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의 밤 (4쇄) The Collection 3
바주 샴 외 지음 / 보림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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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무들의 밤 그림책을 봤을 땐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 두께가 있는 책도 아닌데 가격이 4만원이 넘는다. 아이들 책이 이렇게 비쌌던가... 그 의문은 표지 뒷면의 설명을 보고서야 풀렸다. 여느 그림책과는 달리 대량으로 찍어내는 그림책이 아니라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실크스크린을 한 공판화 그림책이었다.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입었던 빤짝이 트레이닝복처럼 한땀한땀, 이태리 장인은 아니지만 곤드족 예술가들 셋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이었기에 그 가치가 높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의깊게 살펴보니 가격표 위에 넘버링이 따로 되어 있었다. 내가 읽은 책은 3,100권의 스페셜 에디션 중 2,145번 책.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리고 괜히 책 표지를 한 번 쓸어보게 되었다.



표지부터 어쩐지 이국적인 인상을 풍기는 나무들의 밤. 정말 밤처럼 새까만 바탕 위로 풍성한 가지를 뻗어나간 나무 한 그루가 표지를 꽉 채우며 서 있다. 마치 그 밤 속에서 혼자 빛을 발하는 것처럼 나무는 불타는 듯한 온 가지를 사방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 모습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어쩐지 독특하고 신비로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책 속에서 펼쳐질 나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표지를 여니 나무들이 뿌리를 내린 듯한 형상으로 얽혀 있는 그림이 나왔다. 꼭 실타래가 얽혀 있는 것도 같고 커다란 뱀이 구불구불 저희들끼리 몸을 맞대고 있는 것도 같은 그림. 알록달록하게 색채감 있는 그림은 아니지만, 이 그림만으로도 아이들이 많은 상상력을 키워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것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아이들의 상상력은 오히려 더 빛을 발하니까 말이다. 어른인 나는 실타래와 뱀을 연상했지만 아이들은 어떤 엉뚱한 상상으로 이 그림을 바라볼까.



어듬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셈바르 나무 이야기. 곤드족의 민담인 모양이었다. 구불구불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조그만 반딧불이가 하나씩 앉아 목동의 잃었던 암소를 비춰준다. 어려움에 닥쳤을 때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구원자, 곤드족에게 있어 셈바르 나무는 그런 의미인 셈이다. 곤드족에게 있어 숲 속의 나무가 영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인도 사람들이 조물주의 집으로 여긴다는 보리수 나무. 보리수 나무는 사실 다른 동화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했던 터라 익숙한 이름의 나무였다. 그러나 생김새는 전혀 알지 못했다. 보리수 전체의 모습이 잎사귀 하나의 모습과 꼭 닮았다는 이야기를 읽고 문득 진짜 보리수 나무의 모습이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보리수 전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찾기가 어려웠지만 보리수 잎사귀의 사진을 보니 정말 길쭉하면서도 둥근 그림 속 보리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내가 그동안 읽었던 이야기들 속의 보리수는 휴식, 쉼터, 안식을 제공하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인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보리수는 안식과 평안을 제공하는 조물주의 보금자리였다.



이솝우화를 연상시켰던 다람쥐의 꿈 이야기. 다람쥐가 아니라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바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다가 결국 다람쥐로 사는 것이 가장 좋겠다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다람쥐의 모습이 짧지만 잔잔한 교훈을 준다. 누구나 자기가 아닌 다른 인생을 살아봤으면, 하는 상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내가 더 예뻤으면 내가 더 키가 컸으면 내가 더 돈이 많았으면 내가 더 공부를 잘했으면... 내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도 역시 삶의 고충은 있다. 그 사람으로 살아보지 않아서 몰랐을 뿐. 결국 이룰 수 없는 꿈보다는 현재의 자신을 더 사랑하고 가꿔나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걸 이 작은 다람쥐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취하는 나무 마후아 나무 꽃 이야기. 앞서 다람쥐의 이야기에서 이솝우화가 연상되었다면 이 이야기는 탈무드가 연상되었다. 술을 처음 마실 땐 양처럼 온순하지만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워졌다가 조금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까불고 더 많이 마시면 돼지처럼 추해진다는 유명한 탈무드의 가르침. 아예 모습이 달라진다는 무시무시한(!) 점이 다르지만 곤드족에게도 역시 술은 적당히 마시면 약, 많이 마시면 독인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 가장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생쥐, 호랑이, 돼지와 비둘기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는 마후아 나무의 일러스트도 익살맞은 듯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서 가장 인상깊은 대목이었다.


이 밖에도 열매가 작은 새처럼 생겼다는 두마르 나무, 뱀 여신의 나무, 노래하는 사자 나무, 잔인한 오빠들의 화살을 맞고 죽은 소녀가 자라난 나무, 잎사귀가 뱀머리처럼 생긴 나그파니 나무 등 다양한 나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나무라는 소재만을 가지고 이렇게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음이 신기했는데 책 말미에 설명된 곤드족 미술 이야기를 보니 숲과 나무는 곤드족 사람들의 삶과 미술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끝없이 꿈틀거리는 나무의 그림 속에 곤드족은 기도를 담고 행운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왔던 것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이 독특한 나무들은 인도의 이국적인 이미지를 담은 동시에 끝없는 우주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그림책이 아이들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많이 지워주었다.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아름다운 나무들과 함께 하는 여정 속에서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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