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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소녀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읽은 때 : 20171012 ~ 20171013 (2일)
전혀 어울리지도, 상관성도 없어 보이는 두 단어가 결합하여 책 제목이 되었다. 갱년기 소녀.. 내 나이와 몸은 갱년기의 때를 보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녀라는..책 제목을 볼 때마다 뭐 대강 이런 내용이 아닐까 생각 해왔었다.
책 뒤표지에 있는 책 내용과 인물에 대한 소개를 그대로 옮겨 적어 본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소녀이고 싶은 오타쿠 중년들의 폭주 미스터리!
197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순정만화 [푸른 눈동자의 잔]의 팬클럽 '푸른 6인회'. 프렌치레스토랑에서 정기 모임을 열고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회지를 발행하며 추억의 만화 속 세계에서 소문과 망상을 공유하던 이들 사이에, 한 멤버의 실종과 함께 불길한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복잡한 현실문제에서 도피해 막연히 주인공이 되기를 꿈꾸는 이들의 엇나간 열정과 집착은 끝내 유혈사태까지 불러오는데....
에밀리(41세) : 한때 만화가를 꿈꾸었던 주부.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린다. 실비아(53세) : 이혼 후 아들과 함께 우아하게 사는 듯하지만 실상은 빚더미. (에밀리와 실비아 : p39 ~ p120)
미레유(49세) : 무직자, 독신. 형제들을 대신해 병든 어머니의 간호를 떠맡는다. (p121 ~ p218)
지젤(42세) :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고령출산을 고민한다. (p219 ~ p296)
마그리트(46세) : 모임의 리더. 가정불화와 만성 위통이 고민거리다. (p297~ p390)
가브리엘(32세) : 빼어난 외모와 친화력을 겸비한, 모임의 아이돌 같은 존재. (p391 ~ p398)
이 인물 소개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각 인물의 특성을 짧게 소개를 해야 해서 그랬을 수 있겠지만 '많은 생략'으로 인해 성격과 기질이 제대로 표현 된 인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이들의 나이를.. 즉 저 숫자들을 가만히 들여다 본 후 그 인물들의 행동을 떠올려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나의 화를 가장 많이 불러 온 인물은 역시 미레유이다. 미레유의 내용을 읽으면서 감정에 너무 빠져들지 않고 한발짝 떨어져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가브리엘 씨 소설에 삽화를 그려보면 어떨까? 어때, 가브리엘 씨?" 마그리트가 여느 때처럼 리더쉽을 발휘해 거침없이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꼭 그래주세요." 가브리엘의 말을 듣자 에미코는 어깨가 덜덜 떨렸다. "그렇지만, 저 같은 게.... 괜찮으시겠어요?" (p28)
- 여기서 에미코는 에밀리이다. 즉 마흔 한살의 여자가 무슨 말만 하면 저 같은 게... 라는 표현을 쓰는데 짜증 나고 화가 났다. 왜 저래? 싶고.. -
"에미코 씨, 사람들이 자기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네?"
"모두 몰래 자기를 별명으로 불러."
".... 뭐라고요?"
"촌뜨기 대장."
"촌뜨기..."
"왜, 옛날에 그런 만화 있었잖아. 자기는 사투리를 쓰는 데다 몸매도 둥글둥글하니까. 물론 처음 그 별명을 붙인 사람은 가브리엘 씨고, 아, 하나 더 있다. 나무 오르는 돼순이."
"나무 오르는 돼순이....?"
"돼지도 치켜세우면 나무에 오른다.... 그런 속담 있잖아."
- 이 부분을 읽을 때는 '혹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를 좋아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뒤에 가서 나를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를 일이지....
S 아줌마들이... 코스튬 플레이?
W 소녀로 돌아간 기분인가보지.
S 그러고 보니 일전에 [푸른 눈동자의 잔] 팬 사이트를 구경해본 적 있어. 서로를 실비아니, 지젤이니, 마그리트니 하는 탐미적인 닉네임으로 부르던데. 엄청 깨더라. 그것도 소녀 기분을 내려고?
W 응. 분명 본인들은 진지할 거야. 소녀 시절을 지나 사회로 나와서 누구는 직장인, 누구는 주부, 또 누구는 어머니가 돼. 하지만 마흔 살이 지났을 무렵 문득 멈춰 서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사랑받지 못할뿐더러 방해물 취급을 받는다는 걸. 뭐, 갱년기 장애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자신의 위치에 견딜 수 없는 초조함을 느끼고 피해망상을 품어. 사춘기랑 똑같아. 호르몬 변화가 정신적 문제를 낳는 거야. 실제로 중년층의 도덕적 해이와 범죄는 청소년보다 심각하다고. (p118)
"기요씨는 맨션 융자금 벌써 다 갚으셨죠? 연금만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테니 좀더 편하게 사시지그래요?"
"아니야, 난 일하는 게 좋아. 그리고 너무 편하면 노망들 것 같아서 무섭거든."
"뭐 취미는 없으세요?"
"취미라" 기요는 잠시 생각한 후 "가족을 보살피는 거 아닐까" 하고 대답했다. (p143)
- 취미가 가족을 보살피는 거 아닐까 라는 말... 이 말도 '추측형'이다. 쉬어본 적이 없어서 쉼을 누릴때의 행복과 편안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취미가 있어본 적 없어서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엄마는 저렇게 대답을 한다.
이 부분에서 마음이 울컥하고 묵직하고 아팠는데 내 마음이 이 감정에 확 빠져들지 않도록 조금 노력을 했다 . 그 아픈 감정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서...-
"엄마 나을 때까지 내가 밥도 하고 장도 볼게. 그러니까 생활비 나한테 맡기지 않을래?"
"생활비를?"
"응, 통장이랑 도장 어디 있어?" (p160)
- 아...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어... 자식들이여.. 우리 이러지 맙시다.. 평생을 다 주신 분에게..-
미레유 편은 이런 내용들이 반복해서 계속 나온다. 그래서 읽기에 힘도 들었고, 화도 났고, 미레유가 내 옆에 있었으면 저런 기가 막힌 행동들에 따박따박 받아치며 뭐라고 해줬지 싶다. 그래도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지만..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 뭔가 평범하진 않다. '다들 좀 모자라다..' 싶다.
처음에 에밀리의 행동을 보고선 '아니! 모르겠어? 거짓말이잖아!! 지금 너한테 돈 뜯어내는거잖아! 아니, 그 돈을 왜 줘?? 나이를 그렇게 먹었는데 왜 그렇게 어리숙해? 정말 모르겠어? 아.. 답답해' 이러면서 글을 읽어 나갔다.
나는 과연 이 인물들 중 누구와 가장 닮았을까를 잠시 생각 해본다.
딱히 누구의 성격과 비슷하다고 할만한 사람은 없지만 어쩌면 나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게 아닐까 싶다.
에밀리의 경우만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훤히.. 너무나도 훤히 보이는 일인데도 정작 본인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 하고 있다.
문제의 내용은 다르겠지만 나도 에밀리처럼 눈 뜬 장님으로 살아가고 있겠지..
난 어떤 부분에서 눈 뜬 장님일까...? 남들 다 보는 내 모습 중,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은 무엇일까...? 남들 일에 속터져 하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내 모습에 집중하자.
그래.. 나에게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