었다. 왜? 피비는 자문했다. 왜 사는 내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란 말인가?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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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소녀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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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때 : 20171012 ~ 20171013 (2일)

전혀 어울리지도, 상관성도 없어 보이는 두 단어가 결합하여 책 제목이 되었다. 갱년기 소녀.. 내 나이와 몸은 갱년기의 때를 보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녀라는..책 제목을 볼 때마다 뭐 대강 이런 내용이 아닐까 생각 해왔었다.

책 뒤표지에 있는 책 내용과 인물에 대한 소개를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소녀이고 싶은 오타쿠 중년들의 폭주 미스터리!

197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순정만화 [푸른 눈동자의 잔]의 팬클럽 '푸른 6인회'. 프렌치레스토랑에서 정기 모임을 열고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회지를 발행하며 추억의 만화 속 세계에서 소문과 망상을 공유하던 이들 사이에, 한 멤버의 실종과 함께 불길한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복잡한 현실문제에서 도피해 막연히 주인공이 되기를 꿈꾸는 이들의 엇나간 열정과 집착은 끝내 유혈사태까지 불러오는데....

에밀리(41세) : 한때 만화가를 꿈꾸었던 주부.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린다. 실비아(53세) :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우아하게 사는 듯하지만 실상은 빚더미. (에밀리와 실비아 : p39 ~ p120)
미레유(49세) : 무직자, 독신. 형제들을 대신해 병든 어머니의 간호를 떠맡는다.  (p121 ~ p218)
지젤(42세) :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고령출산을 고민한다. (p219 ~ p296)
마그리트(46세) : 모임의 리더. 가정불화와 만성 위통이 고민거리다. (p297~ p390)
가브리엘(32세) : 빼어난 외모와 친화력을 겸비한, 모임의 아이돌 같은 존재. (p391 ~ p398)

이 인물 소개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각 인물의 특성을 짧게 소개를 해야 해서 그랬을 수 있겠지만 '많은 생략'으로 인해 성격과 기질이 제대로 표현 된 인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이들의 나이를.. 즉 저 숫자들을 가만히 들여다 본 후 그 인물들의 행동을 떠올려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나의 화를 가장 많이 불러 온 인물은 역시 미레유이다. 미레유의 내용을 읽으면서 감정에 너무 빠져들지 않고 한발짝 떨어져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가브리엘 씨 소설에 삽화를 그려보면 어떨까? 어때, 가브리엘 씨?" 마그리트가 여느 때처럼 리더쉽을 발휘해 거침없이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꼭 그래주세요." 가브리엘의 말을 듣자 에미코는 어깨가 덜덜 떨렸다. "그렇지만, 저 같은 게.... 괜찮으시겠어요?" (p28)
- 여기서 에미코는 에밀리이다. 즉 마흔 한살의 여자가 무슨 말만 하면 저 같은 게... 라는 표현을 쓰는데 짜증 나고 화가 났다. 왜 저래? 싶고.. -

"에미코 씨, 사람들이 자기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네?"
"모두 몰래 자기를 별명으로 불러."
".... 뭐라고요?"
"촌뜨기 대장."
"촌뜨기..."
"왜, 옛날에 그런 만화 있었잖아. 자기는 사투리를 쓰는 데다 몸매도 둥글둥글하니까. 물론 처음 그 별명을 붙인 사람은 가브리엘 씨고, 아, 하나 더 있다. 나무 오르는 돼순이."
"나무 오르는 돼순이....?"
"돼지도 치켜세우면 나무에 오른다.... 그런 속담 있잖아."
- 이 부분을 읽을 때는 '혹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를 좋아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뒤에 가서 나를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를 일이지....

S 아줌마들이... 코스튬 플레이?
W 소녀로 돌아간 기분인가보지.
S 그러고 보니 일전에 [푸른 눈동자의 잔] 팬 사이트를 구경해본 적 있어. 서로를 실비아니, 지젤이니, 마그리트니 하는 탐미적인 닉네임으로 부르던데. 엄청 깨더라. 그것도 소녀 기분을 내려고?
W 응. 분명 본인들은 진지할 거야. 소녀 시절을 지나 사회로 나와서 누구는 직장인, 누구는 주부, 또 누구는 어머니가 돼. 하지만 마흔 살이 지났을 무렵 문득 멈춰 서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사랑받지 못할뿐더러 방해물 취급을 받는다는 걸. 뭐, 갱년기 장애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자신의 위치에 견딜 수 없는 초조함을 느끼고 피해망상을 품어. 사춘기랑 똑같아. 호르몬 변화가 정신적 문제를 낳는 거야. 실제로 중년층의 도덕적 해이와 범죄는 청소년보다 심각하다고. (p118)

"기요씨는 맨션 융자금 벌써 다 갚으셨죠? 연금만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테니 좀더 편하게 사시지그래요?"
"아니야, 난 일하는 게 좋아. 그리고 너무 편하면 노망들 것 같아서 무섭거든."
"뭐 취미는 없으세요?"
"취미라" 기요는 잠시 생각한 후 "가족을 보살피는 거 아닐까" 하고 대답했다. (p143)
- 취미가 가족을 보살피는 거 아닐까 라는 말... 이 말도 '추측형'이다. 쉬어본 적이 없어서 쉼을 누릴때의 행복과 편안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취미가 있어본 적 없어서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엄마는 저렇게 대답을 한다.
이 부분에서 마음이 울컥하고 묵직하고 아팠는데  내 마음이 이 감정에 확 빠져들지 않도록 조금 노력을 했다 . 그 아픈 감정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서...-

"엄마 나을 때까지 내가 밥도 하고 장도 볼게. 그러니까 생활비 나한테 맡기지 않을래?"
"생활비를?"
"응, 통장이랑 도장 어디 있어?" (p160)
- 아...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어... 자식들이여.. 우리 이러지 맙시다.. 평생을 다 주신 분에게..-

미레유 편은 이런 내용들이 반복해서 계속 나온다. 그래서 읽기에 힘도 들었고, 화도 났고, 미레유가 내 옆에 있었으면 저런 기가 막힌 행동들에 따박따박 받아치며 뭐라고 해줬지 싶다. 그래도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지만..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 뭔가 평범하진 않다. '다들 좀 모자라다..' 싶다.
처음에 에밀리의 행동을 보고선 '아니! 모르겠어? 거짓말이잖아!! 지금 너한테 돈 뜯어내는거잖아! 아니, 그 돈을 왜 줘?? 나이를 그렇게 먹었는데 왜 그렇게 어리숙해? 정말 모르겠어? 아.. 답답해' 이러면서 글을 읽어 나갔다.

나는 과연 이 인물들 중 누구와 가장 닮았을까를 잠시 생각 해본다.
딱히 누구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할만한 사람은 없지만 어쩌면 나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게 아닐까 싶다.
에밀리의 경우만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훤히.. 너무나도 훤히 보이는 일인데도 정작 본인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 하고 있다.
문제의 내용은 다르겠지만 나도 에밀리처럼 눈 뜬 장님으로 살아가고 있겠지..
난 어떤 부분에서 눈 뜬 장님일까...? 남들 다 보는 내 모습 중,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은 무엇일까...? 남들 일에 속터져 하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내 모습에 집중하자.
그래.. 나에게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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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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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때 : 20171009 ~ 20171011 (3일)

이 책의 중반부를 넘어섰을 때조차 '내가 읽고 있는 책 이름이 뭐더라..?' 생각하며 제목을 몇 번 확인해야만 했다. 그만큼 왜 이 책의 제목이 '설득'인지가 잘 와 닿지 않았다.
저녁에 샤워 후 젖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흔들어 말리며 책을 읽느라 책에 집중하지 못 했나..? 아니면 책을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빨리 읽어내렸던 여러장 안에 내가 놓친 중요한 부분이 있었나..? 왜 제목이 '설득'이지?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어 가다가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아버지인 월터 엘리엇(용모와 지위에 대한 허영심이 있음)에게 세 명의 딸이 있는데 그중 둘째 딸인 앤(아버지와 언니에게 하찮은 존재, 기품 있고 온화한 성격)과 그녀가 사랑했던 웬트워스 대령이 헤어진 지 8년 만에 다시 우연히 만나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내용이다.

이 둘이 헤어지게 된 데에는 레이디 러셀의 영향이 컸다.
레이디 러셀은 레이디 엘리엇(돌아가신 앤의 어머니)의 절친으로 그녀가 사망할 때 자기의 자녀들을 레이디 러셀에게 잘 돌봐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연륜이 있고 차분한 성품의 그녀는 앤과 웬트워스 대령과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그가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걱정만 앞세우는 건 인간의 노력에 대한 모독이며 신의 섭리에 대한 불신이 아닌가. (p42)

그러나 사람이란 타인과 자신을 바꾸고 싶은 마음을 달래줄 나름의 우월감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p57)

순종적인 정신의 소유자는 참을성이 많고, 강한 이성을 가진 자는 의지가 확고한 법이다. 하지만 이 경우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유연한 마음, 위안을 구하는 성향, 흔쾌히 악에서 선으로 돌아서서 자신을 잊게 해줄 일거리를 찾는 힘은 오로지 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p205)

"루크 간호사는 언제 얘기를 꺼내야 할지 잘 알고 있어요. 영리하고 똑똑하고 분별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의 본성을 알아보는 눈이 있지요. 사리분별과 관찰력을 밑천으로 가진 사람이라 좋은 말동무가 되어준답니다." (p206)

"고난의 시기에 인간 본성의 위대함을 보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지요. 하지만 대체로 병실에선 장점보다는 약점이 드러나고, 관대함과 용기보다는 이기심과 성급함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니까요. 세상에는 진정한 우정이 참 드물지요! 그리고 불행히도," 그녀는 나직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걸 잊고 살다가 뒤늦게야 정신을 차리니까요." (p207)

앤은 그와 결혼하도록 설득당할 수도 있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랬더라면 틀림없이 불행이 뒤따랐을 거라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어쩌면 레이디 러셀에게 설득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랬다면 시간이 지나 뒤늦게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어느 쪽이 더 비참했을까?
- 참고로 여기서의 '그'는 엔트워스 대령이 아니다 - (p280)

엔트워스가 앤에게 쓴 편지 내용.
더는 침묵하며 들을 수가 없군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당신에게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당신의 말이 제 폐부를 찌릅니다. 고통스러운 한편 희망에 부풀기도 하는군요. 제가 너무 늦었다고, 그 소중한 감정이 영영 사라져버렸다고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에게 다시 제 마음을 드립니다. 팔 년 반 전 당신은 제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제 마음은 여전히, 아니 전보다도 더 당신의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더 빨리 잊는다거나, 남자의 사랑이 더 빨리 식는다고 말하지 마세요. 제가 사랑한 여자는 당신뿐이었습니다. 제가 부당했는지도 모르지요. 나약하고 원망에 차 있었어요. 하지만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답니다. 제가 바스에 온 건 오직 당신 때문입니다. 오로지 당신만을 생각하며 계획을 세웁니다.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제 소망을 알아보지 못하신 건가요? 당신이 제 마음을 꿰뚫어 보았듯이 제가 당신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 열흘씩이나 기다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글을 쓰기가 힘들군요. 순간순간 저를 감격케 하는 말이 들립니다. 목소리를 낮추어 얘기하셔서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더라도, 저는 그 어조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너무도 선하고 너무나 뛰어난 사람! 당신은 정말 우리를 제대로 이해해주시는군요. 남자들에게도 진정한 애정과 절개가 있다는 걸 믿어주시니까요. (p314~315)

그녀의 장점에 대해 공정하지 못했던 것도 바로 그로인해 자신이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p320)

"당신은 차이점을 알아보셔야 했어요." 앤이 대답했다. "현재의 저를 의심하지 말아야 했어요. 사정이 달라졌고, 제 나이도 어리지 않은걸요. 설사 한때 남의 설득을 따랐던 것이 잘못이었다 해도 모험이 아니라 안전을 권하는 설득에 따랐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전 그분 뜻에 따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경우엔 그 어떤 의무감도 끼어들 여지가 없지요. 제게 애정이 없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온갖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고, 또 모든 의무를 저버리는 일일 거예요."
"아마도 그렇게 생각해야 했겠지요."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성품에 대해 새롭게 얻은 깨달음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그건 지난 세월 내내 상처가 되었던 과거의 감정에 압도되고 파묻혀 사라졌지요. 당신을 다만 설득에 굴복했던 사람, 저를 포기했던 사람,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던 사람으로만 생각했으니까요. 그 참담했던 해에 당신에게 조언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분에게 그때만큼의 힘이 없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어요. 습관의 힘까지 더해졌을 테고요." (p324)

따라서 이제 레이디 러셀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하나부터 열까지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생각과 희망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p331)

건강이 왠만큼 좋아지고 종종 찾아와줄 친구를 얻은 데다 이렇게 수입까지 늘었지만, 삶의 기쁨을 찾는 스미스 부인의 마음은 변질되지 않았다. 유쾌한 성품과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최상의 행복 공급원이 건재하는 한, 그보다 더한 세속적 성공이 찾아왔다 해도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라면, 절대적으로 부유하고 완벽하게 건강하면서도 여전히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미스 부인의 지극한 행복감이 활기찬 성격에서 비롯되었다면, 앤의 경우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앤의 성품은 온유함 그 자체였고 그러한 성품은 웬트워스 대령의 사랑 안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그의 직업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그토록 온유하고 섬세하지 않았으면 하고 친구들이 바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언제 있을지 모를 전쟁의 두려움만으로도 햇살 같은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져버릴 수 있었다. 앤은 선원의 아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국가적인 중요성보다 가정적인 미덕으로 더 돋보이기도 하는 직업에 속한 탓에, 그녀는 마치 세금을 지불하듯 만약의 일을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p334 ~ p335)

좋은 구절.. 나중에라도 다시 읽어보고 생각해보고 마음에 새겨 두고 싶은 문장들이 좀 꽤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시간을 단축하고자, 긴 글을 타이핑하는 수고를 덜고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길다!!라고 생각할까봐 (이 블로그는 나를 위한 공간이므로 애초에 이 생각은 불필요한 생각인게다.) 글을 줄이거나 통으로 날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지 않았다.

기록한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 책을 읽을때 무심히 흘려 넘겼던 각 인물들의 행동에 어떠한 이유가 있었는지 좀 더 뚜렷하게 보인다. 좋다, 이 느낌.

아.. 세계문학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 나가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잠시 세계문학에서 한눈팔고 내일부터는 다른 책들 좀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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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제인 오스틴 지음, 김순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읽은 때 : 20171007 ~ 20171009 (3일)

내가 읽은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은 출판사 펭귄 클래식에서 번역된 것이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서적을 읽을 때면 간혹가다가 '엥???' 이런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는 표현이 매끄럽지 않아서 책을 읽는데 툭툭 걸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된 지가 몇 달 안돼서인지 나는 이 출판사의 책을 읽어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문학작품을 어떻게 해석 해놓았을지.. 제발 거슬림 없이 술술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었고 다행히 마지막까지 해석의 불편함 없이 책을 읽어낼 수 있었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면 그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이 너무 헛갈려서 초반에는 인물 관계도를 노트에 그려가며 읽는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맏딸 (깊은 이해력,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인물)와 둘째 딸 메리앤(분별력 있고 영리하나 지나치게 열성적)로 이 둘의 연애로 인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그와 파생된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내용이다.
책을 읽는 중에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이성과 감성인지를..
한마디로 이성은 언니인 엘리너이고 감성은 메리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명은 사고, 행동, 말에 있어서 '이성'이 먼저이고 다른 한명은 '감성'이 먼저다.

제인 오스틴은 1775년 영국 햄프셔에서 태어나 1817년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책을 읽을 때 작가의 집필 시기를 대략적으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이 책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이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를 우린 '물질만능주의 시대'라고 칭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책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이 '돈'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주요 인물들이 어떠한 결정을 할 때 ..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이야기하고 설명하고 판단할 때 그 집안의 재산은 어느 정도이며, 그 사람이 얼마큼의 유산을 상속받을 것인지가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주요 사건의 당사자들이 이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헛갈려 하는 그 순간에 그들의 결정에 피해 가기 힘들었던 것은 그들의 처한 환경, 돈! 이것들이었다.

엘리너가 말했다.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예요."
"좋아하는 거로는 부족하지!"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랑보다 덜한 감정에 만족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분을 존중하게 되실지도 모르죠."
"존중과 사랑이 구별되는 건지는 여태 몰랐구나." (p28)

마침 달빛이 좋은 날이라 다들 선약이 있었다면서... (p49)

"언니,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든지 자존심을 지키고 독립적일 수 있어 (중략)." (p236)

어떤 자질이든지 때로는 처해진 상황에 따라 실제 가치보다 더 크게 부풀려지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때때로 지나친 애도의 말에 난처해진 엘리너는, 착한 마음씨보다는 올바른 예의범절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p268)

"그런데 전 그렇게 하고 말았지요. 동생분의 사랑을 얻고 동생분과 함께였더라면 가난의 공포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을 텐데도 전 상대적인 가는을 피하고자 부자로 사는 길을 택함으로써 그 가난이 축복이 되게 해주었을 모든 것을 잃은 겁니다." (p395)

"동생에게 곧 돌아올 거라고 말했나요?"
"제가 뭐라고 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조바심을 치며 대답했다.
"과거를 생각하면 틀림없이 한참 모자라는 말이었을 테고, 미래를 생각하면 넘치는 이야기를 했겠지요 (중략)." (p400)

메리앤 대시우드는 특별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그녀가 가장 아끼는 금언들에 어긋나게 처신하도록, 그리고 자기 생각이 그릇되었음을 뒤늦게 깨닫도록 타고난 것이다. (p464)

그리고 엘리너와 메리앤이 누리는 행복 중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으니, 두 자매가 지척에 살면서도 서로 불화하지 않고 남편들 사이도 좋은 상태로 살 수 있었다는 점이다. (p466)

이렇게 이 책은 끝이 났다.
맨 마지막 문장.. 즉, 이성과 감성이 모두 가까이 있지만 불화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이것을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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