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조건 - 군림할 것인가 매혹할 것인가
이주희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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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공항에서 책을 산다. 워낙에 책을 좋아하지만 의대 시절에는 살아남느라 바빠서, 인턴 전공의 시절에는 일에 치여서 책에서 멀어졌다. 다행히 일본 유학 시절, 숨돌릴 틈이 생겼고, 한국에서 열심히 책을 배송받아가며 읽었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전임의를 시작하면서 나는 또 다시 책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전임의가 끝난 후에도 책 읽을 여유는 생기지 않아, 주로 해외 학회에 참석하느라 일에서 멀어지는 틈을 타 몇 권씩 허겁지겁 읽곤 했다. 비행기에 갖혀 있는 동안만큼은 책을 실컷 읽을 시간이 확보되니 말이다. 다만 학회 전에는 학회를 준비하느라, 병원을 비울 준비를 하느라 숨이 차게 바빠서 책을 고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늘 공항에 가서야 급히 책을 사곤 했다. 


공항서점은 알다시피 매우 조그만하다. 동네 서점보다도 작은 공간이니 다양한 책을 갖추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학습지에 점령 당하지 않은 공간은 종종 꽤나 괜찮은 책을 턱하니 내놓곤 한다. 이 책은 그렇게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다. 


"강자의 조건" 솔직히 제목만 보고 책을 고르라고 했다면 절대로 사지 않았을 책이다. 그저그런 자기개발서인 줄 알았을터이니 말이다. 다행히 제목에서 상상되는 내용이 아님을 알려주는 표지그림 덕분에 책을 펴볼 수 있었고, 선택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한 몫을 했던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어떤 사회가 발전하고 살아남는지를 "다원성에 대한 관용"을 통해 설명한다. 새로운 것,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들의 일부로 품을 수 있었던 사회가 확장하고 발전하는 모습과 그렇지 못했던 사회가 어떻게 쇠퇴하는지를 보여주며는 것만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순혈주의가 강한 집단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오면서, 내가 그 조직의 일원임에도 느낀 불편함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강렬한 불안감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 내가 속한 조직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결심을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국민 입장에서는, 단일민족이라는 말로 외국인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합리화하고, 유교적 또는 기독교적 가치를 앞세워 성소수자들을 역병환자처럼 몰아붙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폭력적인 목소리들에 기죽지 말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해야 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했으니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책 중의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출간된지 수 년이 지난 책이지만, 지금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난 지금도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할 때는 이 책을 선물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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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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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살던 시절 등산을 간 적이 있다. 혼자서 두 번, 친구커플과 한 번. "구마도코도"라고 꽤 유명한 길의 일부를 각기 다른 길로 다녀왔는데, 한국과 달리 유명하지만 한적한 길이 꽤 이색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첫 인상은, "아 이래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숲이 그런 느낌으로 그려졌구나" 하는 것이었는다. 수해 전 독일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비로소 헨젤과 그레텔의 숲이 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것과 비슷하다. 여러 일본 애니메이션 속의 숲의 느낌이 왜 내가 아는 숲가 다른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인데, 전쟁을 겪지 않아 키 큰 나무들로 빽빽히 들어찬 숲은 정작 숲길을 햇볕에 노출시키지 않아 그 길 위의 사람을 묘하게 신비로운 기분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었다.

친구커플과 함께 한 등산은 안전하면서도 낯선 느낌이었는데, 낯선 숲속에서 길을 일을 염려가 없다는 안도감과 내겐 너무나 당연한 등산의 필수품 오이에 당황스러워하던 친구들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다음 두 번의 등산은 혼자였는데, 여기서 조난을 당하면 누군가 내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겠구나 하는 느낌은 서늘했지만 또 아무 방해가 없는 호젓한 등산은 지금도 그리운 순간이다. 여하튼 당시에는 도대체 이렇게 유명하고 이렇게 괜찮은 등산길에 왜 나 혼자 뿐인가 하는 생각에 일본인은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추리소설을 쓰던 작가라 그런지 이야기는 촘촘한데,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운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또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 (추구는 열심히 하고 있다) 모든 책을 소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 책은 간직하게 될 것 같다. 산이 그리울 때마다 읽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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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 돈을 끌어당기는 위대한 지식
이상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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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지 벌써 2년이나 지났구나. 꽤나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에 당시 리뷰를 찾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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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관련해서는 주로 재태크 관련 서적에 관한 글만 쓰고 있어서, 내가 이런 책만 읽는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는 않다. 사실 나의 독서취향은 "잡식"에 가까우며, 그저 재미있는 책은 무엇이든 좋아한다. 다만 책을 많이 읽다보니 입맛이 좀 까다로운 편이라, 선전문구만 요란하고 내용은 별로 없는 자기개발서 등을 마주하면 여지없이 짜증이 올라오곤 한다. 


여하튼 요즘의 나는 주로 재테크 관련 책에 빠져있는데, 이 분야의 책들 역시 자기개발서 만큼이나 수준이 매우 다양하다. 당장 돈을 벌고 싶은 조급함이 있는 이들에게는 구체적인 투자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좀 더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내용들, 성공한 사람들의 역사와 정신을 알려주는 책들을 선호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재테크 전문 기자를 하던 (현재도 하고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가 재태크의 역사와 인물들을, 그들의 저서와 그들을 평한 저서들을 언급하며 소개하고, 그 속에서 자기가 터득한 내용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고 있다. 전문가의 작품이니 문장은 흠잡을 때 없이 깔끕하고, 내용은 오랜 공을 드린 티가 난다. 한 줄 한 줄 영양가가 넘치면서도 맛이 있다고나 할까. 


저자는 10년이 지난 책을 복간하는 부담감을 표하였지만, 오히려 10년 전 책이 복간되기를 기다린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진정한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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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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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려서부터 참 소설을 좋아했다. 잠도 밥도 마다할만한 유일한 이유였고, 종종 책을 읽느라 공부를 할 수 없어서 불안해야 했을만큼. 그래서 내가 왜 그렇게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지를 일찌감치 생각해보았고, 답도 얻었다. 난 소설을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을 탐닉했던 것이다. 책을 통하는 것만큼 합벅적인 방법은 없지 않는가.

아 그렇다고 내가 '엿보기'를 즐겨했다는 것은 아니다. 남의 삶을 들여다볼 방법은 다양한데 - 예를 들어 소설 대신 드라마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책을 탐닉한 것은 그 다양한 인간들이 보여주는 심리, 그리고 그 심리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빚어지는 역학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난 사람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을 유난히 애정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배울 것이 너무 많아 소설을 읽을 수 없었다. 읽어야 하는 책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들도 많았지만 소설만큼 날 정신 못차리게 하는 책은 많지 않았다. 많은 책들을 순간순간 재미를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은 숙제하듯이 독서를 마무리하곤 했다.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인터넷 서점을 헤매던 중 우연히 발견해서 클릭했던 것 같다. 그렇게 구입해 놓고는 한참을 방치해 놓았다가 부산 학회 가는 길에 기차에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이 책을 동행한 이유는 짐이 많았고, 이 책이 내가 읽으려고 구입해 놓은 책 들 중에 가장 가볍고 작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단숨에 책을 읽었다. 그리고 마치 한동안 그리워했던 맛의 음식을 만난 사람처럼 풍요로운 기분을 만끽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런 '힐링'의 내용으로 가득차 있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내가 충만해진 것은 내가 소설 자체가 그리웠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책 속에 펼처진 삶은 다 하나가득 상처투성이였다. 그렇지만 그리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내가 이제는 삶이 더이상 상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도 내 삶이 좀 더 낫다고 느껴서 위안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상냥한 폭력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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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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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이 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러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들의 사회생활은 좀 남들과 다른 것 같다. 인턴 때는 정말 이 병원에서 내가 최하층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전공의가 되는 순간부터 "오더"를 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층층시하인 의사조직 자체에서는 막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조직에 대하여 명령을 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설사 표면적인 것일지라도)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그 일에 익숙해지는 편이 유리하며, 얼마나 적극적으로 잘 해내는지가 능력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의사들은 그렇게 오더하는 자리가 점점 더 익숙해지는 동안에도 막내의 자리를 반복적으로 경험을 하게 된다. 인턴을 마치고 뿌듯하게 전공의가 되었을 때, 또 전임의가 되었을 때, 심지어 교수가 되었을 때도 익숙한듯이 막내의 자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막내의 자리가 갖는 부작용은 바로 "내가 젊다"고 착각이다.


이미 조직에서 명령하는 자리에, 떠받들어주는 위치에 익숙해져서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 젊은 것 같은 착시현상. 그 착시가 꼰대를 더 꼰대로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물론 나만의 해석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어찌해야 난 저러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내게 온 책이다. 평상시 내 취향대로라면 고르지 않을 책이었는데, 먼저 읽은 친구의 강력한 권유덕에(그도 같은 고민 중이었을까)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확실하게 하나 배운 사실은 새로운 세대는 우리 세대와 다른 성장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하는 꼰대짓 - 나의 과거에 빚대어 현재 세대를 비난하는 행태 - 이 얼마나 갖잖은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으니 난 좀 다를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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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가든 2019-08-04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완전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