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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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살던 시절 등산을 간 적이 있다. 혼자서 두 번, 친구커플과 한 번. "구마도코도"라고 꽤 유명한 길의 일부를 각기 다른 길로 다녀왔는데, 한국과 달리 유명하지만 한적한 길이 꽤 이색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첫 인상은, "아 이래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숲이 그런 느낌으로 그려졌구나" 하는 것이었는다. 수해 전 독일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비로소 헨젤과 그레텔의 숲이 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것과 비슷하다. 여러 일본 애니메이션 속의 숲의 느낌이 왜 내가 아는 숲가 다른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인데, 전쟁을 겪지 않아 키 큰 나무들로 빽빽히 들어찬 숲은 정작 숲길을 햇볕에 노출시키지 않아 그 길 위의 사람을 묘하게 신비로운 기분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었다.

친구커플과 함께 한 등산은 안전하면서도 낯선 느낌이었는데, 낯선 숲속에서 길을 일을 염려가 없다는 안도감과 내겐 너무나 당연한 등산의 필수품 오이에 당황스러워하던 친구들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다음 두 번의 등산은 혼자였는데, 여기서 조난을 당하면 누군가 내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겠구나 하는 느낌은 서늘했지만 또 아무 방해가 없는 호젓한 등산은 지금도 그리운 순간이다. 여하튼 당시에는 도대체 이렇게 유명하고 이렇게 괜찮은 등산길에 왜 나 혼자 뿐인가 하는 생각에 일본인은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추리소설을 쓰던 작가라 그런지 이야기는 촘촘한데,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운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또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면서 (추구는 열심히 하고 있다) 모든 책을 소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 책은 간직하게 될 것 같다. 산이 그리울 때마다 읽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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