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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동서문화사 월드북 140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민희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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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전공자입니다. 이 번역은 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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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8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2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ndwottl 2022-04-03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 전공자라는 게 읽지말라는 이유인가요....? 읽지 말란 이유를 좀 자세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예의상 안쓰신다했는데 그럼 이런 글도 예의상 안남기는게 맞지않아요?

cndwottl 2022-04-0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전공자가 아니라 이렇게만 써놓으시면 별 이유도 없이 선택을 주저하게되서요.. 원서를 읽어보신뷴들은 아시리라 생각한다고 해놓으신건봤는데 여기 불어 빠삭하게 아는사람 얼마나되겠어요 불어를 잘 아시는 분이면 잘 아시는 그 내용을 말씀해주시길

morbid3 2025-11-04 20:23   좋아요 0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 자체가 프루스트가 편집도 못끝내고 죽은 미완성 소설입니다.
그래서 프루스트의 저 광대한 메모를 보고 다시 편집해야 하는 책입니다.
프랑스 현지의 문학박사들도 그래서 판본마다 편집이 다 각기 다릅니다.
이형식 박사님 번역본 완독했는데 그분도 프랑스 현지의 박사들이 편집한 3가지 정도의 판본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다시 재편집해서 번역했습니다.
즉 프루스트의 이 책은 편집부터 다시 해야하는 책입니다.
저 지금 위의 분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걍 어디서 처들은 소리가지고 떠드는 것. 생각하지 마삼.

morbid3 2025-11-0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프랑스판도 박사들마다 다 편집이 다름.
어차피 프루스트가 편집도 못끝내고 죽은 미완성 소설임.
근데 무슨 판본을 따지니??
 
철학하는 예술 - 예술작품의 철학적 특성 동시대 미학 2
아서 단토 지음, 정용도 옮김 / 미술문화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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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절판된게 다행. 정확히 옮긴 문장이 거의 없다. 번역을 못하는게 아니라 영어를 못한다. 문장이 두줄만 넘어가면 구문파악을 못한다. 이런 책은 불태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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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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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작품을 원서로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일단 프랑스 사람도 읽기 쉽지 않은 말도 안 되게 복잡한 구문,

서구 소설사에서 손꼽히게 방대한 분량,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밀도,

달리 프랑스 소설사에서 이론의 여지 없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특유의 구문은 한국어로 번역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는 10여개의 번역이 있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체의 완역 기획은 몇 안 된다.


출간순서대로 보면 다음과 같다.

1. 김창석 (능성출판사, 정음사, 국일미디어) -   첫 완역 (1970년대)

2. 민희식 (동서문화사) - 완역.(2010)

3. 김희영 (민음사) - 이제 겨우 <스완네 집 쪽으로>만 출간 (2012-)

4. 이형식 (펭귄) - <스완네...>와 <꽃피는...> 출간(2013-)



일단 한 가지 전제할 것은 모든 번역서는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오역 없는 번역? 그런 거 없다. 완벽한 번역? 더더욱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원문에 대한 충실성, 번역문의 유려함, 최소한의 오역, 이 세 가지 기준일 것이다. 


번역이론가로 유명한 발터 벤야민도 생전에 프루스트를 한 권 번역했지만 '독일어로도 안 좋고 오역도 많은' 나쁜 번역으로 평가된다..(벤야민 전공자들은 그걸 이론적으로 합리화하긴 한다)



그러면 한국어 번역본들을 살펴보자.



1. 먼저, 김창석의 번역은 폄하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게 누구이건 원전을 불어로 제대로 안 읽어본 사람이다. 

김희영, 김화영 두 프루스트 전문가의 평처럼 김창석의 번역은 굉장히 훌륭하다.

불어구문의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했고 그러면서도 한국어로서 전혀 어색하지 않게 옮겼다.

이후의 모든 번역자들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장이이다. 중간중간 탁월한 번역이 한둘이 아니고 분량을 감안하면 오역이 정말 적다.

문제는 너무 한국어로 만들어서 원문의 느낌이 사라졌다는 것이고, 세대가 세대이다 보니 젊은 독자들이 읽기에는 표현이 너무 낡았다는 것이다.


2. 김희영 번역

- 한국어로 어색하지 않은 문장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면서도 (불어 원문의 기준에서 봐서) 정확하다. 굉장한 성취이다. 물론 원서를 대조하며 읽다 보면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지극히 꼼꼼하고 정확한 번역이다. 

의심할 나위 없이 현재 최고의 프루스트 번역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현재 페이스로 봐서 2020년은 되어야 완역이 될 것 같다는 것.



3. 이형식 번역

- 중간중간 훌륭한 부분도 많지만 전반적으로 어정쩡하다. 김희영처럼 세밀하지도 않고 김창석처럼 유려하지도 않다. 나쁜 번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세울 구석이 있지도 않다. 그냥 평범한 수준이다.



4. 그리고 민희식 번역. 

- 어찌 되었든 막대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고 그만큼 고생하셨을테니 예의상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겠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리라 믿는다.


  현재 완간된 것은 김창석과 민희식 두 가지뿐인데 정 끝까지 읽고 싶다면 무조건 김창석을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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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끝까지 여행을
L.F.셀린 지음, 민희식 옮김 / 명문당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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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책은 두 개의 번역본이 있다.

이형식의 번역도 썩 훌륭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민희식의 번역은...

책의 맨 처음 세쪽에 명백한 오역이 열 개가 넘는다. 

이 사람은 번역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불어를 못 한다.

(그 점에서 '롤리타'를 번역한 권택영과 유사하다)

절판이라 다행이고, 

혹시 도서관에서라도 빌려볼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민희식의 것은 손대지 말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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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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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에서 <생트뵈브 비판>의 얘기를 했지요? 그럼 이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체제가 변해온 과정을 설명해 볼께요.



1. 작품의 분할 : 1-2-3-5-7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생트뵈브 비판>은 <잃어버린...>으로 발전이 됩니다. 이제 프루스트는 비평서의 기획은 완전히 포기하고 소설을 쓰기로 하지요. 당시의 소설은 한 권으로 출판될 예정이었습니다. 제목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있었는데 <마음의 간헐>, <칼에 찔린 비둘기> 등등이었지요. 한편 NRF(지금의 갈리마르) 등 여러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프루스트는 그라세 출판사(Grasset)에서 자비 출판을 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 소설은 이미 천쪽을 상회하고 있었기에 출판사쪽에서는 제본 기술의 문제나 판매 등을 고려해서 두 권으로 나눠 내자고 제안합니다. 프루스트는 한 권으로 내고 싶어했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요. 그 덕에 작품이 이렇게 방대해질 수 있었으니). 두 권 구도일 때 총제목은 <마음의 간헐>, 상권은 <잃어버린 시간>, 하권은 <되찾은 시간>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이 경우 발베크 체류도 상권에 포함될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후 양은 계속 늘어만 가고 출판사측의 요구가 덧붙여져서 작품은 세 권으로 예정됩니다. 1913년 드디어 <스완네 집 쪽으로>가 그라세출판사에서 나왔을 때 제2권 <게르망트쪽>과 제3권 <되찾은 시간>이 예고됩니다. 이 3부작의 체제는 곧 포기되지만 구성 면에서 볼 때 가장 완벽한 것입니다.

사실 현재의 <스완>을 보면 구성이 약간 어색한게 사실입니다(프루스트는 1913년에 처음 나온 그라세 판본을 10여년후 갈리마르에서 다시 내면서 단어 몇 개만 수정했습니다. 그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판본이죠). 현재 1권 <스완>의 3부를 이루고 있는 질베르트와의 샹젤리제 만남과 2권 <꽃피는 소녀들>의 1부인 질베르트와의 본격적 교제 및 이별은 분리되어서는 안되지요. 하지만 너무 두꺼운 책을 만들고 싶지 않아하는 출판사측의 사정 때문에 약간 어색한 분할이 생기고, 이후 프루스트는 현재의 2권 1부에 해당하는 부분의 양을 더 늘입니다.


그런데 1914년에 1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실질적으로 몇 년동안 출판계가 완전히 마비됩니다. 징집을 겨우 면제받은 프루스트는 이 시간을 이용해 작품의 양을 계속 늘리지요. 그리고 그라세 출판사의 사장인 베르나르 그라세가 징병되어 전선에 있다는 핑계로 작품의 판권은 그라세에서 NRF 출판사(현재의 갈리마르 출판사)로 넘어갑니다. 사실 프루스트는 처음부터 NRF를 원했지만 앙드레 지드의 거부권 행사로 어쩔 수 없이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출판을 했던거지요.

전쟁으로 인한 몇 년 간의 시간 동안 프루스트는 작품의 구도를 바꾸고 분량을 늘립니다. 그래서 1918년 <꽃피는 소녀들의 그늘 아래서>가 NRF에서가 출판되었을 당시에는 현재의 구도가 거의 완성된 상태였지요. 알베르틴이라는 인물이 도입된 것도 이 전쟁통입니다. 물론 1909년의 원고에도 알베르틴의 전신인 마리아라는 인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알베르틴의 소설’이 만들어진 것은 1차대전중이지요.

(주 - 5권 '갇힌 여인'과 6권 '사라진 알베르틴'을 합쳐 흔히 '알베르틴 소설(roman d'Albertine)'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작품들의 제목을 통해서 프루스트의 구성방식을 잠깐 지적해야겠군요. 뭐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요

총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1권-6권이 ‘잃어버린 시간’을 구성한다면 7권은 <되찾은 시간>이지요. 총제와 마지막 권의 제목은 이렇게 댓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편 주지하듯 1권 <스완네 집 쪽으로>와 3권 <게르망트 쪽>은 대칭 구도를 이루고 있습니다. 두 산책길, 두 살롱으로 대비되는 부르주아 세계와 귀족 세계의 대비... 뭐 이런거죠.

한편 4권 <소돔과 고모라>(1부,2부)가 실질적으로는 소돔(남성동성애)만 다루고 있다면 <갇힌 여인>(소돔과 고모라 3부), <사라진 알베르틴>(소돔과 고모라 4부)은 고모라(여성동성애)를 다루고 있지요. 결국 4권과 5-6권이 또다시 대칭을 이룹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6권의 원제는 <달아난 여인>으로 5권 <갇힌 여인>과 대칭을 이루도록 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6권의 출간 직전 인도 시인 타고르의 시집 '달아난 여인'이 출간되면서 6권의 제목은 <달아난 여인>에서 <사라진 알베르틴>으로 바뀝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프루스트 연구자들은 보통 5권과 6권을 묶어서 <알베르틴의 소설roman d'Albertin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자체 완결성이 있으니까요. <꽃피는 소녀들> 중의 한 명으로 등장한 알베르틴이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 결국 2권과 5-6권은 다시 연결되지요.


한편 소제목들을 보면 1권 <스완네 집 쪽으로>의 3부는 <고장의 이름 : 이름>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2권 <꽃피는 소녀들 그늘에>의 2부는 <고장의 이름 : 고장>으로 이와 연결되지요. 이것은 1권에서 방문해 보고 싶은 고장들(발베크, 베니스, 플로렌스, 파르므 등)의 이름을 몽상하던 주인공이 2권에서 실제로 발베크를 방문하는 것이죠. 그런데 혹시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고장의 이름만을 몽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름(게르망트)도 몽상하지요. 주로 1권의 1부와 3부에 나오는 얘기지만요. 그래서 본래 구도에서는 3권 <게르망트쪽>에 <사람의 이름 : 게르망트 공작부인>이라는 챕터가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3권부터는 소제목들을 넣지 않게 되면서 이러한 구도는 파괴되지요.


결국 프루스트의 글쓰기 과정을 살펴보면 여기에는 거의 강박적으로 소설의 거시적 구성을 구조화, 조직화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의도는 끊임없이 더 많이 쓰려는 글쓰기의 운동 자체로 인해 계속해서 훼방받고 파괴되지요. 하나의 대칭구도를 설정했다가 분량이 더 늘어나고 구도에 변화가 생기면서 그 구도는 깨지고 또다른 대칭구도를 설정하고.. 하는 식의 쳇바퀴운동(악순환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이 거듭된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루스트가 끝까지 고집한 것이 있으니 바로 1권과 마지막 권을 두 축으로 작품을 구성한다는 원칙입니다. 주지하듯 프루스트는 <스완>과 <되찾은 시간>을 먼저 써놓고 중간을 썼지요. 그런데 양쪽 끝이 확정된 대신 그 중간부분은 끊임없이 늘어나서 저자의 죽음 이외에는 정지할 방법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이러한 구성에의 열정은 나중에 보답을 받게 되지요. 60년대에 프루스트가 재평가를 받기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이 작품이 ‘아무렇게나 쓴 회상록이 아니라 복잡하고 철저한 구성을 가진 픽션 작품’임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지금까지 설명한 것이 꽤 복잡하니 간단하게 작품의 체제가 변해간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 1912년 - 프루스트는 단 한 권을 희망. 제목은 '생트뵈브 비판'이었다가 그 제목은 포기하고 '마음의 간헐'이나 '칼에 찔린 비둘기' 사이에서 고민.


2) 1913년 초. <스완네 집 쪽으로(이하 '스완')> 출판 직전
- 출판사의 요구로 두 권으로 나누기로 함. 총제 <마음의 간헐>, 상권 <잃어버린 시간> / 하권 <되찾은 시간>


3) 1913년 <스완> 출판
- 세 권으로 된 체제 예고. 총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확정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 2권 게르망뜨 쪽 / 3권 되찾은 시간

4) 1918년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
- 다섯 권으로 된 체제 예고.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 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3권 게르망뜨 쪽 / 4권 소돔과 고모라 1부 / 5권 소돔과 고모라 2부 : 되찾은 시간

5) 실제 출판된 것
- 일곱 권 체제 (현재 판본)

6) 죽기 직전 프루스트의 계획
- '사라진 알베르틴'과 '되찾은 시간'의 중간메 몇 권을 더 써서 9권에서 10권으로 쓰려함. 생각만 있었고 대략적 구도는 있었지만 쓰지 못하고 죽음. (이에 대해서는 얘기가 너무 길어서 다음 글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이 글은 제 서재에 올립니다)




<<<현재 모습>>>>
(권제목과 소제목에서 상호연관성을 확인해 보세요)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1부 : 콩브레 / 2부 : 스완의 사랑 / 3부 : 고장의 이름-이름

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1부 : 스완 부인의 주위 / 2부 : 고장의 이름-고장

3권 <게르망뜨 쪽>

註 : 초판 출간 당시 ‘게르망뜨 쪽’은 두 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는데 ‘게르망뜨 쪽 2부’와 4권 ‘소돔과 고모라’의 1부(40쪽 정도의 샤를뤼스와 쥐피앙의 만남)는 한 권에 묶여 있었음. 즉 게르망뜨쪽 상권(게르망뜨쪽 1부) + 게르망뜨쪽 하권(게르망뜨쪽 2부+소돔과 고모라 1부). 요즘 프랑스판본이나 한국판본은 이렇게 하지 않고 소돔과 고모라 1부를 그냥 소돔과 고모라에 넣습니다. 프루스트가 왜 이렇게 이상한 권분할을 원했는지는 책을 보신 분은 아실겁니다.

4권 <소돔과 고모라>
1부(샤를뤼스와 쥐피앙의 만남. 40쪽 정도) / 2부 (2부는 네 개의 챕터로 되어 있음. 400쪽 이상).


5권 <갇힌 여인>
또는 소돔과 고모라 3부. 또는 소돔과 고모라 3부 1장.

6권 <사라진 알베르틴느>(달아난 여인)
또는 소돔과 고모라 4부. 또는 소돔과 고모라 3부 2장.

7권 <되찾은 시간>
또는 소돔과 고모라 5부, 또는 소돔과 고모라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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