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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초조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굳이 어느 쪽이냐고 하면, 예민한 편이다.
티를 내는 편은 아니지만 마음 속에는 언제나 일말의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다.
보여지는 나를 벗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오직 몇 평짜리 내 방 뿐.
워낙 갈등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데다 '남이 나에게 불친절한 것도 싫으니 나는 친절해야 해'
하는 강박이 있는, 덕분에 한꺼풀 벽이 있는 타인들 앞에서는 상냥하고 친절한 인물인 척(!) 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금세 그 일을 소재로 꿈을 꾸고 마는 예민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친절한 가면을 벗고 나면 어딘가 지치고 심통한 얼굴이 드러나
'후, 오늘도 울퉁불퉁 가시를 숨기느라 고생 많았어.' 스스로를 치하하는 그런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내가 다정하고 온화한 성격인 줄 알지만 사실 진짜 뾰족한 나는 나만 안다.
이런 나의 '민감함'은 갓 걸음마를 시작할 때쯤인 19xx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소를 한답시고
온 방안을 헤집다 발견한 엄마의 일기에는 대충 이렇게 쓰여 있었다.
'OO이는 예민한 아기이다. 버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몸이 닿으면 싫은 기색을 하고 끙끙거린다.
게다가 어찌나 깔끔을 떠는지 과일을 먹다 과일물이 배자 옷을 갈아입혀달라고 징징 운다.'
...새삼 이런 나를 한 사람의 어른으로 키워낸 엄마에게 감사하다.
어쨌든, 그래서였을 것이다. 5월에 읽을 책으로 이 책을 선택한 건.
예민한 것은 성격이니 어쩔 수 없다 치지만, 취업을 하고 보니 만만하지 않은 게 사회생활이었다.
때론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해야만 하고,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질책을 받기도 한다.
예측하지 못한 업무들이 밀어닥치고 가끔은 상사 눈치를 보며 초조하게 상대방의 답신을 기다린다.
딱딱한 텍스트의 나열인 메신저와 메일 뒤로, 발신자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굳이(그래, 굳이)
추측하며 수명을 바작바작 깎아먹는다. 무신경한 조크에, 애써 웃는 입꼬리가 부들거리기도 한다.
그런 생활들을 하다 보니 지친 것이다. 주변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예민한 나에게.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더 와 닿았다. 초조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ㅡ 이라는 부제가.
그래, 이제는 초조해하지 않고 작은 일에 안절부절하지 않고 싫은 일과 말들에 스위치를 딸깍,
내리는 법을 배우고 싶었고, 조금 더 완만하게 내 마음을 도닥이고 싶었던 거다.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앞표지
편안한 느낌을 주는 녹색의 식물과 여유로운 여백의 표지를 지나,
저자의 간략한 이력이 담겨 있는 책날개를 슬쩍 보고 페이지를 넘기자 ‘들어가는 말’에 이어
재미로 체크하는 둔감력 체크리스트가 나온다.
음, 어디 보자. 화들짝 놀란다,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체크, 체크, 체크...
아니나 다를까. 나는 예민 경보 발령 진단을 받고 말았다.
저자는 무려 열 일곱개의 챕터를 통해 ‘둔감함’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둔감함’을 처방한다.
재능의 토대가 되기도 하는 둔감하고 단단한 마음, 정신 건강을 위해 잔소리를 흘려듣는 둔감함,
자극에도 평온하게 기능을 다 하는 자율신경, 둔감한 신체의 장점, 그리고 여자와 남자, 남녀관계,
연애와 결혼, 아기 울음소리에 둔감해지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둔감함’을 예찬한다. 사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어 오히려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둔감함의 의미가 좀 퇴색되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독자마다 다를 것 같다.
누가 이 구역의 예민보스 아니랄까봐(?) 처음에는 다소 뾰로통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고 마지막 챕터와 나가는 말을 읽을 땐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여유로운 행간과 쉽고 짧은 문장, 그리고 나름의 유머코드 덕에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챕터마다 해시태그처럼 붙어 있는 부제들이 (예: #근거없는 자신감, 근자감)
뒤이어 나올 내용들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주어서 좋았던 것 같다.
#책 속 해시테그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챕터는 <여섯. 누가 뭐래도, 나를 사랑하는 게 먼저다>였다.
이 챕터는 마치 스스로 주문을 걸 듯이 몇 번이나 읽으며 마음에도 머리에도 찬찬히 새겨넣었다.
저자는 여섯 번째 챕터에서, 그리고 칭찬을 유도하는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계속 말한다.
칭찬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라고. 어떠한 의심도 없이, 그저 받아들이고 우쭐해하면 된다고.
칭찬은 노력을 부르고, 노력이 다시 칭찬을 부르며 좋은 방향으로 톱니바퀴가 굴러간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린 시절에 그랬다. 어떤 과목이나 과제에서 칭찬을 받으면 더 신이 나
그 일에 열심히 달려들곤 했다. ‘잘했구나’ 한 마디 말이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나는 이걸 잘 하는 아이니까’ 더 잘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쭉 잘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즐겁게 하다 보면 노력에 맞는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또 기분 좋은 칭찬이,
눈깔사탕처럼 달콤하게 다가왔다. 그때는 그런 칭찬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사회적 언어(=일명 빈말)’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늘 진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받아들이는 칭찬의 농도가 옅어졌다. ‘예뻐졌구나’, ‘예뻐요’라는 말을 들으면
수줍게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지금 이것보다 더 못생겼었구나’하며 괜히 스스로를 깎아내렸고
프로젝트를 마치고 ‘이번에 정말 잘했어. 고생했다!’라는 말을 들어도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지 뭐’하며 흘려들었다. 그런 태도들은 당연스럽게도 그다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레 겁 먹고 위축되고 ‘난 못해’, ‘난 아니야’라며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 짓는 족쇄가 되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지치고 힘들 게 하는 게 바로 나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빈말이라 할지라도 칭찬에는 늘 1% 이상의 진실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80%, 아니 순도 100%의 칭찬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칭찬들을 바보 같은 생각으로
흘려보내다니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그 칭찬들에 더 귀기울였다면 거울 속의 나는 좀 더
예뻐보이고 일하면서 얻는 것들은 훨씬 많았을텐데 말이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둔감함이, 단순히 민감함이나 까칠함과의 대척점에 있는 의미는 아닐거라 생각한다.
필요할 때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현명함,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함, 그리고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노력할 수 있는 순수함과 용기, 뭐 그런 것들이 모여 건강한 둔감함을
이루는 것일테다. 내가 가진 예민함 또한 그럴 것이다. 때로는 꼼꼼하고 센스있는 민감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때문에 예민함도 둔감함도 모두 살아가는 데 골고루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이제 나는 경직된 내 마음과 생각을 조금씩 풀어보려 한다.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몸을 단련하듯이. '건강한 둔감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소의 노력이 필요할 테니.
기분 좋은 칭찬은 종합 비타민처럼 꿀꺽 받아 삼키고 잘 소화해서 내 걸로 만들어야지.
다른 사람에게도 사소하지만 순도 높은 칭찬을 돌려줘야지. 다른 사람의 재능을 발견해 줘야지!
나를 괴롭게 하는 사소하고 기분 나쁜 일들, 하지만 일주일이면 잊어버릴 그런 일들을 좀 더
빨리 머리와 가슴에서 놓아주어야지. 섬세하고 예민해야 할 때와 둔감해야 할 때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는 훈련이 당분간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어쩌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예민러(?)였던 나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다. ‘아무려면!!’하는 낙천적 태도야말로 건강한 둔감력으로 가는 첫 걸음일 테니까.
***책 속 텍스트
제가 이 책에서 말하는 둔감력이란 긴긴 인생을 살면서 괴롭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일이나 관계에 실패해서 상심했을 때,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나아가는
그런 강한 힘을 뜻합니다.
/ ‘들어가는 말’ 중
재능 있는 사람은 주변에 반드시 그를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고, 보인도 그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우쭐해 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우쭐해 하며 자신감을 갖는 것은 경박하고 꼴사나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미래를 향해 더 크게 날갯짓할 수 있는 멋진 둔감력을 가진 것이죠.
/ p.103
‘이 일은 내 생각대로 단호히 밀고 나가겠어!’
이렇게 결정했을 때 주위의 시선이나 사소한 소문쯤은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자세.
누군가가 빈정대도 ‘나는 내 길을 가겠다’는 태도로 씩씩하게 나아가는 자세.
이런 둔감력이야말로 창조적이고 획기적인 일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 p.204
다른 사람의 습관이나 행동이 못 견디게 거슬리는 사람도 있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사람마다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 하나는 불쾌한 말이나 행동도 무시하고 넘길 수 있는 둔감한 사람만이
집단 속에서 밝고 느긋하게 일하며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 p.232
민감하거나 날카로운 것만이 재능은 아닙니다.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둔감함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재능이죠.
예민함이나 순수함도 밑바탕에 둔 둔감력이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재능으로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p.260
이런 좋은 의미의 낙천주의가 긍정적인 마음과 강인한 둔감력을 키워줍니다.
요즘 같이 극심한 취업난과 불경기가 계속될수록 둔감력은 꼭 필요합니다.
지금은 강력한 둔감력 없이는 살아가기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 ‘나가는 말’ 중
#좋은 것은 한번 더!
/ 인터넷서점 예스24(Yes24)에도 게시