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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소설의 배경이 되는 영국에서 실제로 공인으로서 협박, 스토킹, 수준 이하의 보안 속에서 버티다 세상을 떠난 의원이 있다. 보안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또한 주인공이 발의하는 법안을 통해 영상유포 범죄 피해자의 아픔에 대한 심각성을 보여준다. 엠마의 수십년 전 아픔을 끄집어내 현재의 자살한 피해자와 연결해 특집 기사로 이용하려는 기자의 모습을 보니 울분이 터진다. 그 또한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피해자 보호를 위해 증거 사진들을 조각내 없어버리는 다른 기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언론의 역기능과 순기능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법정 다툼 과정에서 엠마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왔는지, 유독 신체적 약자에게 성적조롱과 유달리 높은 어두운 방향으로의 시선, 관심이 쏠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국처럼 정치의 역사가 오래된 곳에서도 정치인에게 서슴없이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미성숙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꽤나 놀라웠고, 지역구 주민들을 멀리하면 안 된다는 강박과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안전 본능이 뒤엉킨 상태로 위험을 감수하며 일을 하는 의원들의 보안 수준이 정말 엉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엠마는 협박을 받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염산을 씻어낼 생수를 달고 산다. 이것이 상식적인 세상일까.
군인 정책에 대해 전문적인 의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는 일임에도 굳이 엠마를 주기적으로 찾아가 죽은 아들이 불쌍하지 않냐며 폭언을 하는 지역구 주민은, 정말 아들을 생각하는 사람일까, 엠마가 신체적으로 만만해 보여서 화풀이를 하는걸까? 내 눈에는 명백한 후자로 보인다. 맞을 짓이라는 건 없듯, 얻어맞을 직업이라는 것도 없다. 공인은 초인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며, 어떠한 계기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조금 특별한 사람일 뿐이다. 공인이라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그 화살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누구든 상처를 입으면 피를 흘린다.
주변에서 악플을 달거나 누군가를 신랄하게 욕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긴 힘들다. 도대체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 숨어서 모욕과 희롱을 즐기며 사는 건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보통은 강력한 법이 뒷받침되어 사그라들 수 있도록 영국이든 한국이든 안전한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소설이 말하는 '명예'를 보호하는 일이다.
불법영상유포에 대한 경각심을 긴박하게 일깨우고 공인들의 안전과 정신건강을 되돌아보길 간절히 호소하는 소설. 1, 2권으로 분량이 많지만 엄청난 몰입감으로 단숨에 읽게 된다. 넷플릭스 영상화 확정이라고 하니 언젠가 꼭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